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적상산 안국사(安國寺)와 적상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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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 안국사(安國寺)와 적상산사고..

by 정산 돌구름 2022. 10. 18.

무주 적상산 안국사(安國寺)와 적상산사고..


2022년 10월 18일, 무주 적상산 산행에서 만난 안국사(安國寺)와 적상산사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 월인이 세웠다고 하나 조선 태조 때 자초가 적산산성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년) 증축하고 이듬해 사고를 두어 사각과 선원각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덕웅을 승장으로 하여 승병 92명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1864년(고종 1년)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0년에 사고의 책을 규장각으로 옮기자 이철허가 사고 건물을 경내로 이전하였다.

1968년 유정환이 이 건물에 천불을 모시고 천불보전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천불전·지장전·삼성각·호국당·일주문·요사채가 있다.

극락전 안에는 1728년(영조 4년)에 조성된 괘불이 있으며,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0.75m, 너비 7.25m로서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이 괘불은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락전은 1974년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또한, 적성산성에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 개로 1995년 이건, 중창되었고 산 정상에 산정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 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다. 

적상산사고는 임진왜란 당시 평지에 있던 4대 사고가 전란으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주사고의 실록을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마니산 등 5대 사고에 설치하여 각각 실록을 보관했다.

병자호란 당시 묘향산사고 실록의 보관에 어려움이 있자 무주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34년 묘향산 실록을 옮겨와 300여년간 보관하였다.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사고가 폐지되자 적상산의 실록은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 보관해오다가 6·25 때 북한으로 반출됐으며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1990년 초에 댐 건설로 절 지역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1991년부터 이전을 시작하여 1993년에 절을 완전히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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