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핵심일주 테마기행 8박9일 (제2편 오르차, 아그라, 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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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인도

인도 핵심일주 테마기행 8박9일 (제2편 오르차, 아그라, 시키리)

by 정산 돌구름 2012. 3. 1.
인도 핵심일주 테마기행 8박9일 (제2편 오르차, 아그라, 시키리)

 

< 4~5일차 >

○ 제4일 : 카쥬라호, 오르차, 잔씨역, 아그라

  07:00 호텔 조식 후 카쥬라호 출발 10:00 구도시 올차 도착(약 3시간)

     올차성, 자한기르 마할, 쉬스마할(일부만 관람) 관광왕들의 무덤 쳐뜨리아사원 등 관람

   15:20 올차 출발 / 아그라 향발(약 2시간30분)18:50 아그라 도착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 제5 : 호텔 조식 후 아그라 관광 / 시키리로 이동(약 1시간)

   유네스코 사랑의 기념비 타지마할 관광무굴제국의 위대한 힘 아그라성 방문유네스코 문화제 시크리성 관광

○ 여행지 소개

- 카주라호 [Khajuraho ]

  옛이름은 카르주라바하카(Kharjjūravāhaka)로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州) 북부에 있는 도시로 델리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때는 80기 남짓 사원이 융성했을 것으로 상상되나 현재 20개 이상의 힌두교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10∼11세기 찬델라 왕조시대에는 이 지방의 주도였으며, 파라슈바나트 사원(자이나교), 차툴부자 사원(힌두교) 등을 비롯하여 약 30개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처마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올린 지붕이 특징이며, 붉은 사암(砂岩)으로 된 벽면에는 중세 인도의 부조를 대표

  하는 많은 상(像), 병사·여인상, 관능의 극치를 표현한 조상(彫像) 등이 새겨 있다.

  오리사의 여러 사원과 함께 북형 건축의 전형이며, 스리야를 본존으로 모시는 치트라그프타사찰, 자이나 교의 파르슈바나타, 아디나타,

  간타이 등 여러 사찰 외에는 모두 시바 사원 또는 비쉬누 사원이다.

  서군(西群)에 있어서는 차우사트 요기니 사원이(9세기 말) 가장 오래 되었으며, 화강암을 사용하여 형식도 다른 사원과 전혀 다르다.

  기타 대부분 사원은 황색 사암을 사용, 서군의 라크슈마나, 비슈바나타, 치트라그프타, 데비 쟈가담비, 칸다리야 마하데바(가장 웅대함),

  동군의 앞서 상술한 자이나교 사원, 남군(南群)의 두라데오, 차투르브자 등의 제사찰은 10세기 후반~12세기 전반에 건립된 것으로서

  규모도 크며 형식도 잘 갖추어졌다.  모두 둘레를 벽으로 둘러싸지 않고 높은 기단 위에 동쪽으로 면해 섰고, 가장 완비된 사원이며

  쌍십자형 플랜, 만다파가 현관, 다음 방과 넓은 방으로 나뉘어졌고 비마나(본전)는 사당 전실과 요도에 둘러싸인 사당으로 이루어진다.

  외관상, 뒤쪽으로 갈수록 급속히 밀어올린 4개의 시카라 지붕이 이어져 넓은 방과 본전과의 양쪽측면 동부에 발코니를 갖추었다.

  시카라는 다수의 작은 첨탑(尖塔)을 쌓아올려 높은 탑을 밀어 올린 듯하게 보인다.

  복잡한 건축을 더욱 번잡스럽게 한 것은 광실이지만, 본전 안팎을 메운 엄청난 조각상으로 아프사라스, 스라슨다리(천녀), 나이카(정념

  을 품은 여인), 미투나(포옹한 남녀)가 특히 주목된다.

  살집이 단순하고 사지는 날씬하며 경쾌하고 변화가 풍부한 형태로 밝은 관능성을 보인다.


- 오르차(Orchha)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 있는 옛 라지푸트왕조의 수도.  1531년에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17세기 초에는 분델라의

  족장인 주자르 싱이 반란을 일으켰고, 곧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의 침략을 받았다.

  그 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과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 등의 왕이 살았다.

  영국이 통치하던 때는 인도 중부청에서 관할하였으며 1948년에 인도가 독립하면서 빈디아프라데시주(州)에 포함되었다.

  자한기르마할·라지마할·라지프라빈마할 등의 유적을 비롯, 인도신화의 신 비슈누의 일곱번째 화신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람라자사원·

  락시미나라얀사원 등의 사원이 있다.


- 자한기르궁전(Jehangir's Palace)

  서문 근처에 악바르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것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었으며,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일품이다. 힌두양식과 아프카니스탄양식이 혼합되어 묘한 아름다움을 준다.

  건물 벽면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 흰 대리암 상감을 입혔다.

  파사드는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 양끝에는 차토리(작은 탑)가 올려져 있다.

  중앙에는 안뜰을 두었고, 남북의 홀은 기둥들보 구조로 되어 있다.

  돌로 된 차양을 받치고 있는 까치발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악바르와 자한기르는 샤자 한과 그의 아들과 같이 부자관계가 좋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무굴제국이 장자에 의한 정권 계승 체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능력에 따라 정권을 쟁취해야 했으므로 혈육간의 피의 전쟁이 빈번하여

  무굴 제국의 정권 이양은 한 번도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악바르의 아들인 Jehangir가 정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이 궁전은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볼 수 있는 무굴제국시대 초기건축의 양식과 근엄함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아그라성에 남아있는 건축물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 아그라(Agra)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서부에 있는 도시. 야무나강(江) 우안에 있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며, 델리 남동쪽 200km 지점에 있다.

  동쪽에는 갠지스강 유역의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고, 북쪽은 야무나강 연안을 따라 델리를 거쳐 펀자브지방의 평야에 연속되어 있다.

  무굴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길 때까지 1564~1658년 약 1세기 동안 수도로서 북부 인도를 지배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을

  때도 주변지 구의 행정중심지로서 중시되었으며 오늘날도 지방행정부의 청사가 있다. 대리석 세공·면직물·융단·제화 등의 제조업도

  활발하다. 두강 연변의 교통로와 데칸고원에서 북상하는 교통로의 접속점에 있어, 도로·철도·하천교통의 요지로서 농산물과 일용잡화의

  집산이 활발하다. 군사상 ·교육상으로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중심을 이루며, 시내와 근교에는 무굴 제국시대 최고 전성기의 건축·미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도 붉은색 사암으로 성벽을 쌓은 광대한 아그라성과 이슬람건축의 대표작인 타지마할이 널리 알려졌다.


- 아그라성(Agra Fort)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타지마할 북서쪽 자무나 강변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성채로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

  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그라성 테라스에서는 강 건너편으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성은 밖에서 보면 천상 견고하고 딱딱한 요새다.

  성을 빙둘러 해자가 있고 높이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성벽 안에 감춰진 내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의 테라스와 분수대는 자무나(Jamuna) 강

  건너편의 타지마할이 그렇듯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타지마할의 북서쪽 자무나 강변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후대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었다.

  특히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보였던 샤 자한(Shah Jahan) 시대에 궁성으로 개조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고,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가 외부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

  내부의 자한기르(Jahangir)궁전은 악바르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것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었으며,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일품이다. 한편 흰 대리석으로 지은 카스(Khas) 궁전은 단아한 느낌을 준다.

  샤 자한 황제가 만든 디완이암(Diwan-i-Am)과 디완이카스(Diwani Khas)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디완이암은 1628년에 건설한 강연장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디완이카스는 귀빈들을 맞는 왕의 접견실로 1637년에 건설되었으며, 자한기르 왕이 만든 검은색 왕좌가 놓여 있다.

  무삼만 버즈-서글픈 유폐의 성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는 8각형의 커다란 탑으로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테라스에 서면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애도하며 만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샤 자한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그라 성 안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샤 자한이 만든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다.

  대리석으로 만든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불리는데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외에도 궁녀들을 위한 사원인 나기나

  모스지드(Nagina Masjid), 황제의 개인 예배실로 규모가 작은 미나 모스지드(Mina Masjid) 등이 있다.


-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인도 무굴제국의 악바르 왕이 세운 도시로 10년 동안 수도였다. 자마 마스지드 사원을 비롯하여 각종 건물이 남아있으며,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1569~1574년 무굴제국악바르왕이 세운 도시로, 10년 동안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 있으며, 아그라시(市) 서쪽에 있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승리의 도시'라는 뜻이다.

  인도 최대 규모의 무슬람 사원인 자마 마스지드 등의 사원을 비롯하여 궁전·학교·목욕탕·마굿간·연못 등이 있다.

  건물 대부분은 사암으로 이루어졌으며, 각종 조각으로 기둥·벽·천장 등을 장식하였다.


- 타지마할(Taj Mahal)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