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장성여행 - 장성 황룡강생태공원,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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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장성여행 - 장성 황룡강생태공원, 필암서원.

by 정산 돌구름 2022. 6. 28.

1박2일 장성여행 - 장성 황룡강생태공원, 필암서원.


2022년 6월 27일 1박2일 장성여행

○ 1일차(6월 27일) : 광주 - 장성 황룡강생태공원

○ 2일차(6월 28일) : 황룡강 생태공원 - 필암서원 - 담양 용면 농원 - 광주

~^^~

2022년 6월 27일, 수국이 활짝 핀 장성 황룡강생태공원에서~

지난 봄 강변을 따라 핀 꽃길은 사라졌지만 활짝 핀 수국과 꽃봉우리를 머금은 연꽃이 아름답다.

황룡강(黃龍江)은 장성에서 임곡을 거쳐 광산 통진산(涌珍山)과 어등산(魚等山)사이를 지나 어등산 남쪽을 흐르다가 송정을 지나 나주로 흐르는 강이다.

남쪽으로 흐르면서 장성군에서 장성호를 이루고, 광주 광산구에 유입하여 남류하다가 유계동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황룡강은 해오라기, 쇠백로 등 새들과 버들치, 갈겨니 등 민물고기와 물풀이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비교적 생태계가 잘 보관된 강이다.

잔뜩 흐린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시원한 강바람이 무더위를 식혀준다.

2022년 6월 28일, 소요한 장성 황룡강변의 밤 풍경..

어둠이 내린 황룡강변, 장마철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세찬 바람 속에 아름다운 풍경에 젖는다.

출렁다리를 수놓는 조명은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오늘밤은 고요한 황룡강변에 머문다.

2022년 6월 28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1590년 하서 김인후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건립된 필암서원은 그리 높지 않은 유민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평지에 자리 잡았다.

옛 규모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미훼철되었고 일제강점기나 6.25사변 때에도 피해를 면한 서원이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서원을 한가롭게 둘러보고 떠난다.

사적 제242(1975423)로 지정된 필암서원(筆巖書院)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개 중 하나이다.

1590년(선조 23년) 호남 유림들이 하서 김인후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인조24년)에 복원하였다.

1662년(현종 3년)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어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 보내주었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건물로는 사우,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전사청(典祀廳), 장서각(藏書閣), 경장각(經藏閣), 진덕재(進德齋), 숭의재(崇義齋), 청절당(淸節堂), 곽연루(廓然樓), 장판각(藏板閣), 한장사(汗掌舍), 고직사(雇直舍), 행랑, 창고, 홍살문, 계생비(繫牲碑)와 하마석(下馬石) 2개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김인후의 위패가, 왼쪽에는 양자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사청은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마련해 두는 곳이며, 경장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판각(墨竹板刻)이 보관되어 있다.

진덕재와 숭의재는 동재(東齋)·서재(西齋)로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청절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장판각에는 『하서집(河西集)』 구본 261판과 신본 311판을 비롯한 637판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다.

장서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과 『하서집』 등 1300여 권의 책, 보물 제587호인 노비보(奴婢譜) 외 문서 69점이 소장되어 있다.

계생비는 향사에 제물로 쓸 가축을 매어 놓는 비로, 제관(祭官)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제물로 쓸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1957년 사우를 우동사(佑東祠)라 현액(縣額) 하였으며, 1975년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유물로는 벼루와 기준(奇遵)이 방문 기념으로 기증한 붓 등이 있으며, 재산은 전답 12,700평과 임야 10정보가 있다.

주요 전각들은 남북 자오선(南北子午線)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었다.

남북이 길게 장방형으로 담장을 쌓고 정면 중앙에 누문인 확연루를 두었으며, 그 중심축 선상 북쪽에 청절당이 위치하고 있다.

강당 뒤쪽 좌우 대칭되는 곳에 동재와 서재를, 북쪽 따로 쌓은 담장 중앙에 내삼문(內三門)을 두고 안쪽에 사당이 위치함으로써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확연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팔작기와집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첨차·소로·쇠서로 결구한 이익공식을 이루고 있다.

특히 확연루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청절당은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온돌방을 하나씩 두었다.

이는 본래의 진원현(珍原縣) 객사를 1672년에 옮겨 온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청절당은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어 초익공식으로 꾸몄다.

가구(架構)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일반적인 가구수법을 이루고 처마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우동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전면 반 칸은 툇간(退間)으로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통간(通間)으로 되어 있다.

장대석은 바른 층 쌓기로 처리한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전면 툇간의 초석은 단면이 팔각형인 장주형 초석을 이루고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두 개를 놓아 이익공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쪽 박공에는 풍판(風板)을 달았다.

중요 전각 외에 진덕재·숭의재는 단순한 민도리집 양식으로 되어 있고, 목판고는 이익공식의 팔작기와집이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담양 농장으로 향한다.

힘차게 줄기흫 뻗어나는 고구마, 잘 익은 자두, 농장에서 힘들지만 그래도 일이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