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기행] 선운사의 산내암자 참당암(懺堂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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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기행] 선운사의 산내암자 참당암(懺堂庵)..

by 정산 돌구름 2012. 6. 17.
[고창기행] 선운사의 산내암자 참당암(懺堂庵)..

 

탐방일 : 2012년 6월 16일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참당암 소개

  선운사의 산내암자로 이전에는 대참사(大懺寺)·참당사(懺堂寺) 등으로 불렸으며,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신라 진평왕49년(627년)에서 진덕여왕3년(649년) 사이에 의운조사(義雲祖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충숙왕16년(1329년)에 상량(上良)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조선 중종25년(1530년) 일헌(一軒)이 중수하였다.

  인조1년(1623년) 익순(益順)이 정문을 중수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불타자 1642년 숭인(崇印)이 중건하였다.

  숙종39년(1713년) 회징(會澄)이 부속암자인 몽성암(夢醒庵)을 중창하였고, 영조6년(1730년) 배극(倍極)이 안양암(安養庵)을 중창하였다.

  1754년 청원(淸元)과 삼익(三益)이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삼익과 찬명(贊明)이 정문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03호인 대웅전과 약사전, 산신각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특이한 느낌을 주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약사전 안에는 전북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선운사약사여래불상

  (禪雲寺藥師如來佛像)이 있다. 이 약사여래상은 옥석(玉石)으로 만들었으며, 의왕불좌상(醫王佛坐像)이라고도 한다.

  오른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대단히 희귀한 불상으로, 이 절의 창건시 인도로부터 왔다는 전설이 있다.

  참당암은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한다.

  의운스님이 도솔산 법화굴(法花窟)에 살고 있을 때 산 아래 죽포 포구에 돌배 한척이 들어왔다.

  이 배는 속인들이 보려고 다가가면 바다로 멀어지곤 하다가, 의운스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포구로 나가서야 저절로 다가왔다.

  이윽고 배에서 노를 젓던 한 금인(金人)이 나타나 여러 불상과 경전과 보인(寶印)을 스님에게 전해주고 떠났다.

  그날 밤 스님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서 "나는 우전국의 왕인데 불상을 모신 곳을 찾아 해동의 여러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던 중,

  도솔산에 대참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이곳으로 왔으니, 청컨대 집을 짓고 편안히 모시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대웅전(大雄殿)

신라 때 의운(義雲)스님이 진평왕(579∼631)의 시주를 받아 처음 세웠고 영조 1년(1724년)에 건립된 참당암의 중심건물이다.

보물 80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사람 人자모양)으로, 매 칸마다 4분합문을 달았다.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 기단의 가운데에 계단을 설치하고 굵은 자연석을 대충 다듬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

측면은 왼쪽 앞칸에만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 칸은 모두 벽면으로 처리하였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곳으로 조선 영조 1년(1724)에 고친 것이다...

 

창건에 대하여 기록한 <참당사고사급법당기(懺堂寺故事及法堂記)>가 1794년(정조18)에 지어진 점으로 보아 이때쯤 대웅전이 중건된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려시대 건축 부재(副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채롭다.

오랫동안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단청을 하지 않아 지금은 퇴락이 매우 심하다.

신라시대 의운화상(義雲和尙)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려시대 건축 부재(部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채로우며,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그 뒤에는 후불탱화로 1900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였다..

 

왼쪽에는 최근작인 신중탱화와 1910년에 조성한 현왕탱화, 우은당(遇隱堂) 대선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오른편의 모습...

 

지장전(地藏殿)..

정면 3칸, 측면 2칸에 자연기단 위에 덤벙주초로 두리기둥을 하고 있으며 다포형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풍판이 옆에 달려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이 퇴락한 것을 보수하였고, 엇합만 2분합이며, 주련은 없다.

내부에 모셔진 존상은 지장보살상으로서 전북 유형문화재 제33호인데, 약사불좌상으로도 부른다.

지장보살상 뒤에는 지장시왕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

6각의 연화좌대에 앉은 불상은 높이 80㎝, 무릎 너비 50㎝이며,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이마에는 띠를 둘렀다.

백호는 새로 보수한 듯하며, 상호는 두 볼이 두툼하게 살쪄 풍만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눈썹은 가늘고 둥근 모양이 초생달을 닮았고, 반쯤 뜬 눈은 입정상(入定相)을 하고 있다..

 

응진전(應眞殿)과 명부전(冥府殿)..

정면 6칸, 측면 2칸이고, 초익공의 주심포 건물에 덤벙주초에 두리기둥읗 하고 있으며 맞배지붕의 형태이다.

건물 하나에 응진전(應眞殿)과 명부전(冥府殿)이 나란히 들어서 편액으로는 ‘응진전’과 ‘명부전’을 한꺼번에 사용한다.

단청은 내외부에 칠해져 있으나 화려하지는 않으며, 내부는 각각 별개의 법당 형식을 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내부에는 <전라북도 무장군 도솔산 상당사 오백나한 중수기념기>, <도솔산 대참사 불향당동첨성판문> 2개가 문짝 위에 놓여 있다.. 

 

응진전에는 수미단 위에 석가불좌상을 주존불로 하여 좌우에 협시보살이 앉아 있고, 그 좌우로 500나한상을 빽빽하게 조성하였으며,

입구의 좌우에는 소조불로 되어 있는 인왕상 1쌍이 세워져 있다..

 

명부전(冥府殿)에는 지장보살상을 주존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를 이루는 삼존불로 뒤에는 지장보살화가 걸려있다.

이 외에 시왕, 판관, 녹사, 사자, 인왕상 등을 목조로 조성하여 명부세계의 장엄을 묘사하고 있다...

 

지장보살상의 왼쪽으로 시왕중 짝수대왕(2-초강왕, 4-오관왕, 6-변성왕, 8-평등왕, 10-오도전륜왕)인 5분이 모셔져 있다.

주로 문관복에 원유관을 쓰고 홀을 들거나 두루마리를 펼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장보살상의 오른쪽에는 홀수대왕(1-진광왕, 3-송제왕, 5-염라왕, 7-태산부군, 9-도시왕)인 5분이 문관복에 원유관을 쓴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 외에, 판관, 녹사, 사자, 인왕상 등을 목조로 조성하여 명부세계의 장엄을 묘사하고 있다...

 

삼층석탑...

 

창담암은 선운사에 속한 암자 가운데 하나로,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