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의 여행, 여수 충민사~진남관~돌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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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의 여행, 여수 충민사~진남관~돌산공원...

by 정산 돌구름 2014. 3. 31.

봄으로의 여행, 여수 충민사~진남관~돌산공원...

 

○ 여행일자 : 2014. 3. 29(토)

○ 기상상황 : 비(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비가 내림)

○ 여행코스 : 여수 충민사~진남관~돌산공원

○ 교통상황 : 광주(13:30)~남해고속~동순천IC~17번~충민사주차장(14:50)

 

 

○ 여행지 소개

  여수(麗水)는 전남 동쪽 경계에 툭 불거져 나온 반도로, 서쪽으로는 순천만을 사이에 두고 고흥반도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경남 남해도가 자리잡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땅으로 원촌현과 돌산현이었으며, 삼국 통일이후에는 승주군(순천)에 속한 해읍현·여산현·마산현이었다가

  고려 때부터 여수현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려 때까지도 순천부에 속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민왕 때 유탁과 정지가 왜구를 크게 물리치는 전과를 올려 수군방어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으며, 성종 10년(1479년)

  전라좌수영(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폐영될 때까지 400여년간 조선 수군의 본거지였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선조 24년) 이순신장군이 이곳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였으며, 전쟁 이후 충무공이 삼도(충청·전라·

  경상도)수군통제사를 겸임하게 되면서 여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되기도 하였다.

  여수가 행정구역상 순천으로부터 완전 독립된 것은 1896년이다.

  이후 여수시와 여천시·군으로 나뉘어 있던 여수반도 일대는 1998년 4월 여수시로 통합되었다.

  여수,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바다에 둘러싸인 이 고장은 항구이자 국가산단을 끼고 있는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옛 전라좌수영성터에 자리한 객사 진남관, 남해안 일대에서 활약한 충무공의 행적과 애국충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은

  좌수영대첩비, 충무공과 함께 왜군을 물리쳤던 수군 병사들이 충무공을 기리며 눈물로 세운 타루비, 동백숲으로 유명한

  오동도, 고찰인 흥국사, 낙조가 일품인 돌산도의 향일암 등이 있다.

  여수는 항구이자 공업도시로 예부터 ‘여수 가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일찍이 유행했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세계의 어느 미항 부럽지 않다는 여수사람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 Prologue

 지난해 11월30일 이후 4개월이 지나 오랜만에 1박2일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저녁까지 이어져 일정에 다소 차질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강행하였다.

 첫날은 비가 내린 탓에 미항 여수시내 관광을 하고, 둘째날은 다행이 맑아 부속도서인 화정면 개도와 하화도를 찾았다.

 뱃시간에 맞추어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늦지않고 다행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빗속을 달려 도착한 여수 충민사..

 

<충무공 관련 사액사당 제1호, 여수 충민사(忠愍祠)>

사적 제381호(1993년6월1일)로 지정된 충민사는 이순신이 전사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년) 당시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 발의하여

왕명으로 통제사 이시언(李時彦)이 건립하였는데, 아산 현충사나 통영 충렬사보다도 훨씬 앞서 세운 이순신을 모신 최초의 사액사당이다.

원래는 충무공 주향에 전라좌수사 의민공(毅愍公) 이억기가 배향되었는데, 1677년(숙종 3년) 보성군수 안홍국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사우를 건립한 뒤 우부승지 김상용의 계청으로 사액되었으며, 1709년(숙종 35년)에 5대손 이봉상(李鳳祥)에 의하여 사우의 면모를 갖추었고,

1732년(영조 8년)에 이명상이 계승 봉사하였다. 그뒤 1870년(고종 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을 남기고 철거되었는데,

이때 충무공에 대한 제향은 그 곁에 세워졌던 석천사(石泉寺)에서 행하여 왔다.

1873년(고종 10년) 이곳 주민들이 중수하였지만 1919년 일제에 의하여 다시 철폐되었다가 1947년 지방유림이 원위치에 재건하였다.

1971년부터 여수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정화5개년사업으로 재건을 추진하여 1978년 정비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역은 사당(목조 와즙 13.23평)과 내삼문인 충의문, 외삼문인 숭모문, 충민사유허비 등이 있고 경역 밖에는 하마비·홍살문·관리소 등이 있다.

문헌에 의하면 “여수 북쪽 약 5리 마래산(馬來山) 아래에 있다.” 라고 되어 있어 지금의 덕충동 산기슭에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담하고 작은 공간에 사당을 남향하여 앉히고 주위에 나지막한 담장을 둘렀으며, 서남쪽 앞뜰에는 옛 건물의 초석들이 보관되어 있고,

사당 바로 서편에는 비를 새로 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익공집으로 기단은 3벌대의 장대석을 쌓아 만들고 전면 중앙에 넓은 계단을 놓았다.

또한 충민사 바로 곁에는 충민사의 수호사찰인 석천사(石泉寺)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선상(船上)에까지 따라다니며 모신 승려 옥동(玉洞)이

충민사가 세워지자 이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큰 암석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에서 절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여수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1963년1월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4월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건물이 있는 자리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선조 32년(1599년) 삼도 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李時言)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하였다.

후에는 역대 임금의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군수가 망궐례를 올렸으며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奉道式)을 거행하였다.

1716년(숙종 42년) 불에 타버린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다시 건립하였다.

1910년(순종 4년)부터 50여년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높은 언덕 위에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사괴석(四塊石)과 장대석(長臺石)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고

둘레 2.4m의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다.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의 양측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였고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떠받쳤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椽背天障]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려한 화반(花盤)을 받쳤는데, 주심포(柱心包)와 다포식(多包式)을 절충한 양식이다.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건물 내부 공간을 크게 하기 위해 동·서쪽 각각 두 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를 옮겨서 내진주 앞쪽에

고주로 처리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렸다.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 문양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물이다..

 

 

 

 

 

 

 

 

 

 

 

 

 

 

 

 

 

 

 

 

 

 

 

 

 

 

 

 

진남관에서 건너편으로 연결되는 좌수영다리..

 

전라좌수영 본영인 국보 제304호 진남관과 보물 제571호 통제이공수군대첩비, 보물 제1288호 타루비를 잇는 폭 4m 길이 38m의

좌수영 다리를 32억원을 들여 2011년11월 착공해 2012년5월9일 개통했다..

 

벽화의 거리를 따라 오르면 매영정..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뒤돌아본 진남관..

 

벽화골목 안내도.. 

 

고소대(姑蘇臺)..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 8경의 하나로, 옛날에는 고소정(姑蘇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수기상대(麗水氣象臺)와 충무공 대첩비각(大捷碑閣)이 있다..

 

비각과 옆에는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비각안에는 중앙의 좌수영대첩비(左水營大捷碑)와 오른쪽의 타루비(墮淚碑), 왼쪽 비석이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이다..

 

좌수영대첩비는 1973년5월4일 보물 제571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305cm, 너비 124cm, 두께 24cm이다.

1615년(광해군 7년)에 여수시 충무동에 세웠던 이순신의 전승기념비로 비문은 이항복이 짓고 김현성이 썼으며 전(篆)은 김상용이 썼다.

그 내용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인 경찰서장에 의하여 감추어졌다가 8·15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1948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

좌수영대첩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비석 건립에 참여한 인물들, 비석을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비석이다.

비문은 현감 심인조(沈仁祚)가 지었고, 건립경위는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이 썼다.

비신 뒷면에 '숭정 기원후 주갑 무술 인정일립(崇禎紀元後周甲戊寅丁日立)'이라는 명문이 있어 1698년(숙종 24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석 크기는 높이 119㎝·폭 60㎝로, 직사각형 비좌 위에 옥개석을 얹은 비신이 세워져 있는데 옥개석과 비신은 하나의 돌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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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비(墮淚碑)는 1998년12월4일 보물 제1288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이순신장군이 순절한 지 6년 후인 1603년(선조 36년)에 이순신장군 막하에 있던 군사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영하수졸위통제사 이공순신입단갈명왈타루 개취양양인사양우이망기비즉루필타자야 만역삼십일년추립

(營下水卒爲統制使 李公舜臣立短碣名曰墮淚 蓋取襄陽人思洋祐而望其碑則淚必墮者也 萬歷三十一年秋立)’이라고 적혀 있다.

즉 ‘영하의 수졸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하여 짤막한 비를 세우니 이름은 타루이다. 중국의 양양 사람들은 양우를 생각하면서 그 비를 바라다

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1603년 가을에 세우다.’라는 내용이다..

 

고소대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우리나라 복싱 역사상 최초로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가 훈련을 하였던 복싱도장..

 

고소대에서 바라본 여수항과 장군도, 그리고 돌산대교.. 

 

여수시가지..

 

다시 진남관으로 오면서 좌수영 다리에서 바라본 진남관..

 

돌산대교..

 

해안선 길이가 600m밖에 안 되는 여수 앞바다의 작은 섬, 장군도(將軍島)..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군도성(將軍島城) 좌수영(左水營) 앞 2리에 있으니 수사(水使) 이량(李良)이 쌓았다."는 기록에서 지명이 등장한다.

그 후 <여지도서>에 "장군도는 수영 앞 바다에 있다."고 기록하는 등 이후 대부분의 지리지에 장군도 혹은 장군도성에 대해 기록하였다.

옛 지도에서는 섬의 크기에 비해 크게 묘사되어 있다.

<동여비고>(전라도)에 수영 남쪽으로 장군섬이 묘사되어 있는 등 대부분의 고지도에 장군도가 돌산도와 좌수영 사이의 섬으로 나타난다.

지명유래와 관련해 <여수군읍지>에 이량 장군이 장군성을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그 후 도적이 감히 남쪽 백성을 엿보지 못했다.

그래서 장군도라는 이름의 빗돌을 세워 공덕을 기렸다."고 기록하였다...  

 

풍수형국에서 장군도는 세마리의 용이 다투는 여의주라고 하는데, 세마리의 용은 예암산(남산), 돌산도, 경호도라고 한다...

 

돌산도와의 사이에 전국에서 유일한 해저석성인 수중성과 목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중성은 1497년(연산군 3년) 수군절도사 이량이 금오도에 나타난 왜구를 쫓아내고 다시 침입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며,

뒤에 이량 장군 방왜축제비(防倭築提碑)와 이순신 장군 전공기념비가 세워져 함께 보존되어 있다...

 

1914년 재향군인회가 이 섬에 벚나무 1,000그루를 심어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주위 바다에서 놀래기·감성돔·도다리·볼락 등이 많이 잡혀 가족단위 관광객과 낚시꾼으로 붐빈다...

 

찾아가려면 여수시 중앙동파출소 옆의 종포선착장에서 연락선을 타거나, 돌산대교 옆에 있는 선착장에서 나룻배를 탄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여수 시가지...

 

그리고 돌산대교...

 

바로 옆 돌산공원에는 벚꽃이 만발하였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여수시가지..

 

돌산공원은 여수갯가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수 돌산공원..

여수시에서 돌산대교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언덕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조성된 공원이 돌산공원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돌산대교와 여수 앞바다, 여수항, 장군도, 여수시가지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여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1984년 여수와 돌산을 연결하는 돌산대교 준공기념탑을 건립하면서 공원이 함께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88년에 완공되었다.

부지면적은 약 28만 7,600m²이며, 동백나무를 비롯한 수목과 꽃으로 조경이 되어 있고, 산책로와 쉼터 등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돌산대교와 거의 일직선상에 돌산대교준공기념탑이 서 있는데,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돌산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려면 이 자리가 제격이다.

기념탑은 돌산대교를 형상화한 탑신과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돌산대교준공기념탑..

 

공원에 있는 또 하나의 탑은 어업인위령탑으로, 그물을 끌어당기는 어부의 역동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어우러져 있다.

여수시가 5억 3,000여 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2년 8월 준공한 탑이다..

 

여수 타임캡슐 1999..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통합(1998년)되어 여수시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통합 추진과정 자료를 비롯하여 현시대의 시민생활·사회문화

자료 및 문물 803점을 타임캡슐에 담아 1999년 10월 15일 매설하였는데, 이 타임캡슐은 2098년 4월 1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공원 한쪽에는 SBS 아침드라마를 촬영한 드라마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다..

 

벚꽃 만발한 찻집과 장군도..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돌산대교..

 

돌산대교(突山大橋)는 여수와 돌산도를 연결하는 사장교(斜張橋)로 길이 450m,너비 11.7m이다.

총공사비 179억 5400만원으로 미국 트랜스 아시아사(社)와 한국종합개발공사가 설계하고, 대림산업과 삼성중공업이 시공을 맡아

1980년 12월에 착공, 198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이 다리로 연결된 여수 앞바다는 조류속도가 초속 3m나 되고, 여천 석유화학공단과 여수항에 출입하는 대형선박의 주요항로이기 때문에

양쪽 해안에 높이 62m의 강철교탑 1개씩을 세우고, 56∼87mm 강철 케이블 28개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며, 수면 위 높이가 20 m나 된다..

 

공원의 한켠에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마스코트 여니와 수니..

 

 

포장마차..

 

돌산공원 아래에는 장군도~진남관~오동도~쇠머리등대~방죽포~향일암을 관광하는 유람선의 선착장과 횟집촌, 거북선모형체험관이 있다..

 

거북선모형체험관..

 

유람선의 선착장과 여수 국동항..

 

횟집촌..

 

 

빗속에 날이 업둡기를 기다렸다가 촬영한 돌산대교 야경..

 

빗줄기를 똟고 여수 시가지 교동의 티모텔...

65,000원을 주고 들어갔는데 그래도 이 근처에서는 깨끗하고 시설 좋은 모텔이다..

 

모텔 인근의 지난 11월말에 갔던 금성횟집을 찾았으나 문이 닫혀있어 바로 앞 남면횟집..

 

둘이서 60,000원짜리 뼈꼬시를 시켰으나 약간은 실망...

 

금성횟집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빈약..

 

광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새꼬시..

 

바로 앞의 연안여객선터미널 주차장의 야경..

지난 2012년5월9일 좌수영다리 개통와 함께 제막식을 가진 이순신장군 동상..

진남관 앞 망해루와 이순신광장 사이에 건립된 동상은 기단에서부터 13.9m 높이로, 청동주물로 제작된 이순신장군 모형 6m, 거북선 1.5m,

화강석으로 제작된 좌대 6.4m로 이뤄졌다. 자산공원에 있는 거북선 찬가와 충무공 찬가를 탁본해 돌 북 형태의 노래비에 새겼다..  

 

바로 옆 광장의 거북선..

 

여수항과 돌산대교..

이렇게 여수에서 빗속의 첫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