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기행] 전남 문화재자료 제188호, 연동사지 지장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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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기행] 전남 문화재자료 제188호, 연동사지 지장보살입상

by 정산 돌구름 2016. 1. 14.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담양 연동사지 지장보살입상..

 

○ 탐방일 : 2016년 1월 10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산91-3

○ 연동사지 보살입상(煙洞寺址地藏菩薩立像) 소개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88(19921130)로 지정된 이 석불은 금성산성 남쪽 20m 정도 높이의 암벽 바로 밑에 석탑과 함께 서있다.

  이 보살입상은 사각 석주형(石柱形)에 앞뒤 면을 약간 다듬어 머리부분은 어느 정도 사실적인 기법으로 조각하였고, 신체부분은 손과 형식화된

  옷주름만 나타내었으며 전혀 균형이 맞지 않게 간략화 하였다.

  머리는 윗부분이 민머리로 육계가 없는 소발(素髮)이며 얼굴은 둥글넓적하다.

  코는 납작하고 입은 작은 편이며 귀는 길게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희미하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나 매우 간략화되었으며, 한 가닥의 법의 자락이 양팔에 걸쳐 내려온다.

  몸체 아래쪽은 땅 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다.

  배면은 원통형의 기둥과 같이 밋밋하게 처리하였고, 고개를 약간 앞쪽으로 숙이고 있다.

  가슴 아랫부분은 띠매듭으로 장식하였는데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내려온 기법이다.

  오른손은 팔을 구부려 위로 올린 상태에서 중지와 엄지를 맞대고, 왼손은 신체 균형에 맞지 않게 길게 내려뜨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같은 수인(手印)은 아미타여래상의 손 모습과 같은 것으로, 보살의 경우 지장보살에서 흔히 보인다.

  신체부분의 간략화 현상, 움추린 듯한 어깨, 짧은 고개가 경직된 채 앞으로 숙인 모습 등에서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장보살은 고려시대에는 주로 불화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석불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연동사는 누가 어떤 연유로 지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고, 다만 연기가 많은 마을에 있는 절이라는 절 이름에 대한 유래가 전해 내려올 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추성지(秋城志)>에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參知政事)의 벼슬을 지낸 이영간(李靈幹 10471082)이 어렸을 때

  연동사에서 공부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1C 이전에 지어진 절로 추측된다.

  정유재란 때 금성산성에서 죽은 시체를 절과 가까운 골짜기에 쌓아 두었는데 그 수가 2천명에 이르렀다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왔으나 수많은 유골더미 속에서 가족을 찾을 길이 없었다.

   체념한 유족들이 유골더미 위에 향불을 하나씩 피웠는데 그 향 연기가 안개처럼 온 산을 뒤덮었다고 한다.

   절은 고려시대부터 그곳에 있었으나 그때부터 연기 연() 자에 마을 동() 자를 써 연동사라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범우고> 등에 따르면, 연동사는 17세기 이후 폐찰된 사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