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5월 25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 용흥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인도승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나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본래는 용구사(龍龜寺)라 했는데 조선 숙종 때 숙빈(淑嬪) 최(崔)씨가 이 절에서 기도한 뒤 영조를 낳자 이후 절 이름을 용흥사로
바꾸었으며, 산 이름도 몽성산으로 고쳐 불렀다.
이 때부터 50여 년간 절이 발전하여 한때 산내 암자만도 7개나 있었고 큰스님도 머무르며 불법을 폈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의병의 본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탄 것을 박항래(朴恒來)가 중건하였다.
1930년대에 백양사 승려 정신(定信)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세웠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탔다.
1957년에 중창하고 1970년대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90년대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유물로는 전남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가 보물 제1550호 승격된 용흥사 범종이 잘 알려져 있다.
1644년(인조 22) 조성된 것으로 종신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당시까지 절 이름은 용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 78cm, 입지름 66cm로서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절 입구 극락교 왼편에는 전남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된 용흥사 부도군이 있다.
7기 모두 팔각원당형 부도로 퇴암(退庵)의 부도가 1717년(숙종 43) 조성되어 가장 오래되었다.
그밖에 희옥(熙玉)과 일옥(一玉)·쌍인(雙忍) 등의 부도가 전한다.
대웅전(大雄殿)..
정면과 측면 각3칸 규모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부연을 단 겹처마 건물로 흙으로 돋운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석 주초석에 그랭이질을 한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다포계로 내외 각 3출목형식이다.
어칸과 양쪽 협문은 각각 정자살창의 이분합문으로 달았다...
대웅전은 6.25 때 소실되었는데, 원래는 석조기둥이었다고 하며 현재 경내 곳곳에서 보이는 석주들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원래의 터에 복원된 것으로 2001년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을 본 것이다..
용흥사 순치원년명 동종(順治元年銘 銅鍾)..
1982년10월15일 전남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3월12일 보물 제1555호로 지정되었다.
전체높이 102cm, 걸고리를 제외한 종신 높이 78cm, 상대 지름 36cm, 중대 지름 58cm, 하대 지름 66cm이다.
종신에 ‘순치원년사월일창평현용귀사 신주종기(順治元年四月日昌平縣龍龜山龍龜寺新鑄鐘記)…’라는 명문이 있어
1644년(인조 22)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용뉴(龍紐) 밑의 종신은 꼭대기가 둥글게 부풀고 외형선은 수직으로 되어 둔중한 모양이다.
여의보주를 들어 올리고 있는 원추형 용뉴가 있고 그 아래 꼭대기에는 복련이 만개하였는데, 이 점은 중국 종의 특징을 따른 것이다.
종신 위쪽에는 원문(圓紋) 안의 범자, 구름무늬의 상대(上帶), 긴 사다리꼴의 유곽과 4구의 합장한 보살입상이 있고
아래쪽에는 용문의 하대가 구연부에서 분리된 채 상·하 2개의 띠 장식에 둘러싸여 있다.
세부를 보면 하대에 굵은 2줄의 횡선을 두고 그 안에 2마리의 용을 양각하였는데, 발톱과 용구에서 화염을 내뿜고 있다.
중앙부에는 요형의 사각선곽을 조식하고 행서종행으로 총 38행 255자의 명문을 새겨넣었다.
4개의 유곽은 9개의 유두와 인동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유곽 사이에 전후좌우로 두광을 선각한 보살상을 정교하게 새겼다.
상대에는 2줄의 횡선에 범자를 양각하였으며 ‘육자대면왕진언’이라 명문하였다.
4마리 용이 서로 얽힌 모양을 조각하여 고리를 걸도록 하였으며 음관은 생략하였다..
미타전(彌陀殿)..
정면과 측면 각3칸 규모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웅전 우측에서 약간 뒤쪽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자연석을 다듬은 주초석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어칸에 4분합문을, 양 협칸에는 이분합문을 달았다.
내부에는 중앙에만 우물천정을 가설하였고, 전후좌우에는 빗천장을 하였다.
우물천장에는 연화문을 그리고 불단위에는 간략하게 닫집을 설치하였으며, 빗천장에는 연꽃과 화병을 그렸다..
내부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후불탱, 신중탱, 칠성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90호인 ‘순치사년명(順治四年銘)’ 범종을 봉안하였다.
미타전은 1964년 건립된 이후 2003년 대웅전이 건립될 때까지 용흥사의 중심건물이었다..
미타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금동으로 만든 좌상으로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머리는 나발(螺髮)로서 반달형의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솟아 있다.
얼굴은 방형이고 통통한 상호를 하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승각기 위로 표현된 가슴은 불룩한 편이며, 법의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이다. 미타전이 건립된 1967년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타전과 대웅전...
산신각 (山神閣)..
정면과 측면 각1칸 규모의 자그마한 맞배지붕 건물로 2000년에 건립한 것이다.
‘山神閣’이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내부에는 2000년에 조성한 독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탱은 동자2명과 호랑이가 같이 있으며, 독성탱에는 동자와 함께 있는 독성을 볼 수 있다.
보제루..
부도군(浮屠群)..
현재 이 부도군은 일괄로 전남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흥사 입구 왼편으로 부도(浮屠) 7기가 나란히 자리한다.
이 부도군(浮屠群)은 부도의 형태와 명문(銘文) 등으로 미루어 17세기 중반부터 1793년까지 약 150년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용흥사부도는 비록 조선시대에 속한 부도이나 그 조형과 작풍이 모두 팔각원당형을 고수하고 있으며,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오른쪽부터 청심당쌍인(靑心堂雙忍), '越□堂大師一□', '松栢堂□主', 명문불명, 불명, '□影堂斗', '퇴암지탑(退菴之塔)' 순이다..
1. '청심당쌍인(靑心堂雙忍)'의 당호를 사용하였으나 조성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용흥사 범종(梵鐘)에 '대선사쌍인비구(大禪師雙忍比丘)'
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17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235cm이고,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따랐다.
2. 탑신에 '越□堂大師一□'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강희5년병오(康熙五年丙午)'라는 명문이 있다.
조성연대는 현종 7년(1666)이고 높이는 238cm이다.
3. 탑신에 '松栢堂□主'라 음각하고 '강희 56년 정유(康熙五十六年丁酉)'라 하여 1717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형 좌대석과 8각 중석, 위를 향해 피어 있는 연꽃, 8각 탑신, 지붕돌, 상륜을 갖추었으며 높이는 230cm이다.
4. 탑신에 문액만 뚜렷하고 명문내용은 알 수 없다. 높이는 240cm이다.
5. 탑신에 균열이 많아 보존상태가 가장 불량하다. 앞의 부도와 동일하여 높이는 233cm이다.
6. 탑신에 '□影堂斗', 이면에 '건륭 5년 경신입(乾隆五年庚申立)'이라 하여 1740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높이는 200cm이다.
7. 탑신에 '퇴암지탑(退菴之塔)'이라는 당호를 새겼으며, 측면에 '건륭 계축 10일월일(乾隆癸丑十日月日)'이라 건립연대를 밝히고 있다.
1793년에 제작된 이 부도는 용흥사 부도군 중 가장 뒤늦게 제작되었다. 높이는 20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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