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기행]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조용하고 정갈한 사찰, 고성 운흥사(雲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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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행]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조용하고 정갈한 사찰, 고성 운흥사(雲興寺)..

by 정산 돌구름 2019. 1. 4.

와룡산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조용하고 정갈한 사찰, 고성 운흥사(雲興寺)..


 

2019년 1월 3일, 고성 무이산-향로봉 산행길에 만난 조용하고 정갈한 사찰 운흥사..

 

운흥사(雲興寺)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 자락의 향로봉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유정()이 6천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웠다.

또 이 때 이순신이 작전을 세우기 위해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왜군이 불을 질러 모두 불에 탄 것을 1651년(효종 2년) 법성()이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영산전·범종루·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82호(1974년2월16일)인 대웅전은 안정사 대웅전으로 지정되었다 2018년12월20일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크기에 비해 기둥이 대단히 높아 건물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기둥은 민흘림과 배흘림이 섞여 있는데 배흘림기둥은 굵기나 곡선의 비율이 안정되어 있어 아름답다.

건물의 장식은 단순하게 처리했지만 장식물의 간격이 일정하고 기둥과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부의 모습은 외부에 비해 훨씬 화려한데 중앙을 향해 피어오르듯 처리한 장식은 미려함을 더해준다.

천장은 층급을 두고 중앙을 높게 처리함으로써 거대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였다.

부처가 거처한다는 수미단을 상징하는 불단 위에는 닫집을 씌움으로써 신성성을 더해주고 있다.

마루 틀을 짜고 그 사이에 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운 우물마루는 소박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조선 후기 다포계 맞배집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부에 삼존불상과 수월관음도·감로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수월관음도는 1730년(영조 6년)에 제작한 것으로 가로 2.4m, 세로 1.72m의 크기이다. 1998년에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걸었다.

감로탱화는 아래 부분에 당시의 풍속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 있어 당시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 운흥사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유물로는 운흥사 영산회괘불탱 및 궤·운흥사소장경판이 각각 보물 제1317호와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운흥사괘불탱은 1730년 의겸() 등 20명이 그린 불화로서 가로 768㎝, 세로 1,136㎝에 이르는 대작이다.

괘불궤는 이것을 담았던 보관함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세 번이나 본국으로 가져가려다가 심한 풍랑으로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뒷면에 휴정과 유정의 진언(), 영조의 어인()이 새겨져 있다.

운흥사소장경판은 모두 16종 194장의 목판으로 17∼8세기에 새긴 것이다.

그밖에 1690년에 만든 범종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산내 암자로는 절에서 와룡산 정상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천진암이 있고, 천진암에서 200m 위쪽에 낙서암이 있다.

절에서는 숙종 때부터 매년 음력 2월 8일 호국영령을 위한 영산재를 여는데, 음력 2월 8일은 임진왜란 때 승병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