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기행] 해수관음도량 강화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普門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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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기행] 해수관음도량 강화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普門寺)

by 정산 돌구름 2007. 5. 6.
해수관음도량 강화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普門寺)

 

탐방일 : 2007년 5월 5일(토)

보문사(普門寺) 소개

  강화 석모도 난가산에 위치한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懷正)선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진덕여왕 3년(649년)에

  어부들이 불상과 나한·천진석상 22구(軀)를 바다에서 건져내어 천연석굴 안에 봉안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설치하고 천연동굴 내에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하였는데, 탱주 사이에 21개의 감실(龕室)이

  있어 거기에 석불을 안치하였다.

  이 석실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1928년에는 절 뒤편 절벽에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새겼다.

  이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은 지방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자리하고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이다.

  석모도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마애 관세음보살님은 탁 트인 서해를 바라보며 중생들을 살펴주고 있다.

  보문사는 나한전에서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기도 할 수 있는 나한도량으로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보문사 일주문...

한 칸의 팔작지붕이며, 현판에 쓰여진 `낙가산 보문사'라는 글씨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작품...

 

 

일주문을 들어서면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 밑에 있는 감로수, 범종이 달려있는 법음루와 윤장대가 바라보인다.. 

 

 

법음루..

 

 

보문사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 60평 정도의 웅장한 규모...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신중탱화가 하단에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총 3,000분의 옥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법당에 장엄함을 더 하고 있다.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 무늬의 문살로 단순한 가운데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다...

 

 

보문사 석실 나한전...

석실 안에 봉안된 세분의 삼존상과 한분의 관세음보살상, 19분의 나한상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문사가 관음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이다. 일화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석불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그뒤의 역사는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조선 후기인 1812년(순조 12)에 한차례, 그리고 1867년(고종 4)에 다시 경산(京山)화상이 보수..

근대에 들어와서는 1958년 춘성(春城)선사가 석굴 내부를 좀 더 확장하며 개수하였고, 최근에는 1980년 정수(靜守)스님이 내부를 다시

확장하는 한편 지금의 불단(佛壇) 뒤와 옆에 있는 석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석실의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을 조성하였다.

석굴 안은 30평 정도로 넓은 편으로, 상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님, 송자관음보살님..

그리고 이후에 따로 조성한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18나한님이 모셔져 있다.

중단에는 석조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불단 양 옆의 인등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1980년에 조성된 부처님 탱화가 있다.

불단 뒤에는 1982년의 불단 조성을 기념한 <보문사석굴법당연기문(普門寺石窟法堂緣起文)>과 <법화경약모게(法華經略摹揭)>가

새겨져 있고, 연기문은 기현(奇玄)스님의 글이며, 게는 법화경의 내용을 쓴 것으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글씨이다.

나한전은 365일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기도를 할 수 있는 나한도량이다.

 

 

 

보문사 향나무는 보문사 석실(石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 정도이다.

높이 1.7m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동쪽 줄기의 둘레는 1.3m, 서쪽 줄기의 둘레는 1.5m이다.

나무의 형태는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여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국전쟁 중에는 죽은 것 같이 보였으나 3년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보문사 향나무는 보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와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 보문사 맷돌...

보문사는 수도처로 개방되었을 때 승려가 300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 당시 취사용으로 사용했던 이 맷돌은 현재 보문사 석실(石室) 입구 오른쪽 화단의 노천(露天)에 놓여있다.

재질은 화강암(花崗巖)이고 하대석경(下臺石徑)은 1.2m와 1.35m의 규모이며, 지름은 0.69m에 두께는 0.2m이다.

큰 돌 하나로 만들었는데 치석(治石)이 부드럽고 각부 조각도 정성을 드린 것 같다.

원형(圓形)의 하대석(下臺石)은 중앙부의 하대 주록(周綠)에 홈을 넓직하게 마련하였다.

맷돌질을 한 음식물이 그릇에 흘러담겨지도록 홈통도 적당한 넓이로 파여 있다.

상석(上石)은 얇게 만들었는데 상면주록에 굵직한 테를 양각하고 양쪽에 홈을 파서 자루를 끼워 맷돌을 돌리도록 시설하였다.

대개의 경우 하대석만이 남아 있는데 이곳의 맷돌은 상석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서민들의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치석한 수법(手法)이나 각부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문사의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에 조성한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  

 

 

창건 당시 회정대사께서 금강산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문사를 관음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이 관음상은 비록 작품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3대 관음성지인 동시에 기도 성지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불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관음좌상의 모습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등의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눈썹 바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해 바다의 경치는 장관이다.

특히 일몰 경관이 아주 일품이어서 석모도의 일몰은 서해 최고의 낙조(落照)로 꼽히기도 한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