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의 전설, 연꽃 가득한 부여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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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의 전설, 연꽃 가득한 부여 궁남지..

by 정산 돌구름 2023. 7. 11.

서동요의 전설, 연꽃 가득한 부여 궁남지..


2023년 7월 10일, 서동요의 전설이 깃든 연꽃 가득한 부여 궁남지..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백제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사적 제135호 궁남지는 무왕 때 궁궐 남쪽에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다.
백련과 홍련이 가득한 이곳 궁남지는 천만송이 연꽃을 배경으로 오는 13일부터 2023년 제21회 서동연꽃축제는 ‘연꽃화원에 피어난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다.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 한방울 없는 무더운 날씨에 연꽃 가득한 궁남지를 둘러보고 떠난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궁원지(宮苑池)인 사적 제135호 부여 궁남지(宮南池)는 백제 무왕 때에 궁궐의 남쪽에 만든 큰 연못으로 『삼국사기』에 의해서 궁남지라고 부른다.

다만 연못이 어떤 모습으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 개의 주춧돌이 남아있고, 동쪽에서는 주춧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는 건물터가 확인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634년)조에는 “3월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 리나 끌어들였다. 네 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고 하였다. 

무왕 39년조에는 “봄 3월에 왕과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고 하였다.

한편 『삼국유사』 기이제2무왕조에는 “무왕의 이름은 장(璋)으로 그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南池) 주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고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라고 하였다.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한 서동(薯童)이다.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고 전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으며, 현재 연못 규모는 1만평도 채 안 되는 형편이다.

연못은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못 가운데와 물가에는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 있고, 연못 주변에서는 토기와 기와 등 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므로 연못 속의 섬이 바로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는 섬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궁남지는 1965년∼1967년에 연못 바닥을 준설하고, 가장자리의 언덕에 흙을 쌓고서, 수양버들을 심어 조성하였다.

전체 면적은 13,000평 정도이지만 발굴조사 결과 원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로에서는 “서부후항사달사사정의활□□□정귀인중구사하구이매라성법리원수전오형(西部後巷巳達巳斯丁依活□□□丁歸人中口四下口二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 “서부중부이(西部中部夷)”로 판독되는 백제 목간 1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은 길이 35㎝로 소나무로 제작되었는데 백제시대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확인되는 영조척(營造尺)이 35.05㎝인 것과 부합하여 백제 도량형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목간에 ‘서부후항(西部後巷)’과 ‘중구(中口)’, ‘하구(下口)’ 등의 행정구역명이 기록되어 있어 문헌에서만 확인되었던

‘후항’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5부와 5항을 두었다는 백제 행정체제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 외에도 수로 안에서는 여러 점의 나무 삽과 가래, 베틀의 구성품인 목제 비경이, 부들로 제작된 짚신, 사람의 족적(足跡) 등 당시 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출토되었다.

궁남지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궁원지(宮苑池)로 조성 기록이 명확히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조경기술과 도교문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궁남지의 조경기술은『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확인되듯이 일본에 알려져 일본 원지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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