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호반길,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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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호반길,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

by 정산 돌구름 2021. 6. 17.

아름다운 호반길,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


2021년 6월 16일, 아름다운 호반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이 맑아 가까운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찾았다.

녹음이 짙어가는 광주호 호반길, 평일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광주호(光州湖) 호수생태원은 광주호반 5만6천여 평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광주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찾기에 좋아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수생식물원, 생태연못, 야생화테마원, 목재탐방로, 전망대, 수변관찰대 등이 있으며, 호수 안에는 버드나무군락지와 습지보전지역이 있다.

수국 등 형형색색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수변부 관찰 테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이 볼만하다.

늪지에서 각종 새들이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메타세콰어이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계단을 조성하였다.

광주호는 담양호, 나주호, 장성호 등과 함께 영산강유역 개발사업 일환으로 영산강의 지류 고서천을 댐으로 막아 1974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6년 9월 준공된 호수이다.

4개 호수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댐의 길이는 505m, 높이 25m로 결코 작지 않은 크기를 가지고 있다.

입구에는 400년 수령의 왕버들나무가 있고, 공원 가까이에 식영정·환벽당·소쇄원 등의 문화유적들이 있다.

충효동 왕버들은 광주기념물 제16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되었다가 천연기념물 제539호(2012년10월5일)로 지정되었다.

충효동 마을에서 인공호수 광주호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은 3그루로써 추정수령은 약 400년이다.

원래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 상징이던 소나무 1그루, 매화 1그루, 왕버들 5그루가 있었으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다.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장하면서 잘라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있다.

첫번째의 것은 높이 9m, 둘레 6.25m, 수관 너비 동서 11.5m, 남북 18.9m이고, 두번째의 것은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 너비 사방 14m이다.

세번째의 것은 높이 12m, 둘레 6.3m, 수관 너비 동서 16.6m, 남북27m이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는 않으나 예부터 성(城)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렀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이 많아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광주기념물 제4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된 충효동 정려비는 정조13년(1789년)에 세워졌으며 높이는 220㎝이다.

앞면에 <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德齡 贈貞敬夫人 興陽李氏 忠孝之里(조선국증좌찬성충장공김덕령 증정경부인 흥양이씨 충효지리)>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김덕령 일가의 애국충절에 대한 찬양과 정조(正祖)가 이름을 지어준 충효리의 유래가 쓰여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는 정조16년(1789년)에, 비각은 1792년에 세운 것인데, 비각은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각 앞면에는 전주부윤 한용구가 쓴 ‘正祖御製綸音(정조어제윤음)’이 걸려 있고, 비각 내부 우측에 ‘충효리 비각 상량문’,

‘충효리 비각 중수기’의 기록문들이 있다.

비각 안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정유재란 때 왜군의 추격을 받고 순절한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 효성이 지극했던 김덕령의 아우 김덕보(金德晋)를 기리는 비가 있다.

김덕령((金德齡 1567~1596)의 본관은 광주(光州), 붕섭(鵬燮)의 아들로 자는 경수(景樹)이다.

임진왜란 담양부사 등에 의해 의병장에 천거되어 익호장군(翼虎將軍)의 호를 받았고 권율의 휘하에 들어가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고성 지방을 방어하였다.

1596년 충청도 홍성에서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잡혀가 문초를 받던 중에 옥사하고 말았다.

후일 좌찬성을 추증받았으며 충장(忠莊)이란 시호를 받았다. 형인 덕홍은 고경명을 따라 금산싸움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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