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아름다운 정원, 담양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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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아름다운 정원, 담양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by 정산 돌구름 2013. 7. 23.
한여름의 아름다운 정원, 담양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2013년 7월 22일, 무더위 속에 담양에서 점심을 먹고 명옥헌 원림을 찾았다.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곳으로, 2009년9월18일 명승 제58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정원이다.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고 한다.

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로 교육을 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개울을 타고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 벽면에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명옥헌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한 것은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미고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담양 명옥헌 원림 가는 길에 백일홍이 만발해 분홍꽃 물결을 일렁이며 지나가는 관광객의 눈과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백일홍은 명옥헌 원림과 봉산면에서 고서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8km 구간이 아름다운 꽃길로 특히 유명하다.

100일 동안 핀다는 백일홍(百日紅), 나무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며 꽃이 완전히 질 때면

그해 추수가 끝나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기다 도래한다고 해 ‘쌀밥나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명옥헌은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오이정이 지은 정자이다.

후산마을은 오희도의 외가 마을로, 그는 어머니 순천 박씨를 따라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그는 1614년(광해군 6)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치하에서 벼슬할 것을 포기하고 집 옆에 망재(忘齋)라는 작은 서재를 짓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때 인조가 등극하기 전에 반정을 계획하며 뜻을 규합하기 위하여 세상을 돌았는데, 그를 찾아와 정사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정자 안에 명옥헌 계축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삼고(三顧)’라는 현판은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한 것처럼 인조가 이곳을 세 번 찾아왔다는 뜻에서 붙인 현판이다.

인조반정 후에 그는 세상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미처 뜻을 다 펴보지도 못하고 천연두에 걸려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후 오희도의 넷째 아들 오이정이 부친의

넋을 위로하고 은거 생활을 하기 위하여 부친이 살았던 곳에 명옥헌을 짓고 위 아래로 연못을 파고 백일홍을 심어 정원을 조성하였다.

특히 명옥헌은 백일홍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곳은 아름다운 경관도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해마다 7, 8월이 되면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정원 전체를 뒤덮는 때가 백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