만인의 혼이 깃든 만인의총(萬人義塚)..
○ 탐방일 : 2014년 7월 19일
○ 소재지 : 전북 남원시 향교동 628
○ 만인의총 소개
1981년 4월 1일 사적 제272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면적은 10만 866㎡이다.
임진왜란의 패인이 전라도 지방을 점령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긴 왜군은 정유재란을 일으켜 전라도 지방을 점령한 뒤 북진할 전략을 세웠다.
이에따라 왜군은 1597년(선조 30년) 7월 말 11만 명을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우군은 황석(黃石)산성으로, 좌군은 남원으로 진격하였다.
한편,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도 남원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잇는 전략상의 요충지로 여기고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과 광양현감 이춘원
(李春元), 조방장(助防將) 김경로(金敬老)의 군사 1000명과 명나라의 부총병 양원(楊元)이 이끄는 군사 3,000명이 방어하고 있었다.
8월7일, 왜군의 선봉대가 남원에 모습을 나타냈고, 13일 왜군의 주력군이 남원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연합군은 이에 대항하여 동문과 남문 및 북문은 각각 명나라의 양원과 장표(蔣表), 모승선(毛承先)이 지키고, 북문은 이복남이 방어하였다.
14~15일 이틀동안 민·관·군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16일 남원성은 함락되었고, 양원은 함락 직전에 서문을 통해 달아났다.
이 싸움에서 접반사(接伴使) 정기원(鄭期遠),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조방장 김경로, 별장 신호(申浩), 남원부사 임현(任鉉),
통판(通判) 이덕회(李德恢), 구례현감 이원춘 등이 전사하였다. 이밖에 왜군에게 학살된 민·관·군의 수는 거의 1만여 명에 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 곳에 묻었고, 1612년(광해군 4) 충렬사를 세워 8명의 충신을 제향하였다.
처음에는 남원역 부근인 동충동에 있었으나, 주변이 민가로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971년부터 정화작업을 시작하여 1979년에 완공하였다.
만인의총에서는 정유년 음력 8월 16일에 해당하는 매년 9월 26일에 제향하며 뜻을 기리고 있다.
잘 단장되고 정돈된 시설로, 모든 사람이 무료로 입장하는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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