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여수 영취산 흥국사..
2022년 4월 8일, 여수 영취산 흥국사를 찾아서..
흥국사(興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1984년2월29일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명종 25년(119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어 흥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즉, 변방의 국찰(國刹)로,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했던 기도처로, 불법 그 자체보다는 호국을 우선으로 한 사찰로 창건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려시대의 젊은 학승이 백일기도를 마친 뒤, 기도의 회향축원문(廻向祝願文)에 흥국기원(興國祈願)은 빠뜨리고
성불축원(成佛祝願)만을 넣었다고 하여 이 지방의 향리에게 벌을 받고 다른 절로 쫓겨났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 뒤 1560년(명종 15) 조선 초기부터의 불교 탄압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화된 것을 법수화상(法守和尙)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기암대사(奇巖大師)가 이 절의 승려 300여 명을 이끌고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웠으나 절은 전화로 전소되었다.
그 후 인조 2년(1624년) 계특대사(戒特大師)가 중건하였고, 숙종 16년(1690년)에 통일(通日)이 대웅전·팔상전 등을 중건하였다.
1760년경에는 17방(房) 14암(庵), 총건평 624평에 승려 643명이 상주하던 큰 사찰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정조 4년(1780년)에는 승군 300명이 힘을 모아 선당(禪堂)을 중수했으며, 1803년(순조 3)에는 효암(孝庵)·충감(充鑑)·전순(典淳) 등이 적묵당을 중건하였다.
1812년에는 승군이 심검당을 중수했는데, 조선 말기에 와서 흥국사에 주둔하는 승군이 해산되었다.
1895년(고종 32) 경허가 무사전을 중창하였고, 1912∼1925년에 칠성각·안양암 등을 중수하였다.
1985년 대웅전과 심검당을 해체 복원하고, 적묵당·봉황루·종각 등을 중건하였다. 최근에는 천불전·공복루·영성문 등을 지었다.
현존 당우로는 보물 제396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1645년에 건립한 팔상전(八相殿)과 불조전(佛祖殿), 순조 때 건립한 전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인 원통전(圓通殿),
그 밖에 응진전, 무사전(無私殿), 첨성각(瞻星閣), 적묵당(寂默堂), 심검당(尋劒堂), 노전(爐殿), 백련사(白蓮舍), 법왕문(法王門), 봉황루(鳳凰樓), 천왕문(天王門),
영성문(迎聖門) 등 15동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1693년(숙종 19년)에 천신(天信)과 의천(義天)이 제작한 것으로 보물 제5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팔상전에는 석가의 일대기를 묘사한 팔상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불조전에는 고승의 영정 9점이 봉안되어 있다.
봉황루에는 범종과 흰 코끼리 위에 놓인 특이한 법고(法鼓)와 이 사찰의 연혁 및 신도활동 등을 알 수 있는 현판들이 있다.
1972년3월2일 보물 제563호로 지정된 흥국사 홍교(虹橋)는 1639년(인조 17년)에 축조되었다.
화강석제로 높이 5.5m, 홍예구(虹霓口)의 너비 11.3m, 내면 너비 3.45m, 다리의 전체길이 40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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