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5박6일(4일차-황거, 아사쿠사, 동조궁, 주젠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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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본

일본여행 5박6일(4일차-황거, 아사쿠사, 동조궁, 주젠지호)

by 정산 돌구름 2010. 11. 4.
일본여행 5박6일(4일차-황거, 아사쿠사, 동조궁, 주젠지호)..

 

  정 : 2007.6.4(월) ~ 6.9(토) - 5박6일

○ 여행지 : 오오사카(大阪) ~ 나라(奈良) ~ 교토(京都) ~ 도요하시(豊橋) ~ 하코네(箱根) ~ 후지산(富士山)

            ~ 도쿄(東京) ~ 닛코(日光) ~ 나리타(成田)

○ 4일차(6.7, 목)

  07:00 아침 호텔식 ~ 08:00 Check-out

  08:35 황거(皇居) ~ 출발 09:00

  09:25 관음사(아사쿠사,金龍山 淺草寺) - 출발 10:30

  12:40 닛코(日光) ~ 점심(일본식 도시락)

  13:15 이황산신사(二荒山神社)

  13:30 동조궁(東照宮) - 출발 14:30

  15:05 쥬젠지호(中禪寺湖) - 출발 15:30

 

 

여행개요

일본에서의 4일차는 어제 도교의 오다이바 야경을 감상하고 어반호텔에서 머무르고 08:00분 check-out 후 황거 관광으로 시작..

 

 

 

 

 

1) 황거(皇居,こうきょ)

일본 천황의 평소 주거지로서 현재는 천황 주거인 고쇼(御所), 교지(御璽)나 정무의 장소인 궁전, 궁내청 청사등이 있는 에도성(江戸城)

터 일대를 가리켜 황거라고 부른다. 이전에는 황성(皇城), 궁성(宮城)이라고도 불렸다.

황거정원의 일부인 히가시교엔(東御苑)과 고쿄마에히로(東御苑前廣場), 니주바시(二重橋) 등의 외곽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황거는 천황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천왕 생일인 12월 26일과 같은 특정한 날에만 관람이 허용된다.

천황가(家)의 유래는 나라(奈良)시대(710년~794년)에 편찬된 <고지키>,<니혼쇼키>등의 역사서에 따르면 초대 진무천황이 기원전

660년에 즉위했다고 추정되나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주로 중국이나 한반도의 왕조와 비교하여 천황의 역사를 정당화시키고자 후대에 연대를 거슬러 올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에는 오오키미(大王)라 불렸으며, 천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덴무천황(제40대) 무렵부터다.

당 고종이 이미 천황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으며, 일본의 천황 역시 중국의 황제와 대등하다는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이다.

확실한 것은 게이타이 천황(제26대)부터 현재의 아키히토(제125대)까지는 천황가의 혈통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1192년 이후는 무사에 정치적 실권을 빼앗겼지만, 정이대장군직이나 부시의 관위도 형식상으로 천황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연호(年號)는 국가적인 경조사 또는 재해에 의한 피해가 있을 때마다 바뀌어, 현재의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시대부터 1945년까지 대일본제국 헌법에는“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고 규정되었다가,

1945년에 제정된 일본국 헌법부터는“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 고 규정되었다..

 

 

 

 

 

 

 

2) 이중교(二重僑)

일본 최초의 서양식 다리인 황거 정문의 돌다리로 이중의 아치형태가 안경처럼 보인다고 해서 메가네바시(眼鏡橋)라고도 한다.

1924년1월5일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김지섭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관광은 여기까지 밖에 되지 않는다..

 

 

 

 

 

3) 아사쿠사 센소지(淺草寺) 

우에노(上野) 동쪽에 위치한 아사쿠사(淺草)는 에도시대(1603~1867)의 전통과 현재 일반 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지역이다.

도쿄의 어느 다른 지역보다도 일본적 색채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지역이다.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아사쿠사 센소지(淺草寺) 및 가미나리몬(雷門)이 있는 아사쿠사는 100여개의 전통적인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나카미세 거리를 지나면 나온다.

천초사는 도쿄도 내 가장 오래된 사찰의 이름으로 산호(山号 = 절에 붙이는 이름)는 금룡산(金龍山)이다. 본존은 성관음.

본래 천태종에 속하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여, 성관음종의 총본산이 되었다.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하기에「浅草観音, 아사쿠사관음」혹은「浅草の観音様, 아사쿠사 관음님」이라고 통칭되며 널리 친숙해져 있다.

도쿄도 내에서는, 유일한 坂東三十三箇所観音霊場 (반도우33 관음 영지)의 찰소(13번)이다.

스이코천황(推古天皇) 36년(628년) 지금의 사찰앞에 흐르는 미야토강(宮戸川, 스미다강)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던 檜前浜成・

竹成 ひのくまのはまなり・たけなり)라는 형제가 그물에 걸린 불상이 있었다. 이것이 센소지 본존의 성관음(聖観音)상이다.

- 카미나리몬(雷門)

 센소지 참배길 입구의 문으로. 절처조(切妻造)의 8각문으로,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 쪽에 바람신(풍신)상, 왼쪽에 뇌신상을 안치하여

 정식 명칭은 「風雷神門」이라고 하지만 통칭 「카미나리몬」이라고 부른다. 문내에는 마츠시타(松下幸之助) 전공이 기증한 대제등이

 걸려 있다. 한 해에 한 번 삼사제(三社祭)와 태풍이 올 때만 제등이 거두어진다.

- 옥장문(宝蔵門, 보물창고문)

 카미나리몬을 빠져 나가, 나카미세 상점가를 통과하면 센소지 본당 이전에 먼저 위치해 있다.

 현재 문은 1964년(昭和 39년) 재건된 철근콘크리트조로, 실업가 大谷米太郎(오오타니 요네타로) 부부의 기부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 본당(本堂)

 본존의 관음상을 모시기 때문에 관음당(観音堂)이라고도 불린다.

 1945년(쇼와 20년)의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당은 1958년(쇼와 33년)에 재건된 것으로 철근 콘크리트조이다.

- 오층탑(五重塔)

 재건 전의 탑은 1648년 건립으로, 본당과 같이 관동대지진에서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1945년의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했다.

 현재 탑은 1973년에 재건된 것으로, 철근콘크리트조, 알루미늄합금 기와로 이은 지붕, 기단의 높이 약 5m, 탑 자체의 높이는 약 48m.

 기단 내부에는 공양을 위한 위패를 납입한 위패전 등이 있고, 최상층에는 스리랑카로부터 온 부처 사리를 안치하고 있다.

- 이천문(二天門,중요문화재)

 본당의 동쪽에 동향으로 세워진 切妻造(뱃집지붕조)의 8각문이다.

 1618년의 건축으로, 제2차세계대전에도 화재를 면한 귀중한 건축물이다.

 이 문은, 본래는 센소지 경내에 있던 東照宮(토쇼우궁,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는 신사)의 문으로서 지어진 것이다.

-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

 본당의 동쪽에 있고 센소지의 초창에 관련된 세명을 제신으로서 모시는 신사이다.

 메이지의 신불분리(神仏分離)이후 센소지와는 별개 법인으로 되어있다.

- 전법원(伝法院)

 보장문의 바로 앞 서쪽에 있어, 센소지의 본방(本坊)이다.

 소굴원주(小堀遠州,고보리 엔슈)의 작이라고 전해지는 회유식 정원이 있다. 일반에게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 센소지 연중 행사

 침공양(針供養) 2월 8일

 김류의 무용(金龍の舞) 3월18일 관음시현회와 10월18일 국화 공양 때

 삼사제(三社祭) 5월17·18일경, 아사쿠사신사의 제례로 에도3대 축제의 하나

 사만륙천일(四万六千日,7월9일-10일) 이날 참배하면 4만6일 동안 이익이 있다

 만령등롱공양회(万霊燈籠供養会, 8월 15일)  백중 맞이의 선조 공양..

 

 

 

 

 

 

 

 

 

 

 

 

 

 

 

 

 

 

 

 

 

 

 

 

 

 

 

 

 

 

4) 동조궁(東照宮)

동조궁은 1617년에 창건되어 1636년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경내의 건축물은 무려 55동에 이르는데 대부분 일본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조각품, 예술품이 즐비해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기도 하다.

동조궁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궁(宮)이 아니다. 모모야마 건축양식 중의 하나로서 이 양식의 특징은 건축물을 화려, 현란하게 치장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양명문(陽明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동조궁은 그 중 영묘(靈廟)건축에 해당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바쳐진 건축 양식인 것이다.

동조궁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에도(江戶) 즉 오늘의 도쿄(東京)에서 니코(日光)까지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간 것이다.

지금도 승용차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므로 조선통신사 일행이 니코까지 간다는 것은 대단한 큰 행사였다.

1655년에 들른 조선통신사 일행은 무려 300여명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인조는 니코의 동조궁이란 것이 1640년 준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643년 7월 우리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는 길에 친필 글씨와

종을 선물로 보내 주었다. 그 외에도 불기(佛器)도 보내준 것을 기록하고 있다.

동조궁 제일 높은 곳 그리고 제일 뒤편에 오쿠샤(奧社)가 있다. 그 안에 오쿠샤호도(奧社寶塔)란 것이 있다.

보탑은 어보탑(御寶塔)이라 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을 묻어 둔 곳에 탑을 세워 그를 존칭해서 붙인 말이다.

그 묘 앞에 조선국에서 하사한 삼구족(三具足)이 있다.

삼구족이란 불(佛)에 공양(供養)하는 공양구(供養具)로 일본에서는 주로 사묘(寺廟)나 가묘(家廟)에 두었다.

삼구족은 향로(香爐), 촛대(촉대, 燭臺), 화병(花甁)을 한 세트로 하는 것인데 이것들은 고려시대의 동제품들이었다.

이것이 지금 그의 무덤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는 니코의 동조궁은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니코의 종합적인 관광정책에 힘입어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되어 있다..

 

 

 

 

 

 

 

 

 

 

 

 

 

 

 

 

 

 

 

 

 

 

 

 

 

 

 

 

 

 

 

 

 

5) 주젠지호(中禪寺湖)

닛코 국립공원(日光國立公園) 안에 있는 호수로 사치노우미(幸の海)라고도 한다.

해발 1,237m의 휴양지로 많은 신사(神社)를 비롯하여 요트 놀이, 송어낚시, 스키 등으로 유명하다.

북쪽에는 높이 2,484m의 화산인 난타이 산(男體山)이 솟아 있으며, 이보다 낮은 산들이 둘레 23㎞의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서쪽과 북서쪽에서 작은 강들이 흘러 들어온다.

이 호수는 동쪽 끝에 용암이 둑처럼 쌓이면서 형성된 깊이 170m의 구조적 저지대 위에 들어서 있다.

강물이 흘러나가는 유일한 배수로인 다이야 강(大谷川)은 호수 동쪽에서 발원하여 높이 96m의 게곤노타키(華嚴瀧)로 떨어진다..

 

 

 

 

 

 

 

5) 게곤폭포(華嚴ノ瀧)

닛코 시(日光市) 중부에 있는 폭포로 닛코에 있는 폭포 중 가장 크며 닛코 국립공원의 대표적 명승지이다.

주젠지 호[中禪寺湖]에서 흘러나오는 오지리 강(大尻川)이 난타이 산(男體山)에서 분출한 용암에 걸려 생긴 것으로 높이 96m,

폭은 윗부분이 약 10m이다. 

(本)폭포 외에 여러 작은 폭포가 있으며 주젠지호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폭포 중간쯤에 있는 집괴암 밑에서 솟아나와 발처럼 떨어진다.

물의 양은 6~9월 무렵에 가장 많으며 겨울에는 커다란 고드름이 크게 드리워져 장관을 이룬다.

용소는 거의 원형으로 깊이가 약 5m이며 뒤쪽으로 길이 30m 정도의 동굴이 있다.

폭포 아래는 다이야 강(大谷川)이 흐른다. 관폭대(觀瀑台)까지 엘리베이터로 내려갈 수 있다.

이 폭포는 일본 젊은이들이 자주 자살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