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기행] 방랑시인 김삿갓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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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기행] 방랑시인 김삿갓유적지

by 정산 돌구름 2007. 1. 23.
방랑시인 김삿갓유적지

 

탐방일 : 2007년 1월 20일

유적지 소개

김삿갓 유적지는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이곳에는 시비와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김삿갓의 묘와 생가가 있다.

난고 김삿갓의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강원 영월,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또한 김삿갓 유적지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흐르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이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 풍류로 한세상을 살다간 조선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다.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방랑 시인을 지낸 방랑시인 김삿갓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난고 김병연은 원래 전남 화순의 동복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김삿갓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선생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 魂"을 추모하고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 하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김삿갓 계곡을 자연문화의 중심지,

문예인의 순례지, 김삿갓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하는 시선(時仙)으로 승화시켜 문화관광자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98년도부터 매년 10월초에는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개최된다.

또 강원도 시책사업인『강원의 얼 선양사업』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추진되어 유적지내 조경 및 도로포장 등 기반시설이 조성되어

쾌적한 관광지로 탈바꿈 하였으며 특히, 2003년 10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개관되어 선생의 문학세계를 한 곳에 연구적으로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교육 효과를 거양하고 있다.

 

 

 

 

 

 

 

 

 

 

 

 

 

[ 난고(蘭皐) 김삿갓]

안동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조는 선천부사 익순이고 부 안근과 모 함평이씨 사이의 이남이다.

순조 7년(1807년) 3월 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고 휘(諱)는 병연, 자는 성심, 호는 난고(蘭皐)이다.

순조 12년(1812) 6세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란에 관련되어 3월 9일 복주되자 연루를 피하여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자랐다.

(익순은 고종 정유년에 신원되고 순종 무신에 복작되다)

그후 익순에 대한 문죄는 본인에 국한하기로한 조정 결정이 알려져서 그는 모친과 함께 곡산을 떠나 광주,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 삼옥에 정착하였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그는 20세때 영월도호부 동헌 백일장에서 조부를 지탄한 죄책으로

번민끝에 궁벽한 산협인 이곳 어둔으로 이주하였다.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섰으며 김삿갓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57세로 운명할 때까지 전국을 두루 유랑하였으며 인간사 모든 것을 시제로 낙운성시(落韻成詩)하였다.

또한 그의 과시는 후세 과거 지망자들의 교범으로 쓰여졌을 뿐더러 특히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어 빛나는 서민문학을 남기었다.

철종 14년(1863) 3월29일 전남 화순 동복에서 작고한 것을 3년후 둘째 아들 익균이 현재의 묘소로 이장하였다.

1982년10월17일 세상에서 잊혀졌던 선생의 묘소를 박영국은 김영배, 이상기 등의 증언으로 이곳에서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