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1년 4월 9일(토)
○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계룡산
○ 탐방지 소개
동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조그만 암자를 지어 수도하였으며 그가 입적한 후 제자인 회의(懷義)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도량을 짓고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하였다.
920년 도선국사가 사찰을 중창하였고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여 국운융창을 기원하였다고 하여 태조의 원당이라고 불리웠다.
937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 유차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始祖)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낼 때, 동계사(東鷄祠)를
건축하니 참선승려들이 운집하여 사찰이 커지게 되었고 후에 동학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1394년(태조3년)에 들어와 고려 충신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과 함께 공민왕 등 고려 왕족과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으며,
1457년 김시습이 단종과 안평대군, 김종서, 사육신의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1728년(영조4년) 신천영의 난 때 소실된 것을 1814년(순조14년)에 월인(月印)이 예조에 소를 올려 10여 칸을 중건하고,
1824년에는 홍희익이 별채를 짓고 인신(印信)을 봉안하였는데, 1864년(고종1년)에 보선국사(普善國師)가 모두 헐고 절 40칸,
초혼각 2칸을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였다.
현재는 비구니 사찰로 경내에는 고종이 사액(賜額)하였다는 숙모전(肅慕殿)과 동계사(東鷄祠), 표충사(表忠祠), 삼은각(三隱閣) 등이
있으며 암자는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미타암, 귀명암, 상원암이 있다.
이 절이 소유하고 있는 중요 문화재로는 삼성각(충남 문화재자료 제57호)과 삼층석탑(충남 문화재자료 제58호)이 있다..
일주문...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으로 사찰의 입구에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는 의미로 기둥 두개를 일직선으로 세워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 곳에 서서 합장을 하고 사찰 내로 들어가 법의 향기가 넘치는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문인 것이다...
2002년4월26일 개원하였다는 불교문화원...
미타전...
범종루 (梵鐘樓)..
1872년 옥봉스님이 건립하였고, 1974년 수현스님이 범종을 새로 조성하였으며, 법고, 운판과 목어는 2000년 일연스님이 불사하였다.
경내 입구에 면해서 위치하고 있는 범종루는 2층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획하여 그 내부에 범종을 달았다.
공포는 주간포를 1구씩 배치한 다포식이나 정교하지 못하며, 기둥내부로 낙양을 달았고 지붕은 사모지붕을 올렸다.
시멘트 골조로 지어진 아래층에는 동학사관광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범종은 육도중생(六道衆生)을 제도하기 위하여 새벽에 28번을 치는 것은 천상 28천(욕계6천, 색계18천, 무색계4천)이며,
저녁에 33번 치는 것은 28천과 오도(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합해서 33이 된다고 한다....
육화당(六和堂)...
1966년 당시 주지인 광호스님께서 옥봉스님에 이어서 만 3년만에 완공되었던 건물로서 대중을 수용하는 큰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웅전의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서 1968년 당시 주지였던 안광호 스님의 원력으로 완공되었다.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결합된 ‘ㄱ’자 형식의 건물이고, 대중 스님들의 큰방으로서 발우공양을 하고 경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대웅전 (大雄殿)..
1980년 당시 주지였던 봉민스님의 원력으로 개축된 건물이다.
대웅전으로서는 지나치게 왜소한 느낌을 주며 건물 자체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무사석으로 쌓은 석단 위에 세워졌으며, 이 무사석에는 불기 이천구백육십이년(1935) 을해 오월일준공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무사석 석재들은 풍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며 년대가 상당히 경과된 것으로 엿 볼 수 있다....
석조 기단 위에 복연판주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2익공 팔작지붕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3칸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에는 국화, 대나무, 소나무, 난초 등 4군자의 문양을 아름답게 조각하였다.
그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후면 중앙문에 불단을 조성하여 3존불을 안치하였다.
공포는 기둥상부를 결구하고 있는 창방 위에 다시 평방을 놓고 중간호를 중앙어간에 3구, 좌우협간에 2구씩을 배치한 다포식 건물이다.
공포 구성은 내출목, 외3출목으로 하여 내부공간을 한층 더 장엄하고 화려하게 구성하였고 외부 돌출된 쇠혀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고
내부는 운궁형이다. 지붕가구는 불단 앞에 서있는 내고주에 대량을 걸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결구하고있는 2중량가구로
종량 상부에 우물천정을 가설하였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동학사의 대웅전에는 삼존불을 조성하였는데, 석가여래를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아미타여래 좌측에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내부 후불벽에는 근래에 제작된 삼불회상목각탱이 봉안되었다.
그리고 동벽에는 신장탱화와 약사회탱이, 서벽에는 미타회탱과현왕탱이 걸려 있는데 목각탱을 제외한 불화들은 모두 1898년(광무2)에
제작되었다. 전각 내외에 화려한 단청을 그려 장엄하였고, 외벽에는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동학사 대웅전 앞에 위치한 조그만 탑으로, 동시대, 동일한 치석의 방법으로 조성한 것이 아닌 여러 돌을 석탑의 부분적 재료로 사용하여
만든 것인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전각골의 절터에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에 위치한 탑의 구조를 보면 지대석은 2매의 자연석으로 조성되었고 기단석도 2매로 이루어졌으나 1매석은 자연석으로
보완하였고, 나머지 1매석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은 부분 파손을 입고 있는데, 그 윗면에는 옥신 괴임을 높게 조각하였다..
초층탑신은 1매석으로 되었으며, 문비(자물쇠)와 우주를 모각하였다.
초층 옥개석과 2층 탑신은 1부재로 이루어졌으며, 2층옥개석은 1석으로, 3층 옥개석은 탑신과 붙어 하나의 돌로 되었는데
전각은 약간 반전되었고 노반이 또한 1부재로 이루어졌는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3단이며, 낙수면은 완만하다.
초층탑신 2층 탑신은 우주가 표현되었으며, 3층탑신은 망실되었고, 상륜부는 노반 이상이 모두 망실되었다.
이 탑의 현재 높이는 167㎝로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강설전(講說殿)...
강설전은 법의를 강술하고 연설하는 곳으로 전각은 1985년 당시 일초스님이 원력으로 신축하였다...
목조 2층 건물로서 앞면 5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이며, 띠살문 4분합문이다.
처마 밑의 단청이 곱고 4방벽에 외벽화가 그려져 있다. ...
1층은 도서관으로 이용되며 내과와 외과에 관련된 논문과 자료집 등을 열람하고 복사하거나 대출할 수 있다.
한글대장경과 신수대장경 및 고려대장경 등 모든 경전을 갖추었다.
큰 스님의 설법과 고승전, 염불테잎과 자료 CD 등을 대출할 수 있으며, 2층은 서예와 사군자 및 컴퓨터 특강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남매탑(男妹塔)...
동학사에서 북쪽으로 2.8㎞ 쯤 오르면 나란히 서있는 2기의 탑이 있다.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량사지(淸凉寺址) 오층석탑과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는 칠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계룡산 삼불봉 아래 동쪽 8부능선, 해발 약 590m의 등산로 옆에 있는 이 탑의 사지는 근처에서 '청량사(淸凉寺)'라는 명문이 있는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청량사지라 부르고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 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사역 내에는 현재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오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세운 석탑으로 현재 오층으로 된 탑신과 그 위에 노반과 보주형태의 부재가 남아 있다.
전체적 조성수법으로 보아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에서 비인(庇仁) 오층석탑으로 이어져 오는 석탑조성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칠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세운 석탑으로 현재 7층 옥개석 위에 노반만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형태이다.
이 칠층석탑은 조성 수법이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으로 이어져 오는 석탑 조성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오층석탑과 칠층석탑은 일부 결실된 부재가 있기는 하나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부재가 생략되거나 세부 조각수법이 정연하지
않는 등, 고려 중기의 시대적 조형 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이 남매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646년(선덕왕 15)에 상원(上願)이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목에 커다란 뼈가 걸려 고생하는 호랑이를 구해주었는데, 얼마 후 호랑이는 아름다운 처녀를 업어다 놓고 갔다.
상원 스님은 기절한 처녀를 따뜻이 간호하여 소생시켰다. 그 처녀는 상원의 아내가 될 것을 소원하였으나 상원 스님은 사랑과 수행 중에
수행을 선택하여, 그녀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면서, 남매가 될 것을 제의하여 같이 수도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두 사람은 비구와 비구니로 수행하다가 한 날 한 시에 열반에 들었고, 이 소식을 들은 처녀의 아버지는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이 탑을 세워 뜻을 기리니, 후인들이 명하기를 남매탑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석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두 석탑이 나란히 다정하게 있는 것을 보고 훗날 지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남매탑 옆의 작은 암자 상원암....
등운암(騰雲庵)...
해질 무렵 산야를 붉게 물들인 노을과 멀리 백마강에서 반짝이는 은빛 물결 등이 빼어난 경관을 이루어
'연천봉 낙조(落照)'라 불리며 계룡팔경(鷄龍八景)의 제3경으로 꼽히는 연천봉에 있는 조그만 암자인 등운암...
신라 문무왕 때인 665년에 정씨(鄭氏)가 나라를 일으켜 계룡산에 도읍을 정한다는 도참설이 퍼지자
등운대사가 왕기(王氣)를 누르기 위하여 창건한 암자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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