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천주교인 최여겸(마티아) 순교지..
○ 탐방일 : 2014년 5월 11일(일)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 최여겸의 순교지
최여겸 순교지는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2004년6월8일)로 지정되었다.
2014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성지가 조성되는데, 1단계로 주차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 말까지 부지 1만 5,516㎡를 매입 확보하고,
2단계로 2012년까지 순교 현양탑, 최여겸 동상, 야외 제대, 십자가 타워 및 성모상이 만들어지고, 3단계로 2014년까지 산책로와 쉼터,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고창군 공음면사무소에서 상하 방면 국도 22호선을 타고 1㎞ 가면 왼쪽에 최여겸 순교지 관광 안내판 표지가 서 있다.
그 길에서 100m쯤 들어간 곳에 있다. 발굴조사는 2002년7월 위치확인과 고증자료 수집, 8월 개발계획 수립 착수,
2004년 추경에 사업비 5,000만 원을 확보하고 부지매입과 표석설치, 잔디조성에 들어갔다.
2005년11월 부지 3,305㎡를 확보했으며, 2009년 1억2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계속 부지매입을 하였다.
고창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이며, 전라도 지방 선교의 거점지이자 천주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순교자 최여겸의 세례명은 마티아이고, 전라도 무장에서 출생했다.
최여겸의 신분에 대해서는 <한국천주교회사>에는 양인으로, <황사영 백서>에는 상인(常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명단에는 양반 출신으로 되어 있다.
최여겸은 윤지충(바오로)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그 교리를 더 자세히 배우기 위해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이존창(알로이시오)으로부터 교리를 배운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전교(傳敎)에 전념했다.
신유박해 당시 최여겸이 고향에서 영세시킨 사람이 28명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그의 폭넓은 전교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최여겸이 입교시킨 사람들로는 무장에 사는 조카 최일안을 비롯, 최수천, 흥덕의 김처당, 함평의 남중만, 영광의 이화백 등 이었다.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최여겸은 충청도 한산(漢山)의 처가로 피신했으나 배교자의 밀고로 4월13일 체포되어 한산관아,
전주감영을 거쳐 형조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8월27일 고향인 무장의 개갑장터에서 참수되어 39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순교지는 영광과 지척지간이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우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형조에서 내린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최여겸은 처음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며, 이후로는 이존창을 따르면서 교리를 독실히 믿고 익혔다.
또 그 교리로 남들을 속여 미혹(迷惑)시키고, 널리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자신도 망치고 남들도 망치게 하였으니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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