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5박6일(1일차-오사카성, 도돈보리, 신사이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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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본

일본여행 5박6일(1일차-오사카성, 도돈보리, 신사이바시)

by 정산 돌구름 2010. 10. 27.
일본여행 5박6일(1일차-오사카성, 도돈보리, 신사이바시)..

 

 

○ 일  정 : 2007.6.4(월) ~ 6.9(토) - 5박6일

○ 여행지 : 오오사카(大阪)~나라(奈良)~교토(京都)~도요하시(豊橋)~하코네(箱根)~후지산(富士山)~도쿄(東京)

                ~닛코(日光)~나리타(成田)

○ 1일차(6.4, 월)

   04:00 문예회관후문 

   07:00 김해국제공항

   09:30 아시아나항공

   10:50 오사카 간사이공항

   11:50 오사카 JUSCO 뷔페식

   13:50 오사카성(15:30 출발)

   15:50 오사카 방재센타(16:50 출발)

   17:05 도돈보리(道頓堀) ~ 신사이바시(心齊橋) 저녁-회전초밥(Ryugu-tei) - 18:50

   19:00 오사카 ANA호텔 숙박

○ 여행개요

  1) 광주문화예술회관 출발

    새벽 4시.... 우리 연수자 일행이 집결하기로 한 광주문화예술회관 후문에는 적막이 감돌고 12명의 소방가족이 버스를 타고 드디어

    해외문화체험길에 올랐다. 이어 순천소방서 앞에서 9명이 탑승하여 21명이 김해공항을 향하였다.

 

  2) 김해공항

    김해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07:10분이었다.

    아직 가이드가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면서 공통으로 사용할 경비를 거출하고 공항에서 환전을 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07:30분에 가이드가 도착하고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출국 수속을 하였다.

    09:00분 오사카행 아시아나항공에 탑승하여 09:30분 이륙, 1시간20분이 소요되어 10:50분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였다.

 

 

 

 

 

 

 

 

☞ 오사카 간사이공항(關西空港)

바다 한 가운데 인간의 무한한 도전으로 이뤄낸 인공섬의 최대 공항으로써 동북아권의 국제승객을 한국에 뺏기지 않으려고

세웠다고 한다. 일본이 21세기를 대비해 세계로 가는 새 관문으로 조성한 최첨단 공항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은 일본 최초

24시간 운영체계를 갖추고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거점공항을 지향한다.

일본은 도쿄 나리다공항을 제1허브공항으로 하고 오사카 간사이공항, 나고야의 주부공항을 제2 허브공항으로 하는 

'1강 2중'의 시스템으로 세계와 소통한다.

간사이공항은 1962년부터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후 장소와 시공방법을 놓고 20여년간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1983년 오사카만 남동부 센슈 앞바다 한 가운데를 메워 약 5㎞지점에 511㏊ 인공의 공항을 조성키로 하고 86년부터 8년간

공사에 돌입해 매립에 들어간 토사만 1억8천톤이다.

하지만 사업비 1조5천억엔에 1조엔의 부채를 안고 있어 공항 이용료와 부대시설 이용료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이 공항은 도로, 철도, 선박 등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해 승객들의 접근을 편리하게 했다.

또 각종 시설을 여객청사 중앙으로 집중해 입국심사에 불편을 전혀 못 느끼게 했다.

간사이공항의 또 하나의 자랑은 24시간 운영. 바다 한가운데 조성으로 이∙착륙의 소음공해를 없애 지역주민과의 마찰이 없고,

외국에서 들어온 승객들이 국내선을 갈아탈 때 엘리베이터만으로 이동, 환승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점이다.

인공섬으로 2층짜리 연륙교, 아래로 전철 철도 2회선, 위에는 고속도로로 오사카 시내에서 30분이내 진입할 수 있으며,

선박도 이용할 수 있다..

 

 

 

 

오사카성(大阪城)

일본은 한국만큼이나 성이 많은 나라이다. 일본의 성은 이름이 붙은 고유명사로는 한자를 소리로 읽어 '오사카조'(大阪城),

'나고야조'(名古屋城) 식으로 부르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성을 가리킬 때는 고유어인 '시로'(城)로 부른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 히메지(姬路)성은 물론이고 다른 크고 작은 성들이 하나같이 그지역 관광명소가 돼 있다.

박물관이나 역사 자료관을 겸하고 있는 성들이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 영주의 유품이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웅장했던 영화를

이야기해 준다.

도쿄(東京)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오늘날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한결같이 '조카마치'(城下町), 즉 성하촌(城下村)에서 발달해

왔으며,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성은 좁은 뜻으로는 건물만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중앙 및 부속건물, 이를 둘러싼

성곽, 주변의 방어시설 등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성이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규모였던가는 현재 황궁으로 쓰이는 에도(江戶)성의 흔적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중심 건물인 '혼마루'(本丸)와 부속 건물, 정원 등을 높은 성벽과 해자가 둘러싸고 그 둘레를 다시 성벽과 해자로 보호하고 있다.

바깥쪽의 해자를 '소토보리'(外堀), 안쪽의 해자를 '우치보리'(內堀)라고 하는데 에도(江戶)성의 소토보리는 현재의 간다(神田)와 긴자

(銀座)를 잇는 지역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성곽과 해자 등으로 둘러싸인 구조를 지닌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병사한 후 1600년 세키가하라(關ガ原) 싸움에서 승리해 천하의 패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614년에야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賴)가 장악한 오사카성 공략에 나섰고 20만의 대군을

동원하고도 6개월만에야 겨우 함락시켰다. 오사카성의 함락은 휴전을 틈타 소토보리와 우치보리를 메우는 술책을 통해서야 가능하였고,

지금도 '소토보리, 우치보리가 다 메워졌다'는 말은 모든 사전준비가 끝났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고 한다.

최초의 일본의 성들이 처음부터 이런 복잡한 모습으로 세워진 것은 아니었고 7세기 중반 백제기술자의 건축지도로 시작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규슈에서 야마토지방에 이르는 곳곳에 세워진 성은 대부분이 오늘날처럼 평지에

세워진 '히라지로'(平城)가 아니라 '야마지로'(山城)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산성은 외적으로부터의 방어가 유일한 목적일 뿐 히라지로처럼 영지의 관리를 동시에 염두에 두지는 않았던 점을 주목할 수 있다.

그러다가 영주의 거처로서 즉, 지역통치의 중심기관, 방어시설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성은 무사들의 패권싸움이 치열했던 전국시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천하통일을 다짐하며 '비와코'(琵琶湖) 옆에 세운 '안도조'(安土城)가 대표적이다.

방어와 통치를 동시에 고려해 교통 요지의 얕은 언덕위에 자리를 잡는 한편 호수를 끼어 수상 교통의 이점을 살렸다.

이후 오사카성이나 나고야성, 에도성 등이 모두 강이나 운하를 끼었고 혼마루에 높게는 50m가 넘는 높이의 '덴슈카쿠'(天守閣)를 설치

했던 것도 모두 안도성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평지라는 방어상의 약점은 거대한 화강암을 이용한 성벽과 해자로 보완되었다.

오사카는 일본 문화의 여명기인 아스카시대(飛鳥時代 : 6세기 말∼7세기 중엽)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중심도시로서 오늘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1583년 히데요시가 일본 통치의 거점으로 오사카성을 구축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오사카는 도쿠카와 막부(德川幕府)의 물자 교역지이자 상업도시로 발전해 왔다.

오사카성은 규모로만 보면 일본 제일이다. 히데요시는 자기 권력의 절대성을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 3년이라는 세월동안 10만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이 성을 건설하였다.

축성 당시 규모는 현재의 5배정도로 추정된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통일하고 명나라 정벌을 꿈꾸던 히데요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듯 모든 것은 변화하였다.

1537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1598년 조선전쟁의 혼란 속에서 병사한 히데요시는

죽기 직전에 일점혈육인 5살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秀賴)의 후계자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호랑이 같은 영주들의 충성서약까지 받아내는

나약한 부정(父情)을 보이기도 하였다.

비록 히데요리는 히데요시의 친아들이 애첩 요도기미(淀君)가 그녀의 정부와 사통해 낳은 자식이라는 설이 있으나 본처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한 히데요시는 이 늦동이 외아들을 끔직히 사랑했다.

그러나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히데요리도 히데요시 사후 17년이 지난 1615년, 도쿠카와 이에야스에 의해 생모인 요도기미와 함께

할복하게 됨으로서, 도요토미 일족은 멸문의 화를 당하게 되었다.

오사카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확장되었다.

지금 남은 성곽과 망루 등은 모두 도쿠가와 가문이 재건한 것이며, 1931년 오사카 시민들이 콘크리트로 다시 복원했다.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은 땅속에 묻혀있다.

오사카성은 1583년에 3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완성시켰는데, 1615년에 불 탄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재건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성역은 당시의 혼마루(本丸)와 니노마루(二の丸)이고, 덴슈카쿠(天守閣)는 1931년 철근콘크리트로 재건,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린 정문입구의 오테몬(大手門), 다몬야구라, 엔쇼이시구라 등은 일본의 중요문화재이다.

석으로 축성된 오사카조 축대의 제일 큰 초석은 표면면적이 무려 다다미 36장의 넓이이다.

한편, 성내에는 시립박물관(현재는 철거예정임)이 있으며, 덴슈카쿠 서쪽의 니시노마루 정원(西の丸庭園)은 시민의 휴식처이다.

 

 

 

 

 

 

 

 

 

 

☞ 오사카 지진방재센터

일본은 고베대지진 이후에 방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각 기관,단체,시민을 대상으로 방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각지역

방재학습센터를 설립하였고, 이론과 실제를 몸으로 직접 시험하고 습득하는 과학적인 학습센터를 운영중인 방재센타를 볼 수 있다.

지진방재센터는 각 지역마다 설치되어 지진체험과 지진이 발생 했을때 가정이나 일상주변에서 해야 할 일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교육장에 도착하면 교육안내와 개인별 체험을 기록하는 바코드형태의 표시줄을 손목에 차고 교육을 시킨다.

교육 후 개인별로 자기가 체험한 것을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도록...

물소화기를 이용한 화재진압 체험교육은 첨단시설을 이용하여 영상모니터에 화재가 발생하면 물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해야 된다.

물소화기 이용방법이 틀리면 화면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진 체험장은 일본에서 발생했던 지진 강도를 그대로 체험장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진발생시 2차 피해방지를 위해 가정에서

해야 할 것들은 가정 모형을 통해 실제로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전열기구 스위치 차단, 가스렌지 스위치 차단 등이다.

연기 체험장은 실제통로에 연기가 있어 낮은 자세로 통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모니터를 통해 자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지진에 의해 파괴된 시가지를 그대로 만들어 실제로 지진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을 발급해 체험학습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었다.

 

 

 

 

 

☞ 신사이바시(心齋橋)

오사카(大阪) 중심가인 마도스지 동쪽에 남북으로 나란히 나있는 길이 있다.

도쿄의 긴자에 비유될 만큼 밤낮없이 소핑객이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도 현재는 난바 시티나 니지노마치(虹のまち)와 같은 지하상가에 손님을 많이 빼앗겼지만 아직도 전통이 있는 상점들이 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르코나 소니타워 빌딩 같은 젊은이 취향의 빌딩이 완성되면서 젊은이의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 도톤보리(道頓堀)

미나미(南)의 번화가를 둘로 나누는 것이 도톤보리천이다. 인공의 수로로 1612년 야스이도(安井道頓)이 공사를 착공해서,

그의 사후(死後) 동생인 도보구에게 인계하여 완성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톤보리는 개천의 남쪽 끝으로 원래는 나이와 극장, 나카 극장, 다사히 극장, 벤텐 극장, 가도 극장 등 5개의 연극 소극장이

나란히 있어서 오사카의 번화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비해서 도톤보리의 북쪽은 소에몬마치(宗右衛門町)이다. 환락가로 고급 요정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이미 옛 자취는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남쪽끝의 도톤보리와 비교하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요정이나 카바레들이 많다.

그날의 기분에 맞춰 이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오사카다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도시이다.

 

☞ 도톤보리로(道頓堀路)

오사카의 대표적인 먹자거리이다.

도톤보리 강에는 대형 네온사인과 분수가 밤에는 극치를 이루고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도톤보리 5극장에서 지금도 만담이나 연극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희극의 원류인 나카극장이 인기가 높아서 공연중에는 유난히 번잡한

입구가 꽃다발로 장식된다. 가도극장에서는 TV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등장하여 열연하므로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것과는

한층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최근에 젊은이에게 새롭게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 분라꾸(文樂)인데, 아사히극장에서 주로 하고있다.

인형을 사용하는 극이다.

 

쓰루하시(鶴橋)

일본 최대의 한인촌이 있는 곳이다. 나니와(難波)에서 지하철 센니치마에센(千日前線)을 타고 쓰루하시에서 내리면 된다.

역 주변에는 오사카에서도 값싼 술집들이 늘어서 있어 저녁이 되면 귀가길의 회사원들로 활기를 찾는다.

일본 최대의 노동 인력시장이 서기도 한다..

 

 

 

 

 

 

 

 

 

 

 

 

 

 

 

 

 

 

 

오사카 최고급 ANA호텔에서 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