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공원과 바다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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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군산 월명공원과 바다조각공원

by 정산 돌구름 2014. 6. 9.
명공원과 바다조각공원..

 

2014년 6월 6일, 군산여행..

일본인이 많이 모여 살던 군산에는 벚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데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인 전군가도의 가로변에는 봄이면

하얗게 피어난 벚꽃으로 유명한 월명공원이 있다.

월명공원 아래로는 해망굴이 있다.

1926년 10월에 개통된 터널로써 (구)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들어진 반원형의 터널이다.

이 터널은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시내(당시 행정의 중심지인 명치통)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926년에 시작된

제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치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 해망굴도 이 과정에서 완공된 것이다.

 

터널 옆 흥천사..

일제시대 일본인이 창건한 안국사라는 사찰에 기원을 두며, 광복 후에는 충의사로 불리다가 1964년에 흥천사로 개칭하였다.

일제시대의 일본인 사찰의 흔적은 건물 본체 우측에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이 새겨진 입석 모양의 자연석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산책로가 오르내림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러 찾으며, 공원 안에는 해병대충혼탑과 개항기념탑, 채만식기념비, 삼일운동기념비

등 군산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비들이 곳곳에 서 있다.

산책로를 따라 위로 오르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이곳에 올라 보는 군산 시가지와 군산항의 풍경은 장관이다.

 

전망대 옆에는 춘고 이인식선생 동상이 있다.

호 춘고(春皐) 이인식(李仁植)선생은 전북 옥구 출생이다.

서울에서 보성중학 재학 중 1919년2월28일 정동예배당의 목사 이필주 집에서 중학생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실행을 계획하였다.

그때부터 보성중학 대표로 참석, 3월1일 탑골공원, 5일 서울역앞 시위 등에 앞장서다 잡혀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전재산을 처분하여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요인에게 군자금 8,000원을 전달하고, 독립자금모집원이 되어 계속 활동하였다.

8·15광복 직전 일본 도요(東洋)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광복이 되자 고향에 임피중학을 설립하였고 교장이 되어 후진교육에 힘썼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월명공원수시탑이 우뚝 서 있다. 28m 높이의 수시탑은 군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이 탑은 1968년에 군산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성시탑(盛市塔)이되었다가 얼마 후 다시 군산시를 수호하는 탑이라는 의미의

수시탑(守市塔)으로 개칭, 군산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돗을 펼친 매의 모습과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형상화하였다.

주변은 사진촬영 장소로 유명하며, 군산항과 공업단지, 금강 입구와 장항, 금강하굿둑과 오성산, 군산의 원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월명산 자락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능선에 자리잡아 조망이 압권이다.

발아래로 천리길을 내달려온 금강이 거센 기세로 서해와 몸을 섞고, 강 건너 충남 서천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쪽으로 파도가 꽃잎처럼 너울대고, 그사이로 고군산도가 꽃술처럼 고개를 내민다.

바다조각공원도 월명공원의 명소다.  

군산항 개항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 일환으로 조성된 바다 조각공원은 명망있는 작가들의 20여점의 수준높은 작품들이 전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