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 6. 20(수)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
○ 백양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로 40여개의 사찰을 관할한다. 백제 무왕33년(632년)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암사라 하였다.
고려 덕종3년(1034년)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고, 충정왕2년(1350년)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였다.
선조7년(1574년) 환양(喚羊)선사가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환양선사가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 뒤 정조10년(1786년)
환성(喚惺)이 중건하였고 고종1년(1864년) 도암(道巖)이 중건하였으며, 1917년 송만암(宋曼庵)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암은 45세 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 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佛事)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講院)을 개설하고 중앙불교
전문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31본산시대의 본산이었으며, 현재 부속 말사 26개소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극락보전(極樂寶殿)·명부전(冥府殿)·칠성각(七星閣)·진영각(眞影閣)·천왕문(天王門)·
선실(禪室)·요사채와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의 사물(四物)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普覺行)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23체가 봉안되어 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32호인 극락보전은 40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정조 대에 지었다.
1973년 단청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각 주두(柱頭)마다 공포가 장식되어 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十王)과 목조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봉안되어 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44호인 사천왕문(四天王門)은 백양사의 정문으로 1917년 건립되었으며, 문의 오른쪽에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왼쪽에는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 팔층탑(八層塔)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休靜)·유정(惟政)·모운(慕雲)·태능(太能)·범해(梵海) 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石鐘) 모양의 탑과 비(碑)가 있다.
백양사의 산내암자로는 약사암과 영천굴,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 천진암 등이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日光亭)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佛家)의 시련법식(侍輦法食)이 거행되며, 백양사 뒤의
학바위는 고려 때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낸 곳이라 한다. 절 일대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약 3만 그루가 밀집하고 있어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백암산의 학봉·상왕봉·사자봉·가인봉 등의 절경과 설경 등이 어울려 백양사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정면5칸, 측면2칸의 익공식(翼工式) 맞배집으로 송만암(宋曼庵) 대종사가 백양사 5창 당시 5년에 걸쳐 창건한 목조 18평의 건물이다.
정문 어칸(御間)은 사찰 통문(通門)으로 개방되었고, 좌우 협칸은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안치하였다.
1945년 복원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 사천왕을 모신 건물로 익공식과 주심포식을 사용한 절충식 건축물이다...
정면 삼칸 좌우에 두 번씩 봉안하고 가운데는 사찰통문으로 쓰이며, 일명 ‘봉황문’이다.
사찰 입구에 이러한 천왕문을 세운 까닭은 사찰을 외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이 수호신들에 의해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갖게 하려는 뜻도 있고, 일심을 뜻하는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도량이다.
사천왕문에 한말 대웅전 증축과 함께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면서 불법 수호와 인간 선악의 관찰, 그리고 사부대중의 보호가 그 임무였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청색으로 칼을, 남방 증장(增長)천왕은 붉은색으로 용을, 서방 광목(廣目)천왕은 백색으로 탑을,
북방 다문(多聞)천왕은 흑색으로 비파를 쥐고 있다.
그리고 툭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술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칼, 보탑, 창, 비파 등을 들고, 발에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 때 발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1937년에 조성된 범종루(梵鐘樓)는 2층으로 된 누각으로 사물(四物)인 범종,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이 걸려 있다.
그 역할은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의 격려의 의미로 상징되었던 것이 점차 그 의미가 지옥중생 구제로 확대되었으며,
종에 새겨진 인물도 처음에는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상에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로 변화되고 있다..
범종(梵鐘)에는 마치 젖꼭지 모양으로 9개의 유두가 있는 중생계를 상징한다.(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유곽은 사방으로 배치한다는 것은 주생계가 4가지(난생, 태생, 습생, 화생)모양으로 태어난 것으로 중생계를 의미한다..
법고(法鼓)는 홍고(弘鼓)라고도 하며 줄여서 북(鼓)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잠자는 중생의 마음을 울리게 하여 깨닫게 한다는
뜻으로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며 작은 막대기 두 개로 마음 心자를 그리며 친다고 한다..
운판(雲版)은 구름처럼 생긴 쇠판을 말하는데, 공중에 날아다니는 중생이나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친다고 한다.
목어(木魚)는 나무로 만든 고기란 뜻으로, 이는 수중의 중생을 위해서 친다고 하며 수중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을
강조하기 위한 법구로 사용된다..
대웅전은 1917년 만암 대종사가 백양사를 5중창하면서 건립하였다.
백학봉을 배경으로 전경은 너무도 뛰어나지만 건물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양식에서 후퇴한 면모를 여실히 엿볼 수 있으며 특히 단청은 조선말 최고의
금어(金魚)인 일섭스님이 주도하신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법당으로, 건축양식은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며, 내부는 우물천정 형식이다..
2단의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 중앙으로 계단을 두었고, 자연석 주초를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간포 2조씩의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
불전 안에는 본존인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 있고 백양사의 역사를 담은 수미단이 돋보인다.
아울러 아난·가섭상과 시자상 2체, 나한상 23체, 독성상, 인왕상 2체, 또다른 석가불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 불상의 뒷편에는 1922년에 봉영(琫榮) 스님이 그린 영산회상도와 제석천룡탱화 및 1926년에 제작된 독성탱화와 1988년에 그린
8폭의 팔상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後佛幀畵)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6대 보살과 사천왕, 10대 제자가 3단으로 나뉘어 그려진 영상회상도이다.
장지에 채색을 하였는데 가로 320cm, 세로 350cm이다. 좌측 하단에 실린 불화기에 의하면 불기2949년(1922)에 금어(金魚) 봉영(琫榮)과
재명(再明)이 조성하였다고 되어 있다. 불화는 전체적으로 초록색과 빨강색조로, 약간의 옷자락과 먼 하늘 표현에 청록색을 사용하였다.
중앙의 석가모니는 꽃무늬 단이 달린 빨강색 법의를 입고, 대좌 위에 앉은 모습으로 둥근 얼굴이다.
주변의 성중들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일 하단이 가장 크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크기로 배치하여 점점 멀리 보이도록 하였다.
제일 하단의 양쪽 끝에 위치한 두 천왕은 갑옷을 입고 매우 건장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인 형태나 손의 모습 등이 어색한 편이다.
1926년까지 백양사를 증축할 때 이 불화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채색과 구름 등의 표현에서 20세기 초기 작품의 특성이 보인다..
팔상탱화(八相幀畵)는 각각의 크기가 106cm×114cm, 104cm×114cm, 104cm×114cm이다.
1987년 11월에 이 팔상탱화 3점을 반환받아 현재 백양사가 소장하고 있다. 원래 8폭이었던 것을 5폭은 도난당하고, 3점만 남은 것으로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상출가상(逾城出家相)』이다.
모두 비단에 채색된 것으로 연대가 명시된 화기는 없다.
화면 안에는 여러 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각 그림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빨간색 네모 칸에 검정글씨로 쓰여 있다.
모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하고, 각 이야기의 내용을 분할된 공간 안에 그려 넣었다.
작품의 색과 표현 형식으로 보아 19세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현재 대웅전에는 1988년에 그린 팔상탱화가 향 좌측에 봉안되어 있는데, 이 팔상탱화와는 표현형식이 다르다..
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
1824년11월에 화순 쌍봉사의 오백나한전이 무너져서 나한전 내의 불상을 백양사로 옮겨왔다.
석조나한좌상 241구, 목조나한좌상 200구, 소조나한좌상 32구 및 석조사자상(使者像) 3구, 목조수문장상 2구 등 모두 478구였다.
그중 대부분이 유실되고 남은 7점을 대웅전 향 좌측벽에 모셔져 있는데 모두 석조이다.
높이 40cm내외로 표정과 자세가 매우 독특하며, 여려가지 조각방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십육나한은 현세에서 정법을 지키는 16명의 아라한(阿羅漢)을 가리키는 것으로 백양사 대웅전 십육나한상은 1925년 공시찬(孔施贊)이
조성한 것으로 현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각각의 나한은 하나의 나무에 조각하여 의복과 표정을 모두 다르게 처리하였다.
얼굴의 주름과 목 힘줄, 웃는 표정과 빠진 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였으며, 옷자락에 비단 무늬까지 섬세하게 그려 넣은 좋은 작품이다.
대웅전 신중탱화는 대웅전의 향우 측 정면 벽에 걸려 있는데 가로 210cm, 세로 290cm로 비단에 채색된 그림이다.
이 불화는 대웅전 후불탱화와 함께 1922년에 그려진 것으로, 후불탱화보다 초록색의 사용을 줄이고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여 그렸다.
일반적인 신중탱화와는 달리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왕 등이 상단에 흩어져 크게 그려져 있고, 많은 신중들이 대략 4개의 단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화면 하단부터 그 크기가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급격하게 작아져서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금어는 봉영(奉榮)이다.
독성탱화는 가로 130cm, 세로 158cm의 크기로 장지에 채색하여 그렸다.
1926년에 대웅전 후불탱화를 그렸던 금어 봉영(奉榮)과 화사(畵師) 춘화(春化)가 제작하였다.
폭포가 흘러내리는 험준한 바위산이 빽빽이 들어찬 언덕에, 두 동자를 거느린 나반존자가 앉아 있다.
나반존자는 붉은 해무리 모양의 두광을 가지고 있고, 턱밑까지 내려오는 긴 눈썹, 구레나룻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독성의 얼굴은 움푹 들어간 눈으로 인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손에는 긴 석장과 염주를 들고 있으며 언덕 사이에 아름다운 꽃과 불로초 등이 그려져 있다.
조사가 앉은 언덕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몇 그루 자리 잡고 있는데, 언덕을 흘러내리는 반복된 선과 소나무 가지의 동일한 형태가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어서 도식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나반존자는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며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을 말하는 것으로 백양사의 나반존자상은 십육나한상과
마찬가지로 1925년에 이만총(李萬聰)이 조성하였다. 소조상으로 높이 42cm, 가로 42cm, 세로 33cm 크기이다.
십육나한상과 그 표현방식이 매우 흡사하다..
극락보전(極樂寶殿).. 정면과 측면 각3칸인 맞배지붕으로 백양사 전각으로는 절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선조7년(1574년) 승려 환응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확한 조성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조선 영 · 정조대에 걸친 시기의 건물로 보고 있다.
낮은 석조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처리한 둥근 기둥을 세워 기본 구조를 마련하였다.
건축 구조상 다포식(多包式) 건물에 속하며 건물 내부는 우물천정, 우물마루를 깔았다.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따르면 백양사 극락전불양계서의 문정왕후빈향축열서(文定王后賓香祝列書)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건물을 짓는 데 문정왕후가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판에 극락보전(極樂寶殿)이라고 씌어 있는데, 동국진체라 여겨진다..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
백양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여래상은 서방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여래를 구현한 상이다.
높이 207cm에, 폭 146cm의 장대한 체구에 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불상으로, 수인은 아미타 9품인 중 중품중생을 가지고 있다.
결가부좌를 튼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그 수법을 보아 임진왜란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명부전(冥府殿)..
정면5칸, 측면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우물마루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명부전은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지장보살과 십왕(十王)을 모시는 건물이다.
지장보살은 원래 부처의 반열에 오른 보살인데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여 지옥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한 이유로 보살이지만 관을 쓰지 않고 있으며 손에 궤장이나 법륜을 가지고 있는 경우로 표현된다.
백양사 명부전에는 지장보살 이외에 지옥을 다스리는 십왕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는데 각자의 지옥을 다스리며 사람의 평생의 선악을
심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백양사 명부전 지하에 납골당인 영각당을 지어 200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명부전 지장삼존 시왕상(冥府殿 地藏三尊 十王像)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 그리고 시왕(十王)및 사자(使者), 판관(判官)이 모셔져 있다.
지장보살은 높이 110cm이고, 폭 77cm로 앉아있는 모습이며, 도명과 무독귀왕은 입상으로 높이 144cm이다.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은 목조이고, 시왕상은 소조상으로 만암스님이 중창불사를 할 때 조성한 것이다.
지장보살은 승려의 머리 형태를 가지고 얼굴 아랫볼이 부풀어 오르고 목이 거의 없는 모습이다.
손에는 아무런 지물을 들지 않고 아미타인 수인을 결하고 있다..
시왕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높이 150cm이고 지옥사자와 판관은 높이 140cm이다..
진영각(眞影閣), 칠성전(七星殿)..
대부분의 진영각과 칠성전은 독자적인 건물을 갖고 있으나 백양사의 경우에는 하나의 건물로 이어져 있다.
정면4칸, 측면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진영각이 정면3칸, 칠성전이 1칸을 차지하고 있다.
진영각은 사찰의 조사 및 업적이 높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곳으로 백양사의 진영각에는 개창자인 여환선사를 중심으로 중연선사와
각진국사 및 30여분의 고승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만암스님 당시에 대중창을 하면서 많은 조사진영을 새롭게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여환조사와 중연선사, 각진국사 등 세분의 개산조와
대중창주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었고, 따로 도의영당에는 한국선종의 시조인 도의국사와 그 문손들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이 조사진영을 최근 모두 도난당하였다가 여덟 점을 되찾았다. 되찾은 조사진영은 성담선사진영, 취운당대선사진영, 보경당대선사진영,
금해대선사진영, 대공덕주학산당진영, 경허당대선사진영, 경담당대선사진영이다.
이 진영들은 현재 사찰에서 따로 보관중이고, 조사전에는 최근에 그린 조사진영이 29점 봉안되어 있다.
만암스님 중창 때 그려진 조사진영은 모두 같은 사람이 그려서 얼굴의 색과 표정, 두상 등을 다르게 그려 개인의 특성이 드러나지만,
구도와 의복의 처리는 유사하고, 특히 앉은 자세와 바닥에 펼쳐진 옷 주름은 매우 어색하다...
칠성전 칠성상(七星殿 七星像)..
대웅전 앞에 조사전과 한 건물로 모셔진 전각이 칠성전이다.
칠성전에는 칠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일광보상(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 칠원성군(七元聖君)이 조각되어 모셔져 있다.
본존은 근래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칠성과 일광, 월광 두 보살은 소조상으로 높이가 대략 80cm 내외인데, 1880년의 작품이다.
이 칠원성군은 원래 고종17년(1880) 경진년에 왕의 명으로 조성하여 운문암에 봉안하였다.
이후 1948년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운문암에서 위험을 느껴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칠원성군은 모두 문관의 복장을 한 모습으로 머리 위에 하얀색 별이 달려 있고 검은색 단이 둘러진 빨간색 또는 파란색의 윗옷과 노랑,
파랑색의 내의를 입고 있다.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보살의 모습에 왕관형 관을 쓰고 있다.
머리 위에 일광보살은 빨간색의 해를 월광보살은 노란색의 달을 매달아 놓았다..
우화루(雨花樓)는 정면 7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화'는 꽃이 피처럼 쏟아졌다는 것으로 『법화경』「서품」에 보면 '하늘에서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신 곳에 만다라화가 비오듯 우수수 쏟아졌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인다..
우화루 뒤편에는 만세루 편액..
팔층석가사리탑(八層釋迦舍利塔)
1925년에 조성된 석가사리탑은 대웅전 뒤에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기 위해 팔각 팔층으로 조성된 석탑이며 내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특히 이 진신사리는 근대 불교계의 지도자였던 용성스님이 비장하고 있던 것인데, 스님의 소원에 따라 이곳에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설선당은 현재 주지스님이 기거하시는 요사채로 스님이 수행하시는 공간이라 담과 대문으로 경계가 되어있다..
포교국은 템플스테이를 관장하는 곳이다. 사찰에 관련하여 궁금한 것이 있다면 포교국을 찾아 물어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보도 얻고 차담도 나눌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해운각은 사찰내 일하는 보살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범종루와 백학봉..
1918년 만암선사가 건립한 청운당..
염불원...
중화당..
노석산방(老石山房)..
교육관..
...
벽안당(碧眼堂)..
높은 돌축대위에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다향각은 백양사 내부에 있는 유일한 상점으로 불교용품과 각종 차, 다구, 불교미술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술품과 차를 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내부에서 보이차 등 귀한 차를 마실 수 있다...
만암대종사 고불총림도장비...
경내풍경..
쌍계루(雙溪樓)...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백양사 성보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본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1370년에 무너진 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특히 1381년에 작성된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의하면 이 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日光亭)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佛家)의 시련법식(侍輦法食)이 거행되며..
부도전...
일주문을 지나면 비자나무로 감싸인 곳에 오른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보인다.
돌계단을 올라 팔각의 문 안으로 들어오면 부도전이 있다..
백양사에서 주석하던 역대 고승 18인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형 부도와 비석을 한데 모아 두었다.
가장 윗단에 6기, 중간단에 15기, 아랫단에 6기, 담장 밖에 2기 등 총 29기의 부도와 비석이 있다...
소요대사 부도는 2002년 보물 제1346호로 지정되어 박물관 내부로 모셨다..
만암당·묵담당·영월당·벽허당 등의 부도와 금해대선사·화담선사·양악선사 등의 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제자로 백양사 21세 주지를 지낸 벽송대사 지엄의 부도를 비롯한 몇몇 부도는 도난당하였다...
일주문은 경내로 들어감을 알리는 첫 문이다. 기둥이 한줄로 되어있다고 해서 일주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백양사는 2층 높이의 우람한 크기 때문에 네 귀에 보조기둥이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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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기행] 선운산 도솔암(兜率庵)과 내원궁(內院宮), 그리고 마애불(磨崖佛).. (0) | 2012.06.17 |
[고창기행] 선운사의 산내암자 참당암(懺堂庵).. (0) | 2012.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