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탐방, 기암절벽과 경관 구미 금오산(金烏山)-칼다봉 산행..
본문 바로가기
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9

100대 명산 탐방, 기암절벽과 경관 구미 금오산(金烏山)-칼다봉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9. 9. 2.

 

100대 명산 탐방, 기암절벽과 경관 구미 금오산(金烏山)-칼다봉 산행..


91일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광주첨단산악회와 함께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6시10분, 비엔날레주차장 입구를 출발한 버스는 첨단지구를 거쳐 북광주IC로 들어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고령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김천J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구미IC를 빠져나온다.

9시20분,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간단한 체조 후 9시30분,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지만 채미정 옆 길로 들어서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경북환경연구원 갈림길을 지난다.

584봉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칼다봉이 위세당당하게 올려다보이고, 가파른 오르먹을 따라 칼다봉에 올라선다.

칼다봉 이후는 금오산성을 따라 잠시 부드러운 오르내리막과 암벽을 타고 오르면 건너편으로 금오산이 바라보이는 745봉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성안전위봉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선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 약사암을 둘러보고 매애불, 오형석탑, 대혜폭포, 도선굴을 지나 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후텁지근하고 무더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함께 한 첨단산악회와 함께 한 즐거운 산행길이었다.

 

산행일자 : 201991()

기상상황 : 흐림(구름 맑은 날씨에 간간히 햇살이 드러남 22~25)

산행인원 : 광주첨단산악회 45- 회비 35,000

산행코스 : 주차장~~칼다봉~성안~현월봉~약사암~오형돌탑~도선굴~해운사~주차장(경북 구미, 칠곡, 김천)

거리 및 소요시간 : 11.89Km(트랭글GPS), 5시간10분 소요

  주차장(09:30)~호텔 입구(09:35)~연수원 갈림길(10:00)~584m(10:35)~칼다봉(11:00~05)~745m(11:20~45)~852(11:57)

  ~성안삼거리(12:00)~현월봉(12:25~35)~약사암(12:40~45)~마애보살입상(13:00)~오형돌탑(13:10~15)~할딱고개(13:45)~

  대혜폭포(13:50)~도선굴(13:55)~해운사(14:05~10)~대혜문(14:17)~케이블카 매표소(14:30)~주차장(14:40)

주요봉우리 : 금오산 현월봉(976.6m), 성안 전위봉(852m), 칼다봉(715.2m)

교통상황

 - 비엔날레(06:10)~첨단지구~광주-대구고속~중부내륙고속~남성주휴게소~경부고속~구미IC~906~주차장(09:25)

 - 주차장(16:55)~한신사우나(16:05~55)~구미IC~경부~중부내륙~88고속~거창IC~뒤풀이~88고속~문예회괸(20:55)

산행지 소개

  경북 칠곡과 구미, 김천의 경계에 솟아있는 금오산(金烏山 976.5m)은 주봉인 현월봉(懸月峯)과 약사봉(藥師峰), 영남 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다.

  산세는 동북쪽 구미방향이 험준하고 서남쪽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예로부터 태양에 산다는 황금 까마귀 금오(金烏), 이른바 삼족오가 노닐었다는 전설과 함께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 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임금 ()’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

  (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오래 전부터 대본산으로 불렸고 고려 때는 중국 허난성의 숭산(崇山)을 닮아 남숭산으로 불렸다.

  금오산은 1970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105일 자연보호헌장을 처음으로 공포한 곳이기도 하다.

  정상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새의 모습과 비슷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 같다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동남쪽으로는 팔공산(1,192.9m)과 마주보고 있고, 남쪽으로 수도산(1,327.4m)과 가야산(1,430m), 북쪽으로 황학산(1,111.4m),

  서북쪽으로 삼도봉(1,172m), 민주지산(1,241.7m)과 맥을 같이 한다.

  정상은 비교적 평탄한 분지를 이루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금오산은 옛부터 군사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이어서 고려 때부터 조선말까지

  군창과 군영이 있었던 굳건한 산성과 산성마을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군관민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성은 외성과 정상 아래 너른 분지를 에워싼 내성으로 꾸며 있다.

  깊은 골짜기와 뾰족한 봉우리,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산등성이, 바위로 이루어져 기암절벽에 급경사가 많고,

  산 아래에서 해운사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금오산은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해운사, 약사암, 금강사, 법성사, 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말의 충신 야은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도선굴(道詵窟)

  비롯해 높이 38m의 대혜폭포, 세류폭포 등이 있다.

  또한,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금오산은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하며, 문화유산이 많고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또한, 수려한 경관으로 가을과 봄 순으로 많이 찾지만 여름에도 인기있어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64위에 랭크되어 있다.

  『블랙야크 명산 100』에도 선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9시20분, 광주에서 3시간여를 달려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널따란 공원에서 간단히 산행준비 체조를 한다. 가야할 능선이 바라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 관광호텔 입구로 향한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는 이곳에서 시민안녕과 지역발전을 기원하는 ‘금오대제’를 올린다..

 

 

금오산호텔 입구, 이곳이 산행 초입이지만 통제하였는지 우측으로 등산로 표지가 있다..

 

 

맥문동이 활짝 핀 솔밭을 따라 다시 내려선다..

 

 

채미정 입구로 돌아와 등산로를 찾지만 등산로가 없어 계곡을 건너 숲길로 들어선다..

 

 

채미정(採薇亭)은 야은 길재선생이 백이숙제의 덕을 사모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금오산 기슭에 그 높은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4년(1768년)에 세운 정자이다.

채미정이란 명칭은 중국의 백이숙제((伯夷叔齊)가 고사리를 캐던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으로 야은이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한데서 유래하였다.

야은이 세종 1년(1419년)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선생과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이라 일컫게 되었다..

 

 

숲길로 들어서 한참을 올라서면 경북자연환경연수원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한다..

 

 

아래로는 금오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구미시가지가 희미하다..

 

 

계속되눈 오르막..

 

 

조망이 트이는 암봉에 서면 구미시가지가 바라보인다..

 

 

가야할 금오산..

 

 

지나온 능선..

 

 

돌탑이 있는 584m봉에 올라선다..

 

 

584m봉에서 바라본 칼다봉..

 

 

잠시 내려서면 폭포 갈림길, 좌측으로는 명금폭포로 내려서는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 암벽을 올라서면 전면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바라보이고 멀리 효자봉-국사봉 능선에 눈에 들어온다..

 

 

칼다봉에 올라선다..

 

 

칼다봉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능선이 칼등 같아서 일까?

 

 

 

 

칼다봉에서 바라본 풍경, 아래로 구미시 수정동을 지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그 뒤로 효자봉, 국사봉 능선이 바라보인다...

 

 

멀리 김천시사지가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금오산성 능선을 따라가면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고 이어서 직벽의 바위지대를 따라 오른다..

 

 

능선에서 바라본 대혜골과 금오저수지, 그리고 구미시가지..

 

 

암벽을 올라서면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고 745m봉 너머로 가야할 금오산 현월봉이 바라보인다..

 

 

745m봉 암릉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떠난다..

 

 

이어지는 능선, 벌써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다..

 

 

백운봉 너머로 정상이 다가온다..

 

 

잠시 오르면 해발 852m인 금오산 성안전위봉이다..

 

 

성안 전위봉에서..

 

 

다시 내리막을 따라 내려서면 성안 연못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금오산성 안에 형성된 성안(城內)은 한 때 인구가 450명이 넘었으나 화전정리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사라진 산성마을이다.

옛날 금오독진으로 3,5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주변에 민가가 있었다가 구한말 군의 해산으로 민가가 줄어 10여 호가

최근까지 있었으나 1977년 내무부의 화전정리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옛 자취를 알 수 있다.

고랭지 감자가 잘 되고 옛 군영 당시부터 즐겨 마시던 민속주로 감자술이 유명하며, 성안 배추 또한 유명하였다고 한다..

 

 

성안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향한다..

 

 

금오정은 새롭게 단장하여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금오동천 갈림길, 폭포로 내려서는 길과 정상으로 가는 길, 금오동천으로 내려서는 길이 읶다..

 

 

정상으로 향하면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가 있다..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다시 금오동천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난다..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올라선다..

 

 

금오산을 칠곡과 인동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거인산(巨人山)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고 하였다.

선산에서 금오산을 보면 끝이 뾰족하여 붓끝 같으므로 필봉()이라고 불렀다..

 

 

개령 방향에서 보면 금오산봉이 도적놈이 무엇을 노리며 피신하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적봉()이라 하였으며,

금산에서 보면 부잣집의 노적() 같다고 해서 노적봉()이라고 불러왔다.

인동에서 이 산을 보면 높은 사람이 관()을 쓴 것 같아서 귀봉()이라고 불렀고, 성주에서 보면 음탕한 여인의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이라 호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의 흉물스러웠던 군부대 시설물이 지금은 철거되어 또 하나의 정상석이 자리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구미시가지..

 

 

 

 

지나온 칼다봉 능선..

 

 

 

통신탑..

 

 

 

정상에서 내려서 약사암 방향으로 향한다..

 

 

 

약사암 일주문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을 지나 내려선다..

 

 

 

약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 정상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다.

광해군 10년(1618년) 간행된 『일선지』, 정조 23년(1799년) 간행된 『범우고』에 기록이 남아있다.
약사암은 약사전·삼성각·일주문·종각·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신중탱·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약사전에 봉안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수도산 수도암(), 황악산 삼성암()의 약사불과 함께 삼형제불(三兄弟佛)이라

불리며, 세 불상이 함께 방광()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보물 제296호인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의 설명문에 ‘금오산 약사암에 있는 석불, 직지사 약사전의 석불과 함께 3형제라 하고

그 중 한 석불이 하품을 하면 다른 두 석불은 따라서 재채기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삼성각 탱화..

 

 

 

약사암 종각..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이 처음에 금오산 동쪽 바위 밑에 움막을 치고 수도성불할 때 선녀가 하루 한끼의 밥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곳에 암자를 지었으니 곧 약사암(藥師庵)이다.

지금까지 수도승은 물론이요 일반의 신방(蜃訪)도 많으며 이 암자에 참선해야 극락에 갈 수 있다하며, 4월8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백발노인들의 참선함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성불한 의상은 뒤에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동해 화엄의 대종사(大宗師)가 되었다.

약사암이란 바로 약사여래에서 기인된 명칭이며,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 스님도 약사암에서 참선득도(參禪得道)했다 한다..

 

 

범종각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범종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고 대통령 박정희, 고 영부인 육영수, 영애 박근혜, 영애 박근영, 영식 박지만』

 

 

 

 

약사암에서 마애석불 방향으로 내려선다..

 

 

 

약사암에서 바라본 구미시가지..

 

 

 

약사암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한참을 내려서면 법성사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금오산 석간수..

 

 

 

연리지를 지나고..

 

 

보물 제480호로 지정된 높이 5.55m의 금오산 마애여래입상(磨崖菩薩立像)..

거대한 암벽의 모서리에 조각된 마애석불로 불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이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비교적 좋다.

머리에는 3면보관()이 있으나, 마멸로 조각한 장식은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코·입 등도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인 것이다.

어깨의 선은 매우 원만하고 자세도 좋지만 가슴·팔·하체 등은 둔탁하게 처리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팔굽을 약간 굽히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여 옷자락을 잡고 있다.

발은 곧게 서 있으며, 발가락은 매우 크고 듬직하다.

 

 

 

마애석불을 지나 내려서면 오형돌탑이 바라보인다..

 

 

 

오형돌탑..

 

 

 

암벽 위쪽으로도 돌탑이 바라보인다..

 

 

 

오형돌탑으로 내려서는 길..

 

 

 

오형돌탑으로 들어서는 쌍룡문..

 

 

 

금오의 ‘오’와 손주 이름 형석의 ‘형’를 넣어 '오형돌탑'이라 하였다고 한다..

 

 

 

 

 

 

 

 

 

 

 

 

 

 

 

 

 

 

 

 

 

일소일소(一笑一少)의 장승이 있는 길목을 지나..

 

 

 

한참을 내려서면 할딱고개..

오르는 길이 험해서 이 고개를 오를 때 숨이 할딱거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할딱봉에서 바라본 현월봉 능선..

 

 

 

금오저수지와 구미시가지..

 

 

 

도선굴 암벽도 바라보인다..

 

 

 

가파른 내리막 계단이 한참을 이어진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도선굴..

 

 

 

대혜폭포(大惠瀑布)에 내려선다.

해발 400m지점에 낙차 27m의 폭포로 사계절 끊임없이 떨어지는 장관은 산의 위용을 한층 더한다.

금오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

 

 

또,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지방의 용수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대혜폭포는 ‘명금폭포’로 불리기도 하는데, 1935년경 경북도지사인 일본 사람이 이곳을 찾아 주변경관과 물소리에 매료되어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차가운 기운에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사물은 희미한데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금오산을울리는 소리’라고 탄복하고 자기의 시상(詩想)이 사라지기 전에 석수(石手)를 불러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 새겼다고 한다.

그 후로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오늘날 명금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沼)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욕담(浴潭) 또는 선녀탕이라고 한다.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즐기고 시회(詩會)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폭포 옆 암벽에는 ‘욕담(浴潭)’이라는 예서체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장현광의 문도 중 한사람인 김공(金羾)이 폭포 근처 도선굴 아래에 움막을 짓고 학문을 닦다가 새긴 것이라 한다.

대혜폭포를 흐르는 물은 남통천이라 불리며 금오산저수지의 수원이 되어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폭포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도선굴로 오른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도선굴에서 바라본 해운사..

 

 

 

도선굴은 대혜폭포 우측 절벽의 천연동굴로 신라 말 도선(道詵)이라는 고승이 이곳에서 참선하여 도를 깨우쳐 풍수지리설의

창시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야은 길재선생이 세속을 떠나 이곳에서 수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굴의 폭과 높이는 각기 5m 쯤, 길이는 10m 쯤 된다..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일선지(一善誌)』에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칸 있었다.”고 한다.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잠시 내려서 해운사(海雲寺)에 이른다..

 

 

 

해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1925년 중창하여 해운암(海雲庵)이라 하였으며, 1956년 3월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안에는 석고로 조성한 관세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1992년에 봉안한 후불탱화·칠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만든 석조나한상이 있는데, 이를 석조수행대사입상(石造修行大師立像)이라고도 부른다..

 

 

 

 

 

 

포대화산(布袋和尙)..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로 본명은 계차()이다.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

또는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미륵진미륵 분신백천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불식

( )』이라는 게송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그 때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지장보궁..

 

 

 

지장보살..

 

 

 

사천왕문을 나서 내려선다..

 

 

 

금오산성 외성인 대혜문 아치를 지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여말 왜구의 침입 때 지역 백성들이 성을 지켰다고 한다.

정상부와 계곡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으로 외성 3,700m, 내성 2,700m규모이며, 태종 10년(1401년)새로 정비했다.

 

 

금오동학(金烏洞壑)..

커다란 바위에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금오산의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각 글자의 길이는 세로 90~100cm, 가로 50~70cm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 글씨는 조선 중기 명필로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렸다는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필적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해운사까지 운행하는 금오산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난다..

 

 

 

금오산은 1970년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10월5일 자연보호헌장을 처음으로 공포한 곳이기도 하다.

1977년9월,고 박정희대통령이 대혜폭포에서 깨진 병조각과 휴지가 널린 것을 보고 청소하며 바위틈에 끼인 병조각을 주웠다.

자연보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듬해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고 한다.

 

 

 

야은 길재 석상이 있는 공원을 지나..

 

 

 

공원 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는 사람이 없다.

30분이 넘게 기다리니 일부가 도착하여 간단히 한잔을 한다.

 

 

 

 

1시간여를 기다려 후미가 내려와 16시55분, 금오산공원을 출발한다..

 

 

 

구미시내 조그만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17시55분, 거창으로 향한다..

 

 

 

거창에 있는 식당에서 화끈한 뒤풀이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