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기행] 한국33관음성지 천년고찰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고창기행] 한국33관음성지 천년고찰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by 정산 돌구름 2012. 6. 17.
[고창기행] 천년사찰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탐방일 : 2012년 6월 16일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로  <선운사 사적기>에 따르면 백제 위덕왕24년(577년)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基)의 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공민왕3년(1354)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조선 성종3년(1472년)부터 10여 년 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해군5년(1613년)에는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원준(元俊) 등 승려와 함께 재건을 도모,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

  (萬歲樓)·영산전(靈山殿)·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이 절은 불교의 기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왕성해지고,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던 선종(禪宗)에서도 선리(禪理)를 근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던 조선 후기에, 조사선(祖師禪)의 본연사상을 임제삼구(臨濟三句)에 입각하여 해결해 보려고 시도한

  불교학자 긍선(亘璇)이 처음 입산수도한 절이기도 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이 있으며,

  대웅전(大雄殿)도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극락교와 천왕문...

 

천왕문(天王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며, 조선시대 명필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천왕문'이라는 편액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1624년 창건된 것으로 전하지만 현재의 문은 1970년에 건립된 것으로 최근 사역을 정비하면서 앞쪽으로 이건되었다.

아래층에는 중앙에 통로를 내고 좌우 협칸에 사천왕상을 봉안하여 천왕문의 성격을 가지게 했다..

 

 

만세루(萬歲樓)..

전북유형문화재 제53호(1974. 9. 27)로 지정된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강당건물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19세기 말에 중건된 익공계(翼工系) 구조의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창건 당시부터 건립되어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현재도 700년이 된 두 개의 아름드리 기둥이 남아 있어 옛 자취를 느끼게 한다.

규모에 비해 높이가 낮고 비규격적인 누(樓)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의 어칸(御間 중앙칸)은 폭이 390cm로서 양쪽 협칸(夾間)에

비해 2배 정도 넓다. 자연석 기단에 기둥은 일부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사용하였고, 자연목을 다듬지 않은 채 껍질만 벗겨 쓰기도 했다...

 

중앙칸의 양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부의 서쪽 앞 두 칸씩은 칸막이로서 2층 구조를 만들어 종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낮은 동자주를 얹었고 기둥 윗부분에는 작은 나무토막들을 포개 쌓았다.

특히 뒷면이 대웅보전과 마주보며 개방된 것은 설법을 위한 강당의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면의 판창(板窓)을 열면 대웅전의 앞마당에서부터 강당을 포함한 공간이 막힘없이 트이게 되어 통풍과 전망을 아울러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로 하였다...

 

1963년1월21일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

선운사의 본전(本殿)으로서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중건하여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긴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고,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에, 벽의 양 측면에는 풍우를 막기 위해 널판으로 풍판(風板)을 대었다.

막돌로 허튼 쌓기를 한 얕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모든 칸에는 빗살 창호를 달았으나 후면에는 중앙 칸에만 창호를 달고 양 측면의 협칸에는 교창(交窓)을 달았다.

동쪽 면은 모두 벽체로 처리하고 서쪽 면에는 외짝 출입문을 달았다..

 

천장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커다란 운룡문(雲龍紋)이 그려져 있고, 안쪽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여

구름ㆍ학ㆍ연꽃 등으로 장엄하였다. 내부 벽에는 산수ㆍ비천ㆍ나한 등을 벽화로 장식하였고, 닫집과 중앙의 불단 등은 비교적 간략하고

단순한 모습이다. 이 건물은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목조(木造) 삼세불을 봉안하고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삼존은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주존(主尊)으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불과 오른쪽에 약사불을 모셨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 14)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회상도ㆍ약사회상도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흙으로 빚은 소조삼세불로 노사나불이다. 1634년(인조12)에 법정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 비교적 균형잡힌 모습이다.

후불벽화로는 1688년에 조성된 약사회상도가 걸려있다.

 

아미타불화와 같이 간단한 구도로 연화좌 위에 앉아 결 가부좌를 하고 설법인을 결하며, 양쪽에는 붉은 연꽃가지를 든 일광보살과 하얀 연꽃가지를 든 월광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차가운 푸른색조를 띠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三尊佛)..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의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고 삼신불 사이에는 근 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대웅보전의 중앙 후불벽 3면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 각각 세로 465cm, 가로 320cm의 흙벽에 회칠을 하고 채색하였다.

이 후불벽화는 존상(尊像)으로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불ㆍ약사여래불ㆍ아미타불의 뒷벽에 각각 그려져 있는 것으로,

중앙은 비로자나불회, 우측은 약사불회, 좌측은 아미타불회도를 나타내었다.

비로자나불회도 하단에 기록된 화기에 의하면 이 벽화들은 1840년 현세에 수복을 누리고 내세에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조성한 것으로,

성찬(性贊)의 화주로 익찬(益讚)ㆍ내원(乃圓) 등 11명의 화원이 그린 것이다.

대웅보전 삼불회 벽화와 관련된 자료로 선운사사적인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을 들 수 있는데,

이에 의하면 1839년 큰 비로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져 1840년 봄과 여름에 보수 및 단청을 했으며 화주는 성찬(性贊)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1840년 여름에 있었던 단청불사와, 대웅보전 후불벽화의 화기에 적힌 화주 성찬과 일치한다.

비로자나불회도는 세 폭의 벽화 중 중앙 그림으로 거대한 화면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상단에 사천왕이 배치되었다.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은 화면 아래에서 줄기가 솟아 올라온 연화좌 위에 자리하고 있다.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가진 비로자나불은 소용돌이 모양의 나발(螺髮)에 쌍꺼풀진 눈, 내려온 눈썹이 특징적이다.

색조는 적색ㆍ녹색ㆍ흰색이 주조색이며,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를 띠고 있다.

약사불회도는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상단에 2보살과 4제자가

배치되었다. 약사삼존도 비로자나삼존과 같이 화면 아래에서 줄기가 솟아 올라온 연화좌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아미타불회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상단에 2보살과 2제자, 팔부중 가운데 2위가 배치되었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지만 녹색 계열과 흰색 등이 많이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푸른 느낌이 많이 돈다..

 

 

괘불대(掛佛臺)..

대웅보전 앞에 있는 2쌍의 괘불대는 괘불을 내어 걸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현재 마모되기는 했으나,

옹정육년(雍正六年, 1728년)과 가경삼년(嘉慶三年, 1798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6층석탑(六層石塔)...

전북 유형문화재 제29호인 6층석탑은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에 위치하며,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방형의 축대안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정사각형의 돌 윗변을 둥글게 처리한 하대석을 얹었다. 탑의 정확한 조성년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녔고,

5단의 옥개층급을 지니는 등 부분적으로 통일신라의 전형탑을 연상케 하는 고려 초기의 작으로 추정된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 때 행호선사(幸浩禪師)가 홀로 우뚝 솟은 이 9층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을 도모했다고 적고 있어,

현재의 탑은 성종 이후 3층이 유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팔상전(八相殿)..

영산전과 명부전 사이에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영산전 뒤편으로 한단 높이 기단을 쌓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이익공 형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되어 있다.

1706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조선후기의 건물로서, 1965년에 크게 수리하였다...

 

내부의 불단은 'ㄷ'자형으로 간략하지만 닫집은 2개의 기둥을 세우고 천룡조각을 한 화려한 형식이다.

불단 중앙에는 근래에 조성한 금동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였으며, 후면벽에는 1901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팔상탱을 봉안하였다..

 

팔상전 팔상탱(八相殿 八相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것을 팔상탱이라고 하는데 선운사의 팔상탱은 관하종인(觀河宗仁) 등이 1901년에 조성한

것과 근래에 조성한 것이 혼재되어 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도솔천궁에서 흰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마야부인의 몸에 입태(入胎)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마야부인이 룸비니동산에서 태자를 낳는 장면이고,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성장한

싯달타 태자가 성밖의 사문(四門)으로 나가서 인간의 생로병사의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은 태자가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장면,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은 태자가 출가한 후 10년 동안 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태자가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공격을 막고 항복받는 장면,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은 깨달음을 얻은

세존이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고 있는 장면,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은 세존이 45년간의 중생 교화를 마치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산신당 (山神堂)..

영산전 뒤편에 길게 설치된 기단 위 팔상전의 옆에 위치한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일반적 산신각과 달리 선운사의 창건주인 검단선사와 참당사의 창건주인 의운스님을 함께 그린 진영이 중앙에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산신당의 주인인 산신을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祖師殿)

정면5칸, 측면2칸 팔작지붕으로 2010년4월13일 석전 영호대종사 열반 16주기를 맞아 역대 조사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낙성식을 가졌다..

 

창건주인 검단스님을 비롯하여 의운, 설파, 백파, 경담, 환응, 석전스님 등 7분의 진영이 봉안되었다...

 

명부전(冥府殿)...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으로 공포는 초익공 형식을 사용하였는데 연봉이 달린 쇠서나 봉황두 형태의 초각 등에서

조선후기의 장식적 경향이 나타난다. 정면의 중앙 3칸에는 분합문을 설치하였으며, 양쪽 협칸은 상단에 띠살 형태의 창,

하단에 판장문 형태로 마감하였다.

불단은 전면과 측면의 벽체에 붙여 ‘ㄷ'자 형태로 구성하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명부시왕을 봉안하였다. 천장은 노출천장 을 하였으나

지장보살이 봉안된 윗부분에만 빗천장을 설치하고 운룡문을 그려 닫집을 대신하였다..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나타낸 전각으로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

 

내부 탁자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향우측에 도명존자, 우측에 무독귀왕과 의자에 앉아 있는 시왕(十王)들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좌상(138cm)은 스님처럼 민머리로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위에 올려놓아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소모양을 하고 있다.

방형의 체구에 상체가 긴 편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영산전(靈山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보전 좌측에 위치해 있다.

이 전각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고 1713년에 단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어칸은 육각형의 대석에 원형으로 다듬어진 초석을 사용한 데 비해 측면 쪽으로 그 다음 것은, 아래는 자연석 초석이나 상단을 원형으로

쇠시리한 것을 사용하였고, 제일 바깥쪽의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공포는 쇠서를 내밀지 않고 초각으로 말아 올린 물익공 형식에

가까운 형태로 처리하였으며, 상단에 봉황의 머리를 조각하고 화각첨차를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내부는 중앙 3칸에 불단을 형성하되 어칸의 경우 후벽면까지 붙여 불단을 조성함으로써 반 ‘아(亞)’자형의 불단 평면이 되도록 하였다.

후벽면까지 넓혀진 중앙 불단에는 석가삼존상을 봉안하고, 좌우측에는 ‘ㄱ’자형으로 형성된 불단에 16나한상을 봉안하였다.

평천장과 빗천장을 조합한 형식이며, 중앙 어칸의 후면 고주를 가로질러 운궁형 닫집을 설치하고 빗천장 받침목에 연화 초각을 하였다.

그리고 내부 벽면에는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나한(羅漢) 등의 벽화와 삼존상 뒷벽에 금강역사를 그렸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한 삼존불로 모두 단향목(檀香木)으로 제작한 목불인데

주존의 높이는 300cm이고, 협시보살은 240cm나 되는 거대한 규모이다. 근년에 어느 비구가 이 삼존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다가

이곳에서 화광(火光)이 발하여 달려온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화를 면했다는 염험이 전해온다..

 

범종각..

 

환영장..

관음전(觀音殿)..

대웅보전과 영산전 사이의 요사채를 관음전으로 사용하다가 이를 허물고 1990년 지금의 자리에 신축하였다.

 

지금의 관음전은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보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공포는 이 익공 형식으로 쇠서에 연화를 달고 보머리 앞에 봉황두를 두는 등 장식화된 경향을 보여준다.

내부는 가운데 부분을 평반자로, 전후면의 퇴칸에는 빗반자를 두었는데 중앙의 우물반자는 2줄로 두고 연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빗반자에는 화문을 두고 대들보에는 좌우측에 청용과 황룡을 그려 장식하였다.

보물 제279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였고, 그 뒤에 십일면천수천안관음보살탱을 봉안하였다.

선운사사적기에 1474년 관음전을 완공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된 이후 중창을 하면서 1705년에도 관음전을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부속전각으로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음전 불전...

 

선운사 입구 비자나무 숲속에는 역대 선운사 고승들의 부도 20기와 11기의 행적비가 있는 부도밭이 있다.

이곳에는 설파상언(雪坡尙彦), 영호정호(映湖鼎鎬), 운기당(雲起堂) 등 명문이 있는 부도가 13기이며,

조성시기는 대체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친다...

 

행적비는 백파율사, 설파당, 환응당, 영호당, 금호당, 경담당, 호명당, 석문당, 운기당, 청우당, 운파당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이 가운데 백파율사비는 조선시대의 대명필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적이기도 하다..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