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함양 남덕유산 영각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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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함양 남덕유산 영각사를 찾아서..

by 정산 돌구름 2023. 5. 3.

천년고찰, 함양 남덕유산 영각사를 찾아서..


2023년 5월 2일, 천년고찰, 함양 남덕유산 영각사를 찾아서..

남덕유산 자락에 자리한 영각사(靈覺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헌강왕 2년(876년)에 심광(深光)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창건 뒤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심광대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선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인 무염(無染)의 제자로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는 ‘心光(심광)’이라고 되어 있다.

영조 46년(1770년) 상언(尙彦)이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하였다.
상언이 이 절의 승려들에게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는데 얼마 뒤에 큰 홍수가 나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강용월(姜龍月)에 의하여 곧바로 중창하였고, 한때 많은 불제자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었다.

영각사는 19개 동의 건물과 비로암(毘盧庵), 봉황대(鳳凰臺) 등 13개의 소속 암자가 있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6.25전쟁 때 산신각과 구광루만 남기고 다시 소실되었으며, 법당 내에 보존되어 오던 화엄경판까지 소실되었다.

그 뒤 1959년에 국고보조를 얻어 해운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화엄전(華嚴殿)과 극락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 석등 부재와 부도 6기가 전한다.

부도는 모두 석종형으로 절 입구에 있는 해운(海雲)과 용월의 부도 2기만 주인을 확인할 수 있다.

영각사 구광루는 곳간채 임에도 2층 누각으로 건물의 짜임은 매우 튼실하게 되어 있으나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축수법에서는 특이성은 없다.

다만, 사찰 문화재 중 곳간채로서 2층 누각으로 건립된 예가 없어 그 희소성이 있다.

건립당시 1층과 2층 곳간으로 구성되었으나 6.25전쟁 이후 영각사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고 사전 또한 매각되어 사세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곳간으로 쓰임이 없어져 1층은 온돌방과 2층은 강당으로 변경되어 사용되고 있다.

근래에 보수하면서 전통형식에 걸맞지 않게 중국식 목재창호를 달아 그 격을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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