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2. 하의3도 토지항쟁기념비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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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2. 하의3도 토지항쟁기념비와 기념관..

by 정산 돌구름 2013. 8. 7.
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2. 하의3도 토지항쟁기념비와 기념관 ..

 

평화의 섬 하의도, 하의3도 토지항쟁기념비..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는 3백여년전 이조 선조때부터 시작된다..

선조는 맏딸 정명공주의 불치병을 치료한 홍계원을 부마로 삼고 하의3도 (하의,상태, 하태)를 그에게 무토사패로 준다.

그뒤 사패기간이 끝난 후에도 세도를 부리던 풍산 홍계원의 후손들이 세금을 징수해 가자 이중결세에 시달리던 하의도 사람들은

윤세민, 김호건 등을 한양에 보내 직소한다.

그후 1908년 일제가 궁실재산을 조사하면서 하의도 땅문제를 파악했으나 홍씨들은 일본인들과 결탁하여 계속 소작료를 거둬 갔으며,

하의도 사람들은 홍씨쪽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그러나, 홍씨쪽 사람들은 토지를 다른사람에게 팔아 결국 그땅은 일본인의 손에 팔아 넘어간다. 그뒤 토지를 다른 일본인에게 팔자

일본 오사카에 있던 하의도 사람들이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일본 농민조합과 함께 토지 소유권 소송을 벌이다가 광복을 맞는다.

해방 후 1946년 신한공사가 소작료를 요구하고 나서자 하의도 사람들은 하의지서를 파괴하는 등 투쟁하다가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를 내게되며, 1949년 국회진상 조사끝에 유상반환결의안이 국회를 통과, 330년에 걸친 하의도 농민운동은 막을 내렸다.

이에 항쟁기간(특히 일제시대) 중 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웅곡선착장 부근에 토지항쟁기념비가 세워졌다.

○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조선 중기부터 해방까지 360여년간 하의3도 주민들의 목숨을 건 토지탈환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후손들에게 생생한 역사 교육장으로

제공코자 건립하였으며, 큰 마을 대리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앞은 넓은 들녘이 있어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위 치 : 하의면 대리 35-9 

 - 규 모 : 부지 17,699㎡(5,350평), 건물 6,121㎡(185평)

 - 전시실 : 612㎡ / 조 형 물 : 1식 / 하의소작쟁의기념비 : 5기 / 기 념 탑 : 11기

○ 하의소작쟁의 기념비

일제시대 하의3도 소작쟁의 기간중 토지탈환을 위해 공을 세운 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2년 대리 마을앞 들녘에 세웠다가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준공후 현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영세 불망비 : 3기 - 고노오도라노스케(木尾虎之助 일본인변호사), 남만웅(변호사 사무원), 김동우(당시 지도군수)

○ 기타 공적비 : 2기 - 권재찬(주민 구휼), 문응두(대리동제 제수비 마련)

※ 이호준 영세불망비 : 고종대 일토양세(一土兩稅)를 벗어나게 해준 당시(1870년) 전라도 관찰사 이호준의 공적을 기르기 위해 

 1874년 지금의 신의면 상태서리 닭머리 부두에 세웠다..

하의3도 토지항쟁기념비...

 

2013년 8월 6일, 하의도 방문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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