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속(離俗)의 절경 백두대간 속리산 문장대~천왕봉, 그리고 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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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3

이속(離俗)의 절경 백두대간 속리산 문장대~천왕봉, 그리고 법주사..

by 정산 돌구름 2013. 10. 21.
이속(離俗)의 절경 백두대간 속리산 문장대~천왕봉, 그리고 법주사...

 

 

○ 산행일자 : 2013. 10. 19(토)

○ 기상상황 : 구름 조금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16~18℃)

○ 산행인원 : 광주토요산악회(45명) - 회비 35,000원

○ 산행코스 : 시어동~화북분소~문장대~문수봉~신선대~비로봉~천왕봉~상환암~세심정~법주사~주차장(충북 보은)

○ 거리 및 구간별소요시간 : 약15.0km, 6시간40분소요

  시어동(10:20)~화북분소(10:30)~오송폭포(10:38)~전망바위(11:27)~문장대(11:57~12:12)~문수봉(12:30~13:00)~

  신선대(13:20)~경업대갈림길(13:27)~입석대(13:56)~석문(14:02)~법주사갈림길(14:10)~천왕봉(14:25~14:35)~갈림길

  (14:50)~상환암(15:23~28)~휴게소(15:42)~목욕소(15:47)~법주사(16:10~40)~매표소(16:50)~주차장(17:00)

   <시어동~문장대 3.8km, 문장대~천왕봉 3.4km, 천왕봉~법주사 5.7km, 법주사~주차장 2.1km>

○ 주요 봉우리 : 속리산 천왕봉(1,057.7m), 문장대(1,033m), 비로봉(1,032m), 문수봉(1,018m)

○ 교통상황

  비엔날레(07:00)~호남고속~벌곡휴게소~경부고속~청원JC~30번고속~화서IC~25번~49번~시어동(10:15)

  주차장(17:25)~505번~19번~속리산IC~30번고속~경부~청원IC~청주본가(18:20~19:05)~호남고속~비엔날레(21:20)

 

○ 산행지 소개

  속리산(俗離山)은 소금강 또는 제2금강이라 불리는 백두대간 중의 명산으로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으며,

  우리나라 대찰의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정상인 천황봉(1,057.7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다.

  봉우리가 아홉개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신라시대까지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다.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 제4호), 문장대,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03호)로 대표된다.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묘봉에서 관음봉, 문장대,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경북과 충북의 경계이다.

  보은군이 구병산과 속리산, 관음봉,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43.9Km의 능선을 1995년5월17일 <충북알프스>로 지정, 특허청에 업무

  표장 등록함으로써 많은 등산애호가의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다.

  국내 최장의 원점회귀 코스「우복동천」은 화북면 우복동을 감싸고 있는 도장산, 속리산, 청화산에 조성된 아름다운 산행지다.

  총 거리 37.8km로 기존 등산로 30.1km를 정비하고, 도장산(5.2km)과 청화산(2.5km)의 7.7km 구간을 새롭게 개설했다.

 「속리산구간」은 「갈령~갈령 삼거리~형제봉~천왕봉~문장대~밤티~늘재」로 도상거리 총 18km에 8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속리산의 형제봉~천왕봉~문장대 구간은 백두대간, 충남알프스, 우복동천이 함께 하는 구간이다.

  속리산은 8자(字)과 인연이 많은 승경(勝景)을 지니고 있는 산으로 유명하다.

  먼저, 속리산은 구봉산, 속리산, 소금강산, 광명산, 지명산, 이지산, 형제산, 자하산 등 8개의 이름과

  둘째,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의 8개 봉(峰)이 있고,

  셋째,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의 8대(臺)가 있으며,

  넷째, 내석문, 외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상황석문, 추래석문의 8개 석문(石門),

  다섯째, 속리산의 물줄기는 아홉 구비로 돌고 돌아 흐르는데 여기에 놓아진 다리가 8개이며, 조선 8경의 하나이다.

  법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로 553년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에 진표(眞表)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고려시대 법상종의 중심사찰 역할을 한 곳으로, 1990년에 새로 만들어진 청동미륵대불은 전체 높이가 33m이며, 100여 톤이 넘는

  거대한 청동불상인데 원래 법주사의 중심건물이었던 용화보전이 있던 곳으로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장륙상이 천년간 서있던 자리이다.

  청동미륵대불 맞은편에 있는 오층목탑 팔상전도 법주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 명산에 선정되어 있다.  또한, 울창한 오리숲, 기암괴석이 즐비한 수려한 경관에

  단풍 또한 장관으로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00산 중 10위(2010~11년 2년간 접속통계)에 랭크되어 있다..

○ 산행후기

 2010년 11월에 찾은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찾은 속리산..

 구름이 조금 낀 날씨였지만 아따금 나타나는 파란 하늘과 아름답게 물들어 가을 단풍...

 화북분소에서 오송폭포를 지나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형형색색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문장대에는 인파가 몰려 정상을 꽉 메웠지만 사방으로 트이는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바로 앞 헬기장을 지나 암릉이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며, 건너편 관음봉에서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입구.. 버스는 여기에서 회차를 하고 나서야 한다.. 

 

화북분소 소형 주차장으로 오르는 도로 옆 숲길로 오른다.. 

 

화북분소 주차장의 안내도로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본다..

 

잠시 후 오송폭포 갈림길에서 오송폭포를 찾아간다..

 

높이 15m 폭포로 정자인 오송정이 자리하여 오송폭포라고 불린다.

속리산 신선대에서 발원한 물이 층층의 절벽을 따라 5단 또는 7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천연림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세조가 이곳을 찾았을 때 칡넝쿨이 하늘로 치솟아 왕의 행차를 편하게 하였다는 전설에서 이 일대를 시어동이라고도 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이따금 나타나는 기암괴석..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형형색색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아름답다..

 

오르막은 계속되고..

 

뻗어내리는 암릉을 따라 물들어가는 단풍..

 

문장대에 서다..

 

정상의 암석은 5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규모이며, 이곳 바위틈에 가물 때가 아니면 늘 물이 고여 있는 석천이 있다..

 

관음봉과 운흥리가 내려다보이고.. 

 

관음봉, 묘봉, 상학봉으로 도계를 이루며 서북진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도명산, 낙영산, 칠보산, 군자산의 봉우리들.. 첩첩의 산중.. 

 

북동쪽으로 밤티재를 건너 백악산, 청화산, 대야산, 장성봉,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천왕봉,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이 보이며..

 

5년전 대간길을 따라 새벽에 올라섰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헬기장을 지나 암릉을 따라 밤재로 이어지는 능선은 여전히 영구히 통제되어 있다..

 

문수봉에서 이어지는 칠현제바위 능선.. 

 

문장대에서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며 백두대간 마루금이 속리산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을 지나 형제봉까지 이어진다..

 

문장대(文藏臺)..

원래 큰 암봉이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감추어져 있다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인근의 영봉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가한 문장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잠시 내려서면 갈림길.. 직진하여 천왕봉으로 향한다..

 

가을을 즐기려는 인파로 가득찬 문장대..

 

저 좁은 공간에 가득판 인파..

 

그러나 여전히 쉴새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신선대, 그리고 멀리 천왕봉..

 

흘러내린 지능선..

 

잠시 점심식사를 하며 쉬어간다..

 

신선대와 신선대휴게소가 바라보인다..

 

암봉을 당겨본다..

 

곳곳에 기암..

 

신선대휴게소에서 바라본 청법대와 지능선..

 

청법대(聽法臺)는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 

 

청법대는 부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 봉우리는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선대(神仙臺)..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외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서 백학이 춤추는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이었다. 고승이 황급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그의 눈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부르고 있다..

 

가는 길에 암봉에 올라 뒤돌아본 신선대..

 

온통 바위 능선..

 

비로봉과 입석대가 바라보인다.

 

건너편으로는 도장산 능선..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난다..

 

여기에도 기암괴석..

 

거대한 입석..

 

천왕봉이 눈압에 들어온다..

 

갖가지 형상의 암봉..

 

 

어디를 둘러봐도 진풍경이다.. 

 

천왕석문..

 

거대한 암릉의 석문이다..

 

법주사 갈림길..

 

헬기장이 있는 장각동 갈림길..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속리산의 주봉인 이곳 천왕봉은 한남 금북정맥이 갈리는 지점이며 삼파수이다..

보은군 마로면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금강으로, 보은군 내속리면으로 내려가면 한강으로,

문경시 화북면으로 내리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서쪽으로 뻗어가는 한남금북정맥...

속리산 천왕봉에서 충북의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면서 이어지다가 칠장산에서 끝나면서 다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갈라진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천왕봉에서 갈라져 말티고개, 구봉산, 국사봉, 선두산, 선도산, 상당산성, 좌구산, 칠보산, 보광산, 보현산,

소속리산, 마이산, 황색골산, 걸미고개를 지나 칠장산 3정맥 분기점까지 이어진다..

 

동남방향으로는 백두대간이 형제봉으로 이어간다..

 

법주사로 이어지는 계곡..

 

백두대간 능선, 만수계곡을 따라 비룡저수지, 그리고 구병산 능선..

 

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

 

멀리 관음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문장대에서 관음봉~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능선을 다시한번 보고 내려선다.. 

 

다시 내려선 법주사 갈림길..

 

잡목사이로 바라본 암봉..

 

곳곳에 숨어있는 비경..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상환석문..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어간다..

 

법주사의 산내암자인 상환암(上歡庵)...

 

아름다운 단풍과 삼성각..

 

보은군지에 의하면 720년(성덕왕 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1391년(공양왕 3년)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또, 세조가 복천암을 다녀갈 때 이곳에서 7일 동안 기도하고 선왕 태조의 유적을 추모하는 즐거움이 비할 데 없다 하면서,

이 암자를 상환암이라고 했다는 구전이 있다...

 

6·25전쟁 때 전소되었던 것을 1963년 정면 6칸의 원통보전과 삼성각을, 1968년 요사채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수도처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청담(靑潭) 등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머물렀다.

원통보전의 정면에는 1976년에 건립한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상환암 중창비..

 

세심정 절구.. 13~14세기에 실제로 사용하였다는 절구..

 

세심정 갈림길에서 법주사로..

 

목욕소(沐浴沼)..

세조는 복천암에서 신미(信眉)와 학조(學祖)의 두 고승과 함께 3일 동안 기도를 드린 뒤, 암자에 이르는 길목의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나았으므로 절을 중수하였고, 또 ‘萬年寶曆(만년보력)’이라고 쓴 사각옥판(四角玉板)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세조의 피부병이 곧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나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졌다고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까지 길게 도로를 따라간다..

 

저수지가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그리고 갈대..

 

법주사 템플스테이..

 

타들어가는 가을 향기..

 

법주사 청동미륵불..

법주사의 이미지라 할만큼 법주사 하면 미륵대불을 떠올린다... 

 

높이 8m의 기단 위에 25m 높이, 청동 무게는 160톤에 달하는 미륵대불이 법주사에 자리 잡은 것은 불과 4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미륵대불이 위치한 곳에는 옛날 산호전(珊瑚殿)·산호보광명전(珊瑚普光明殿), 또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이라 불리던 법당이 있었다.

이 법당 안에는 신라시대 진표 스님이 조성한 금색의 미륵장륙상이 있어 오랫동안 법주사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1872년(고종9년)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當百錢) 주조란 명분으로 흥선대원군은 미륵장륙상을 압수하여 녹이고 말았다.

이후 1939년 주지 석상(石霜)스님의 원력과 김영곤(金永坤)거사의 시주에 의해 미륵불 조성불사를 착수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미륵불을 조성한 것은 1964년에 이르러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시주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시멘트로 조성한 불상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외관이 볼썽사납게 변하였다.

1990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지 월탄스님과 사부대중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청동미륵대불과 용화전을 완성하였다...

 

미륵대불 대좌 아래 지하에는 반가사유상을 모신 용화전이 마련되어 있고,

안에는 중앙의 반가사유상을 본존으로 주변에 전시공간을 만들어 절과 산내암자 등에 있던 성보를 전시하고 있다..

 

원통보전(圓通寶殿)..

보물 제9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통보전은 팔상전과 대웅전 사이 중심축의 왼쪽에 자리 잡은 전각이다.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가 다시금 복원하였다...

 

불단에는 목조의 관음보살상과 좌우 남순동자(南巡童子)와 해상용왕(海上龍王)을 봉안하였는데, 관음상의 높이는 2.8m이다.

관음보살상은 얼굴은 원만한 방형으로, 머리에는 중앙에 아미타불의 화불(化佛)있는 화려한 보관을 썼다.

무릎 아래 좌우에는 남순동자(南巡童子)와 해상용왕(海上龍王)을 봉안하였는데, 합장의 자세로 본존상인 관음상을 향하고 있다.

보살상 뒤로는 관음탱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제석천룡탱이 걸려 있다...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신라 성덕왕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팔상전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마당에 있다.

높이 약3.3m의 8각석등으로 두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현태를 취하고 있다.

사자가 디딤한 복련석은 8각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양련석 주위에는 이중으로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법주사 약사전은 원래 20세기초까지는 원통보전 동쪽 정면에 있었는데, 지금의 약사전은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불단에는 약사불 좌상을 독존으로 모시고 뒤에 약사후불탱을 걸었는데 모두 1997년에 조성되었다.

약사불은 좌우에 일광(日光),월광보살(月光菩薩)은 없다.

약사불탱은 약사회상을 묘사한 것으로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춘 약사불 주위로 보살을 비롯한 권속들이 에워싼 군도형식을 취한다..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大雄寶殿)..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 건물로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하였다.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의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타나신 석가모니불상이다..

 

진영각..

고승대덕의 영정을 봉안하는 정면 7칸, 측면 3칸의 전각으로 법주사의 창건주 의신조사를 중심으로 모두 24분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이전에는 선희궁 영당에 진영을 모셨으나 현재 건물을 1990년에 짓고 이안하였다..

 

정면에 석상(石霜)·진하(震河)·탄응(坦應)·법영(法英)·영린(玲璘)·충은(衝恩)·보흔(普欣)·장신(莊信)·함월(函月)·의신(義信)·

태고(太古)·명일(冥一)·지영(智榮)·세홍(世弘)·정준(靜俊)·명찰(明察)·도홍(道弘)·홍민(弘玟)·성인(性印) 등의 19분,

왼쪽 벽에 대원(大圓)·호암(湖岩)·용허(龍虛)대선사의 세 분, 그리고 오른쪽 벽에 선현(亘玄)·태전(太田)대선사 두 분을 모셨다..

 

보물 제1417호인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높이 약 2m, 붉은 화강암의 조각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유례가 드문 형상의 입상으로

인해 봉발석상(奉鉢石像)으로 불린다. 흔히 그 형상으로 미루어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으로 보고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232호로 지정된 법주사 능인전(能仁殿)..

법주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능인전은 국보 제55호인 팔상전,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916호인 원통보전, 충북 유형문화재 제46호인 사천왕문 등과 함께 법주사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로서 보존가치가 높다..

 

안에는 주존인 석가모니불과 연대를 알수 없는 16나한(羅漢)상과 여래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1992년 조성한 신중탱(神衆幀)이 있다.

 

보물 제216호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추래암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으로서 둥근 얼굴과 감은 듯 뜬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 추상성을 띠고 있다.

의자가 된 연봉은 연꽃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발아래 지면에는 절반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전체 높이 6.18m, 연화대좌석 높이 2.84m, 평면 연화석 폭 2.27m이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70호 법주사 석조.. 우리나라 석조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능인전 북쪽에 위치하며, 720년(성덕왕 19)에 조성되어 법주사가 번창하여 3천여 명의 승려가 모여 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30㎝, 길이 446㎝, 너비 240㎝, 두께 21㎝의 대형 화강암 석조로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연지(石蓮池)..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다. 원래 법주사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그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으로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1.95m, 둘레6.65m의 구품 연화장으로 환희원만 영원무궁 상품상생 광도중생 무량수의 감로천이다..

 

보물 제1413호인 철확(鐵鑊 쇠솥)..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며 금강문을 들어서 오른쪽에 있다.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의 거대한 이 쇠솥은 신도 3만 명이 먹을 장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기도 하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였다고도 전해오고 있다.

원래는 조사각 뒤편의 석옹(石瓮 돌도가니)이 있는 곳에서 시냇가 쪽으로 3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 자리로 옮겨진 것이다.. 

 

당간지주(幢竿支柱)

금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있는 당간지주는 간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있는데 흔히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고려 초인 1006년(목종 7)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 높이는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 대원군의 명령으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기 위해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다.

이 와중에 당시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철당간은 녹여졌던 것이다.

현재 당간지주는 1910년 무렵 22m 높이로 다시 만들었으며 1972년에 보수하였다..

 

비각 안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67호인 속리산 사실기비(事實記碑)..

높이 1.63m, 너비 0.65m로 1666년(현종 7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이야기를 짓고 명필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써서 세웠다.

내용은 속리산은 산세가 아름다워 소금강산이라 불리워 중국인들도 보기 원하는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했을 때

거북바위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 등을 기록하여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당시의 민간신앙과 전설을 비판하고 있다.

충북유형문화재 제71호인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

법주사를 크게 중창한 벽암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664년(현종 5년)에 세워졌으며, 높이 210㎝, 너비 110㎝, 두께 35㎝이다.

빗돌을 덮은 머릿돌은 우진각지붕으로 이루어졌으며, 비문은 정두경(鄭斗卿)이 짓고 이우가 쓰고 이정(李禎)이 새겼다..

 

일주문 정면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뒷쪽에는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나서 주차장까지는 1km 이상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법주사 상가지역을 지나 속리산터미널 뒤편에 버스가 세워져 있다...

 

1시간여 버스를 타고 청원IC 인근의 청주본가에서 뒤풀이를 한다.. 

 

산행후의 뜨거운 갈비탕이 일품이다..

 

이동원 - 가을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