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기행] 국보 제304호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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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기행] 국보 제304호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by 정산 돌구름 2014. 4. 1.

[여수기행] 국보 제304호,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 탐방일 : 2014년 3월 29일(토)

○ 소재지 : 여수시 군자동 472

○ 진남관 소개

 보물 제324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제304호(2001년4월17일)로 승격 지정된 지방관아 건물이다.

 건물이 있는 자리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선조32년(1599년) 삼도 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李時言)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鎭南館)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하였다.

 후에는 역대 임금의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군수가 망궐례를 올렸으며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奉道式)을 거행하였다.

 1716년(숙종 42년) 불에 타버린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다시 건립하였다.

 1910년(순종 4년)부터 50여년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의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높은 언덕 위에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괴석(四塊石)과 장대석(長臺石)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고 둘레 2.4m의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다.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의 양측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였고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떠받쳤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椽背天障)이다.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이 웅장해 보인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려한 화반(花盤)을 받쳤는데, 주심포(柱心包)와 다포식(多包式)을 절충한 양식이다.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건물 내부 공간을 크게 하기 위해 동·서쪽 각각 두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內陳柱)를 옮겨서

 내진주 앞쪽에 고주(高柱)로 처리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렸고,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 문양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물이다...

 

 

전라좌수영, 삼도수군통제영, 진남관.. 

 

진남관 안내도.. 

 

바로 옆 주차장과 관람료는 무료이다..

 

진남관 정면에 서있는 망해루(望海樓)..

일제시대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 중건한 2층 누각으로, 2009년 9월 깨끗하게 새로이 단청을 하였다고 한다..

 

뒤돌아 본 망해루..

 

긴 계단을 따라 오르면 통제문..

 

통제문(統制門)은 진남관의 출입문이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의 거대하고 웅장한 진남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남관 편액.. 

 

진남관은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고 한다..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다..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의 양측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였고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떠받쳤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椽背天障)이다..

 

진남관은 1910년(순종 4년)부터 50여년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33호 여수석인(石人)..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드느라 한창일 때 왜구의 공격이 심하자 이를 막기 위해

7개의 석인(돌사람)을 만들어 사람처럼 세워 놓았는데, 이로써 적의 눈을 속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한다.

원래의 7기 중에서 지금은 이것 하나만 남아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손은 팔짱을 꼈으며 그위로 도포자락이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시선은 유유히 적을 바라다 보는 듯하다.

비록 전하는 이야기이긴 하나, 임진왜란과 관련된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진남관에서 바라본 여수시가지.. 

 

여수항과 장군도..

 

망해루..

 

진남관 비석군..  

 

여수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공덕비 등의 비석 15기를 모아 진남관 경내의 망해루와 통제문 사이에 비석군(群)을 조성하였다..

 

비석들은 지붕 구조물 아래에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조선 후기의 전라좌수사(전라좌도 수군절도사)와 군수들의 비석이다.

15기 중 3기는 흔히 볼 수 없는 철제비석이며, 4기는 파손되거나 마모가 심하여 누구의 것인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무명비(無名碑)이다..

 

가장 대표적인 비석은 여수 이량장군 방왜축제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조선 전기에 전라좌수사로 재직하던 이량이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바다 속에 수중성(水中城)을 축조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1710년(숙종 36) 세운 것이다.

비석 앞면 우측에 이장군 함천군 휘량 방왜축제비(李將軍咸川君諱良防倭築提碑)라고 새겨져 있다.

가장 오래된 비석은 1588년(선조 21) 조성된 수사 변국간 선정비로, 여수 지역에 있는 임진왜란 이전에 세운 유일한 선정비이다.

철제비석 3기는 수사 유광로 청덕선정비(1854년), 절도사 조문현 청덕선정비(1872년), 군수 조동훈 영세불망비(1898년)이다.

그밖에 수사 이도빈 무휼선정비(1683년), 수사 이봉상 선정비(1711년), 함은군 이삼 거사불망비(1867년 건립) 등이 있다..

 

 

 

 

 

진남관에서 내려서면..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

 

진남관 입구에 있는 임진왜란 관련 유물전시관이다.

전시관 내부에는 전라좌수영성·거북선·진남관·철쇄방비시설 모형을 비롯하여 각종 무기류,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유물, 지도 및 서책,

해전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 진남관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축척 1/200 크기로 제작된 전라좌수영성 모형은 성벽·남문·동문·관아 및 민가·포구·해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북선 모형을 통해 거북선의 내부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