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서산 상왕산 문수사(文殊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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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서산 상왕산 문수사(文殊寺)..

by 정산 돌구름 2023. 4. 24.

천년고찰 서산 상왕산 문수사(文殊寺)..


2023년 4월 24일, 천년고찰 서산 상왕산 문수사(文殊寺)..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인 문수사(文殊寺)는 누가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고 가람의 배치나 전하는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도둑들이 극락보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을 불태웠다는 말이 전할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중종 25년(1530년)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이 보이지만 1619년(광해군 11년) 한여현의 『호산록』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530년부터 1619년 사이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 산신각을 세우고 산신각 앞 낡은 요사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심검당, 수도당, 춘정고 등이 있다.

극락보전은 고려 말에 지어져 임진왜란 이후 중창된 것으로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극락보전은 조각수법이 수려하고 웅장할 뿐 아니라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주불인 여래상을 비롯, 아미타불·미륵불·나한상·보살상과 각종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할 때 금동아미타불상의 복장에서 발원문과 단수의(短袖衣), 쌀, 보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발원문에 따르면 이 극락보전은 고려 충목왕 2년(1346년)에 조성되어 임진왜란 때 중건되었다.

3백여 명의 발원자 이름이 적혀 있어 주목된다.

함께 들어 있던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과 『의천속장경간기(義天續藏經刊記)』 등은 국문학사와 인쇄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은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금동여래좌상은 1993년 도난당하고 그 복장유물만 현재 전한다.

후령통과 복장물 등 고려불상 복장이 학술적으로 조사된 최초의 예이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금동삼세불좌상과 관세음보살상, 16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나한상 사이에 보살상 4구가 있다.

금동여래좌상은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1974년9월1일)로 지정되었다가 1993년 7월 24일 도난당하였다.

현재는 새로 조성된 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원 불상의 소재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불화로는 고종 29년(1892년) 금호(錦湖)가 그린 삼세후불탱화, 1919년 몽화(夢華)가 그린 현왕탱화, 1998년 제작된 지장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영조 50년(1774년)에 제작된 지왕시왕도는 현재 수덕사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극락보전에는 1892년에 제작된 현판과 1912년 쓰여진 〈문수사불량계기〉가 걸려 있다.

문수사 삼층석탑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모두 갖춘 114㎝ 높이의 탑이다.

탑 하단부는 매몰되어 잘 알 수 없으나, 방형의 지대석 위에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을 올려놓았다.

중대석 이외의 탑재가 멸실되어 확실한 기단을 살필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상대 갑석으로 보아 2층 기단임을 추정할 수 있다.

상대 갑석은 한 변이 93㎝인 비교적 넓은 판석으로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높이 38㎝로 우주(隅柱)[건물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는 확인되지 않으며, 상대·하대 갑석과 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 갑석의 상면에는 초층 옥신(屋身)을 받치기 위한 1단의 옥신굄이 조출(雕出)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이 모두 별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초층 옥신이 2·3층의 옥신에 비해 풍화의 정도가 심하고, 특히 양 우주가 마멸되어 거의 확인할 수 없는 점, 초층의 옥개석 층급 받침이 4단이고 그 외 2·3층의 옥개석 층급 받침이 3단이라는 불일치성 등으로 보아 이 탑이 상층과 하층의 조성 시기가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3층의 옥개석 정상부에는 높이 20㎝ 정도의 보주를 올려놓았는데 옥개석과 상륜부의 보주의 크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부위에 따라 조성 시기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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