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동산 무암사(霧巖寺)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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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동산 무암사(霧巖寺)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by 정산 돌구름 2023. 4. 18.

제천 동산 무암사(霧巖寺)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2023년 4월 18일, 제천 동산 산행길에 찾은 무암사..

충북 제천시 금성면 금수산 자락 동산에 있는 무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조선 초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지붕 위의 망와(望瓦)를 통하여 1740년(영조 16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의 서남쪽 1㎞ 지점에는 늙은 중을 뜻하는 노장암(老丈巖)이 있는데 풍수설에 따르면 절 입구에 중모양의 바위가 있으면 그 절의 사맥(寺脈)이 끊기지 않을 뿐 아니라 식량이 넉넉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바위는 안개가 끼었을 때만 나타났다고 하여 이 절 이름을 바위와 안개에 관련시켜 무암사라 하였다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칠성각·산신각·요사채·객실·수호실 등이 있다.

극락보전에는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목조연화대 위에 봉안되어 있다.

2002년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40년 극락보전을 중수할 때에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전체 높이는 85㎝이며 복장은 유실되었다.

극락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최근에 극락보전을 새로 중수하고 단장하면서 목불에 개금을 하였다.

현재 2층의 닫집 아래 좌우에 최근에 조성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아미타여래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뒤편에는 목조에 금박을 입힌 극락회상목각탱이 장엄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비교적 규모가 큰 목불로 통나무로 조각되었고,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형태이다.

머리가 큰 편이고 머리와 육계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은 흙으로 만들어 붙였으며, 이마 위와 정수리에 계주 장식이 붙어 있다.

얼굴은 턱이 넓어서 넓적한 인상이나 눈썹과 코를 연결하여 높게 세우고 눈은 옆으로 길게 표현되었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상호는 원만한 네모난 형태이고 양미간에는 수정으로 조성한 백호(白毫)가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위엄이 있고 불격이 느껴지는 원만상이다.

상체는 길쭉하고 다리의 폭이 넓지 않으며, 평면적인 양감이 느껴진다.

팔은 상체와 붙어있고 어깨는 움츠리고 있어 경직되어 있지만, 어깨와 무릎 부분에는 환미감(丸美感)이 드러난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놓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았으며, 두 손 모두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이러한 손모양은 아미타구품인 중에서 하품중생인으로, 조선시대 아미타불상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약지 부분이 검지 부분과 같이 구부리고 있는데 이 점은 조선 후기적인 특징이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불의는 양쪽 어깨를 가리는 이중착의식 통견형식으로 오른쪽 어깨를 반원형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이 가사이며, 그 아래의 안쪽 옷이 대의이다.

가슴 아래 중앙에 보이는 옷은 승각기로 직선적인 띠를 두르고 있어 윗단이 주름져 있지만 띠매듭은 없다.

대좌는 조선시대에 유행한, 측면의 모를 죽인 3단의 팔각대좌로, 최근에 다시 색을 입혔다.

중대석에는 안상이 있고, 내부에는 학, 꿩 등의 새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불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불상을 직접 받치는 연화좌가 없다.

이밖에도 극락전에는 1930년에 금어(金魚)인 삼천(三千)이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神衆幀畫)가 있다.

문화재로는 부도(浮屠) 12기, 불기류(佛器類), 촉대와 위패 등이 있다.

4기의 부도 중 수월당(水月堂) 부도는 1959년에 발견된 조선시대의 것이다.

특히 우부도(牛浮屠)는 이 절의 창건 당시 재목과 기와 등을 운반하였던 소가 죽은 뒤 화장하였더니 오색 영롱한 사리가 나와서 조성하였다는 190㎝의 사리탑으로 그 주변을 소부도골이라 부른다.

절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100년 이상 된 유기제품이며, 촉대와 위패는 정교한 솜씨로 조각하여 만든 특색 있는 유품이다.

사찰의 유물들로 보아 상당한 역사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나 사적기가 없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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