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사도리 삼층석탑(沙圖里三層石塔)과 석불좌상(石佛坐像)...
○ 탐방일 : 2015년 12월 3일
○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산 33-1
○ 사도리 삼층석탑 및 석불좌상 소개
사도리 삼층석탑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1972년1월29일)로 지정되었으며, 상은사(이종기)가 관리하고 있다.
화엄사에서 4km 정도 떨어진 사도리 마을에서 약 500m 북쪽 산록에 사도리 석불좌상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옛날에 상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문헌이나 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전체높이 2.8m로 단층기단으로 기단부에 아무런 조식을 가하지 않았고 우주가 생략되었으며 단지 평판석으로 기단면을 구성하였다.
기단부 하대를 보면 맨 밑에 자연석에 가까운 판석 4장으로 지대를 삼고, 그 위로 1장의 판석으로 기단 중석을 받게 하였다.
중석의 면석은 판석 4장으로 결구하였는데, 각 면의 양면에 우주(隅柱)가 희미하게 모각되었고, 그 위로 갑석을 올려놓았다.
하면은 부연 없이 수평이며, 상면은 약간 경사져 있으며 중앙으로 오르면서 두꺼운 호각형의 괴임대로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탑신이 각 1석씩 있으며, 1층 탑신의 각 4면에 우주를 모각하지 않았다. 2∼3층에서도 같은 기법을 사용하였다.
1층 옥개석은 둔박하여 하면은 층급받침 없이 처마 밑에서부터 호형으로 양감을 주다가 탑신을 받는 중앙에서는 일단의 받침이 나와 있다.
옥개석 상면은 처마의 곡선이 밋밋하다가 전각을 보였으며 네 모서리의 우동마루도 역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나 옥개석이 알맞게 작아졌으나, 3층 탑신은 2층 탑신에 비해 너무 작아져 불균형하게 보인다.
상륜부는 노반을 대신하는 구형 석재와 그 위로 보주를 올려놓았다.
이 삼층석탑은 규모가 작은 편이고, 석재의 결구나 각 부재 양식의 퇴화 등 여러 면에서 시대적인 하한성을 보인다.
그러나 같은 경내에 고려시대 석불좌상이 있어 이 시대의 석조예술에 대하여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영천이씨 재실, 옥산재(玉山齋)..
구례 사도리 석불좌상(沙圖里 石佛坐像)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청되는 이 불상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1986년2월7일)로 지정되었다.
1979년 산림내불법건조물 철거 당시에 불상을 봉안하였던 건축물이 철거된 뒤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다.
1980년대 초에 이종기가 여기에 상은사를 지어 관리하고 있다.
사도리 삼층석탑과 함께 보존되어 있는 사도리 석불좌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전체높이 195cm, 불상 높이 124㎝, 어깨너비 59cm이다.
대좌는 맨 밑에 복연석·중석·앙연석을 갖추었으나 현재 중석이 석불 앞으로 빠져나와 배례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복연은 16엽 연화무늬를 중첩되게 조각하였다.
이 석불좌상은 현재 조그마한 보존각 안에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바로 앞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 작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보존각 옆에는 영천 이씨 묘역과 재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와편과 청자 편이 흩어져 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상곡사(象谷寺) 혹은 삼곡사(三谷寺)란 절이 있었다고 하나 어떤 사찰이었는지 그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혹시 9세기 중반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던 삼국사(三國寺)가 이곳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있다.
머리칼은 나발(螺髮)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거의 소발(素髮)에 가까우며 현재 육계(肉髻)는 파손되어 없다.
상호(相好)의 각 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잘 보이지 않자 약 20년 전에 관리인이 뚜렷하게 잘 보이게 하려고 이마와 머리 부분, 눈썹, 두 눈, 입,
턱 밑의 일조선 등 대부분의 조각을 새롭게 깊게 음각하여 원형을 잃고 있다.
그렇지만 얼굴은 원만상에 가깝고 다소 풍만감이 느껴진다. 목은 시멘트로 보수하였기 때문에 짧은 편이고 삼도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은 풍만감이 있고 허리는 잘록하며 어깨는 당당한 편이고,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무릎은 넓고 높아서 안정감이 있다.
법의(法衣)는 편단우견(偏袒右肩)인데 거의 평행하게 처리되었다.
대좌는 하대석·중대석·상대석 등을 갖추어 기본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현재 중대석이 석불 앞으로 빠져 나와 배례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대석은 복련(覆蓮)으로 16엽중판이 정현하게 조각되었으며 상면에 8각3단각형이 있어 중대를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8각이나 각 면에 아무런 조각이 없다. 상대석은 앙련(仰蓮)으로 16엽 연화문(蓮花文)을 중첩되게 조각하였다.
상호에서 느낄 수 있는 풍만감, 어깨와 가슴의 당당함, 3단 대좌의 연화문 조각 기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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