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기행] 선운산 도솔암(兜率庵)과 내원궁(內院宮), 그리고 마애불(磨崖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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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기행] 선운산 도솔암(兜率庵)과 내원궁(內院宮), 그리고 마애불(磨崖佛)..

by 정산 돌구름 2012. 6. 17.
[고창기행] 도솔암(兜率庵)과 내원궁(內院宮), 그리고 마애불(磨崖佛)

 

탐방일 : 2012년 6월 16일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암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산내 암자이다.

  본래는 상·하, 동·서·남·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하·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솔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하도솔이며, 하도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이 상도솔암으로

  전북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도솔암은 진흥왕 때 창건한 뒤 중종6년(1511년)에 지은(智誾)이 중창하였고, 숙종20년(1694년)에 태헌(太憲)이 중수하였다.

  1705년에는 보경(寶鏡)이 중종(中鍾)을 봉안하였고, 1829년에는 경문(敬聞)이 중수하였으나 그 뒤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한 듯하다.

  당우로는 내원궁만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륵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이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밥과 이륜(耳輪), 가슴의 영락이 특이하고 의문(衣文)의 선이

  부드러운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5대걸작불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도솔암은 효종9년(1658년)에 해인(海印)이 창건한 뒤 현종10년(1669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상부 약 100m 지점에는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 석가여래좌상이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동불암(東佛庵)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도괴되었다고 한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다. 이 밖에 이 절의 입구에는 약수가 있다.

 

 

내원궁(內院宮)..

상도솔암으로도 부르며 중종6년(1511년)에 중창된 이래로 1694년과 1817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기단없이 둥근 주춧돌만 두었는데 기단이 없을 경우 건물이 낮아지므로 대신 주춧돌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원형주초에 두리기둥으로 된 초익공의 맞배지붕이고 겹처마의 목조기와집 이다.

주련은 걸려 있지 않으며, 편액은 ‘도솔천내원궁’으로 되어 있다.

문짝은 2분합, 4분합, 2분합으로 되어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고 외벽화는 화조화가 화려하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 차례 보수한 것이다.

내부에는 고려시대의 두건형 금동지장보살상과 그 뒷면에 목각의 지장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내원궁 지장보살좌상(內院宮 地藏菩薩坐像)..

높이 96.9cm로 대좌와 광배는 없어지고 불신만 남아있으며, 상체가 늘씬하고 당당한 편으로 고려후기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63년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었다..

 

이 보살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마를 걸쳐 머리뒤로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뒤집어 쓴 모습과 손에는 한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손과 다른 손에는 법륜을 잡고 있는 계인등의 모습등은 고려시대의 유행하였던 지장보살의 특징과 유사하다.

또한, 두건에 영락장식과 법륜의 정교함, 화려한 팔찌장식등에서 고려 귀족들의 호사스러움을 반영하고 있는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장보살상은 여느 사찰처럼 명부전이 아닌 도솔천 내원궁에 모셔놓았는데, 이는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창건설화에서 연유한다..

 

산신각(山神閣).. 

내원궁의 뒤쪽에 위치한 작은 전각으로서 정면과 측면 각1칸의 덤벙주초 위에 주심포 형식이고 맞배지붕에 풍판이 달린 겹처마이다.

편액은 ‘산신각’으로 되어 있고 주련은 없으며, 내외부에 단청이 화려하게 칠해져 있다....

 

수미단 위에 근래에 조성한 산신 목각탱과 산신탱이 모셔져 있다...

 

입체 문양의 산신탱...

 

나한전(羅漢殿)..

정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로 도솔천내원궁 입구에 자리하고 있이다..

 

안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을 봉안하는 전각으로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목조 채색 석가모니불은 길상좌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합장을 하는 자세로 협시를 이루고있다..

 

주위에는 16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이 16 나한들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미륵불이 나타나기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분들이다...

 

좌우에는 각 8분씩의 16 나한을 모셔놓고 있다.

다양한 포즈로 앉아있는데,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호랑이와 놀고 있는 모습, 바루를 들고 있는 모습 등으로 조각되어 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풍판이 새겨진 목조기와집이다..

도솔암은 본래 상. 하. 동. 서. 남. 북의 6도솔이 있었으나, 상. 북 두 도솔암은 마애불만 남고 나머지 셋은 자취조차 희미해졌다.

상(上)도솔암은 현재 지장보살상이 모셔진 도솔천 내원궁이고, 하(下)도솔암은 마애불상이 있는 곳이며, 북(北)도솔암은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지금의 도솔암은 상. 하. 북. 도솔암 셋을 합쳐 '도솔암'으로 부른다..

 

아미타부처를 본존불로 하여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좌우보처로 상단에 모셔져 있다...

 

아미타극락불탱이 후불탱으로 있다...

 

불화는 근래 제작된 여러 점이 있다. 금어비구 동원(東園)이 조성한 칠성탱, 금어 봉화(奉華), 소현(所賢), 창엽(昌燁) 등이 조성한 독성탱,

불기 2534년에 주지 정인 등이 조성한 신중탱 등이 있다...

 

 

요사채 동당..

 

종무소가 있는 서당..

 

보물 제1200호(1994년)로 지정된 도솔암 마애불(磨崖佛)

몸체는 사각형으로 평판적이고 양감없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일자(一字)로 도드라진 입과 함께 얼굴에는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에 손이 유난히 크고 투박하며, 상현좌(옷주름으로 대좌 위를 가린 것)와 함께 연화대좌(蓮華臺座)를 갖추고 있는데,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초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전체높이 13.0m, 너비 3.0m로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

(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불상은 낮은 부조(浮彫)로 된 장대한 크기의 마애상으로서 결가부좌 (結跏趺坐)한 자세로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가 표현된 머리는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마에 백호(白毫)가 돋아 있는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앞으로 쑥 내민 듯한 두툼한 입술 등으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있다.

두귀는 북한산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北漢山舊基里磨崖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15호)이나 월출산마애여래좌상(月出山磨崖如來坐像)

에서처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힘이 없다.

목은 머리와 몸체가 거의 맞붙어 드러나지 않으나 가느다란 선으로 된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좁아진 평평한 어깨에 걸쳐 입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옷주름 선이 선각(線刻)으로 지극히 형식화되어 있다.

입체감이 결여된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선명하면서도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아랫배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사실성이 떨어져 있다.

손 아래에 드러나 있는 두 발 또한 손과 마찬가지로 크게 조각하였는데, 양감이 없이 선각화되어 있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게 되어 있는 대좌의 상대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다.

하대는 매우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복련화문(覆蓮花文)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비롯한 이 불상의 주위에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패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북한산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불상 앞에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목조전실(木造前室)의

가구(架構)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에 비하여 머리와 손발이 커진 경향,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이 육계가 뾰족한 점, 가슴 아래로 가로질러 새겨진 네 가닥의 군의의

띠 매듭 그리고 탄력성이 줄어들고 세부 묘사에 있어 정교함이 결여된 불상 양식 등에서 고려시대 말기 조각의 전통적인 수법을 보인다.

그래서 이 불상은 조선조 초기의 마애불상으로 추정된다.

명치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조선말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내원궁과 마애불..

 

천마봉에서 바라본 도솔암..

 

경내 전경..

 

 

도솔암 찻집..

정면 5칸, 측면 2칸의 덤벙주초에 주심포건물이고 맞배지붕에 겹처마로 지은 목조기와집이다.

편액에 ‘도솔암찻집’이라 되어 있고, 천연염색체험장을 겸하고 있는데, 경내에서 잠시 내려서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