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기행] 이순신장군의 사당, 순천 충무사(忠武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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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기행] 이순신장군의 사당, 순천 충무사(忠武祠)

by 정산 돌구름 2015. 10. 28.

이순신장군의 사당, 순천 충무사(忠武祠)

○ 탐방일 : 2015년 10월 28일

○ 소재지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 28-1

○ 충무사 소개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1984229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李舜臣), 정운(鄭運), 송희립(宋希立)을 제향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1598년 정유재란이 끝나고 약 100년 후 신성리에 서씨, 이씨, 김씨 등 3성이 처음으로 현지에 거주 하면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였으나, 밤마다 마을 앞 바다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게 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소규모의 신당

  한 채를 짓고 여기에 이 충무공의 영정을 그려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44년에 이르러 일제의 방해로 인해 사당과 함께 이 충무공의 영정이 철거되어 버렸다.

  해방 후 승주군수로 부임해 온 김양수의 발의에 의해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군민들의 성금을 모으게 되었고,

  아울러 광주에서도 충무공 유족 복구 기성회가 설립 되면서 1949년 가을에 와서 마침내 새로운 사당을 짓게 되었으니 지금의 충무사이다.

  이때 이당 김은호의 휘호로 충무공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여 걸었고, 그로부터 2년 후 충무공의 막하에서 큰 전공을 세운 정운과 송희립의

  영정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1952년에 이르러 승주 경모회에서 충무사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그 뒤 1987년에 경내를 넓게 확장하여, 종래 13.2에 지나지 않던 사우를 46.2규모로 복원, 새롭게 단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자는 여해(汝諧),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서울에서 태어나 1578(선조 1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뒤 의주판관, 정읍현감 등을 지내다가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부임하여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웠다.

  정운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창진(昌辰), 시호는 충장(忠壯)으로 지금의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 웅천현감, 제주판관 등을 지내다가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鹿島萬戶)에 임명되어 군기를 정비하였다.

  임진왜란 때 옥포, 당포, 한산도대첩 등에 참여하였고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하였으며,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송희립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중(信仲)으로 고흥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도만호(智島萬戶)로 형 대립(大立)과 함께 의병을 모아 참전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건물은 4동으로 신실은 정면 3, 측면에 전퇴를 둔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이다.

  충무공 탄생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