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 4박5일, 제2일 - 1.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 만리장성(萬里長城)..
□ 2일차(4월 6일, 토) : 만리장성~명13릉(정릉)~올림픽주경기장~더플레이스~전신맛사지
06:30 기상후 / 06:40 호텔 조식 / 07:30 호텔 출발 / 09:20 만리장성 도착 / 만리장성 관광 / 12:30 출발
13:05~14:00 점심식사(현지식) / 14:45 명13릉(정릉)도착 후 관광 / 16:05 정릉 출발 / 17:45 올림픽 주경기장
18:10~18:45 저녁식사(태가촌) / 19:20~20:40 전신맛사지 / 21:15 더플레이스 / 21:35 호텔 투숙
□ 여행개요
1) 샹그리라호텔
아침 6시30분 기상하여 7시에 1층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2) 만리장성 관광
7시30분, 호텔을 출발하여 만리장성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한다.(09:20)
만리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며, 달에서도 보인다고 하는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곳이다. 마치 용이 춤추는 듯한 만리장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사람이 길을 잃어 예정시간보다 1시간여 소요되어 중국장성박물관 외관을 둘러보았다.
3) 점심식사
12시30분,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13시5분 현지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4) 명13릉(정릉) 관광
14시에 식당을 출발하여 14시45분, 명13릉의 하나인 정릉에 도착한다.
명13릉의 하나인 정릉을 발굴, 지하궁전을 발견하였는데 관곽외에 금,은,진주,보석,복식,옥기 등 보물 3,000여점의 보물이
출토되어 정릉의 비밀이 밝혀졌다.
1959년10월에 정릉박물관이 설립되었고, 이때부터 명13릉은 북경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되었다.
5) 올림픽 주경기장 외관 관광
16시5분, 정릉을 출발하여 17시45분, 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하여 경기장 외관을 둘러본다.
나뭇가지를 얽어 만든 새둥지와 같다고하여 냐오차오라고 불리는 북경 2008 올림픽 주경기장이다.
6) 석식 후 전신맛사지
18시10분, 경기장 건너편에 있는 태가촌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차로 이동하여 19시20분, 전신맛사지를 받는다.
7) 더플레이스(The Place, 世貿天階) 관광
전신맛사지를 마치고 21시15분, 더플레이스에서 잠시 야경을 보고 호텔로 출발한다.
더플레이스(The Place)는 사무공간과 고급브랜드 상점들이 즐비한 쇼핑광장이다.
여수Expo도 이곳을 참조하여 설치하였다고 한다.
8) 샹그리라호텔 투숙
21시35분, 호텔에 들어와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술 한 잔하고 잠자리에 든다..
만리장성(萬里長城 Shaolin Temple)...
‘인류 최대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증축하면서 쌓은 산성으로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에 이른다.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보통 만리장성의 기원을 진나라 시황제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770~BC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 왕국인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당시의 만리장성은 동쪽 랴오양(遼陽)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까지로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시대이다.
처음 건축될 무렵의 길이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 보하이만(渤海灣)까지 약 1,500㎞였다.
이후 명나라 때 총 길이 2,700㎞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나라는 15~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목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른다. 만리장성 2,700㎞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대체로 서쪽보다는 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 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며,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 쏟는 정성도 달라졌다.
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 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만리장성은 지구촌에 건설된 수많은 인공 구조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성이다.
험준한 산과 협곡은 물론이고 사막까지 이어진 거대한 만리장성은 황해와 가까운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으로 간쑤 성
자위관이란 곳까지 약 3,000km가 보존되어 있다.
만리장성을 건설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만리장성에 관한 책은 저마다 내용이 다른데, 계속해서 고치고 덧붙여 짓는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건축물이란 이야기부터 공사기간, 동원된 인원, 건축술, 그리고 수많은 사연까지 놀라운
점이 많다. 만리장성은 그 웅장함만큼이나 희생자를 많이 만들어 낸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중국에는 최초의 국가인 은나라 때 이미 성을 쌓고 도시를 지은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최초의 장성은 춘추시대인 BC657년 초나라에서 세운 장성이라고 한다.
BC 4세기 때는 초, 연, 진, 한, 조, 위, 제나라에서도 잇따라 장성을 건설했는데, 오늘날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곳 중에는 이때
건설한 장성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BC 221년 한, 위, 조, 연, 제,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를 세운 진나라 시황제는 새로운 국가들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의 방어시설을 파괴한 다음 흉노족을 방어할 목적으로 북방지역에 거대한 장성을 짓도록 명령했다.
BC 215년 진시황의 명령으로 시작된 장성 건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언제 공사가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군사와 백성을 합해 약 30만 명의 사람들이 만리장성 건설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만리장성에 대한 자료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 동쪽 랴오둥에서 서쪽 린타오까지 건설된 장성의
길이가 ‘만여 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이 구간은 4,050km로 중국의 거리 단위로 따지면 만 리가 조금 넘는다.
처음에 장성은 돌이 풍부한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흙을 다지거나 흙으로 만든 벽돌로 건축했는데, 흙을 사용하여
시간이 지나면 서 방어용 기능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진시황제 때 건설된 장성은 대부분 파괴되어 여러 곳에 그 흔적만 조금씩 남아 있을 뿐이다.
진나라 때 건설된 만리장성은 한나라 때 고치고 덧붙여 짓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흉노족의 침략이 계속되자 한무제가 만리장성을 짓기 시작했는데, 진나라 때 성에 비해 훨씬 견고하고 영역도 서쪽으로 더
연장되었다. 그리고 진나라 때는 없었던 지휘소와 봉화대 같은 군사시설이 보강되었다.
한나라 이후에도 북위와 수, 요, 금나라 등에서도 장성을 복원하였는데, 오늘날의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명나라 최초의 황제인 홍무제(주원장)는 왕위에 오른 첫해인 1368년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훗날 명나라의 수도가 된 지금의 베이징 인근 바다링을 시작으로 허베이성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장성을 고치고 확장하였다.
또한 3000개가 넘는 봉화대와 주요 거점지의 망루, 마차가 달릴 수 있는 넓은 도로도 명나라 때 지어졌다.
공사는 이후 여러 황제에 의해 계속되었는데 정덕제 때 다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지금의 만리장성은 17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만리장성은 총 길이가 6,350km나 된다.
물론 총길이는 2~3중으로 된 장성의 길이를 모두 합한 것이지만 그 길이가 16,000리나 된다는 사실이다.
만리장성은 오랜 세월 대제국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하여 건축한 바다링과 주변지역을 꼽을 수 있다.
북경 중심에서 북쪽 80km지점의 바다링은 단순한 장성이 아닌 종합적인 군사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링은 주변을 훤히 파악할 수 있는 능선을 따라 벽돌로 지은 장성으로 바다링과 주변의 장성은 자연지형에 따라 높이가
달라 접근이 어려운 절벽은 3~4m, 길목과 요충지는 8m가 넘는 곳도 있는데, 높이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연을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이다.
성벽의 폭도 저마다 달라 고비사막이나 북방에 건설된 성벽은 폭이 1~2m에 불과하고 전투를 위한 시설도 많지만, 그에 반해
바다링 지역은 성벽을 모두 2~3중으로 쌓았고, 폭도 3m에서 10m에 달하는 곳까지 있을 정도로 저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바다링 주변 성벽이 이토록 견고하고 큰 규모로 지어지게 된 것은 군사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바다링은 황제가 사는 베이징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기 때문에 어떤 곳보다 튼튼하게 방어해야 했다.
2~3중의 넓은 성벽, 성벽 위의 평탄한 길 역시 군사들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한 것으로 군사적인 목적이다.
만리장성에는 망루, 봉화대, 성문이 많지만 바다링 주변에는 특별히 규모가 큰 망루, 봉화대, 성문이 많다.
바다링 지역에 지어진 망루는 대부분 사각형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도 크다.
바다링 주변에 많은 군사들이 머물면서 경계를 했다는 것을 알려 주며, 또한 봉화대도 크고 성문도 다른 곳에 비해 크고 많다..
우리의 호텔 건너편에는 88층의 거대한 국무대주점(國貿大酒店 China World Summit Wing)...
중국 중앙방송 건물..
우리가 3일간 머무를 호텔..
아침식사를 하는 호텔 레스토랑..
호텔을 나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만리장성이 눈에 들어온다..
만리장성을 오가는 열차..
닝샤창청이즈(Ning xia chang cheng yi zhi , 宁夏长城遗址(녕하장성유지))
중국장성박물관(中国长城博物馆)이라고 일컬어지며 전체 길이는 1,500㎞에 이른다.
전국시기(战国时期)부터 진(秦), 한(汉), 수(隋), 명(明) 등 여러 왕조에 걸쳐 축조한 장성이다.
명대의 장성이 닝샤후이족(寧夏回族) 자치구를 거쳐 가는 구간은 링우헝청(灵武横城)에서 옌츠현(盐池县) 동쪽의 허둥창(河东墙)까지
약 320㎞이다. 이 구역의 장성은 베이징(北京) 바다링(八达岭)의 형식과는 달리 흙을 다지거나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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