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1. 김대중대통령생가와 덕봉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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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1. 김대중대통령생가와 덕봉강당..

by 정산 돌구름 2013. 8. 7.
평화의 섬 신안 하의도(荷衣島) - 1. 김대중대통령 생가와 덕봉강당..

 

평화의 섬 하의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57.9㎞ 거리에 위치하며, 동쪽과 남쪽에 상태도(上苔島)·하태도(下苔島)가 인접해 있다.

서쪽에 능산도와 신도, 북쪽에 저도 등의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원래는 여러 섬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간척 공사로 연결되었다.

남쪽에 위치한 망매산(望梅山, 150m)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지이며, 넓은 논이 형성되어 있다.

해안은 사빈해안이 대부분이고 동쪽해안에 염전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취락은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하였고 주변으로는 넓은 면적의 논밭이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쌀·보리·콩·고구마·고추·마늘·파 등이 주로 생산되며 부근수역에서는 멸치와 장어를 어획한다.

특산물로 낙지·전통식초·유자 등이 있다.

태도·하태도를 마주보는 해변에는 많은 염전이 조성되었으며 김·미역·톳을 양식하여 높은 소득을 올린다.

조선시대 유학자 초암(草菴) 김연(金鍊)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덕봉강당(德鳳講堂)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생가가 남아 있으며,

1623년부터 1950년대까지 300년 넘게 이어진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토지항쟁비군이 있다.

목포시에서 1일 2∼5회 정기여객선을 운항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1380년(우왕6년) 나주나씨(羅氏)가 처음으로 살았다고 전한다.

신라 말기 풍수지리설에 정통한 도사가 전국의 지형을 답사하던 중 이 섬에 들르게 되어 지형을 보니 형태가 연화만개 형태이므로

연꽃 '하(荷)'와 음양설에 의거 음산(낮고 평탄함)하다 하여 옷 '의(衣)'(여성을 뜻함)를 써서 '하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사지리지』에 '하아어도(下阿於島)'로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서』(나주)에 하의도(荷衣島)에 관하여 "둘레는 30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60호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에 섬의 인구와 동리가 수록되어 있으며, 『호남읍지』에는 하의도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 지명과 함께 위치가 묘사되어 있다..

 

 

2013년 8월 6일 평화의 섬 하의도를 찾았다..

목포에서 아침 7시10분에 출발하는 엔젤호는 하의도와 인근 상태도를 하루 2회 운항하는데, 하의도까지는 1시간10여분이 소요된다..

 

목포항을 빠져나간다..

 

다도해 섬사이를 지나..

 

 

 

 

 

 

 

하의도 면소재인 웅곡선착장에 도착..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대통령이 태어난 곳..

 

하의고등학교..

 

하의면사무소..

 

면사무소 내의 아름다운 향나무들..

 

김대중대통령이 어려서 공부하였다는 덕봉강당이 있는 대리..

 

후광리 김대중대통령 생가..

 

생가복원 풍경..

 

관리실, 추모관, 생가본체와 바깥채가 줄지어 서있다..

 

관리실, 그 옆으로 추모관..

 

추모관..

 

전시 판매점..

 

추모관...

 

영정..

 

생가 복원 기념석..

 

본채, 바깥채, 측간..

 

전시물..

 

생가 본체..

 

본체와 바깥채..

 

바깥채..

 

본체 내부..

 

측간..

 

우물과 장독대...

 

장독대...

 

본체 후면..

 

본체 내부..

 

부엌..

 

본체..

 

바깥채 내부..

 

김대중대통령의 변천사..

 

 

 

원생가터..

 

 

원생가터애서 바라본 풍경..

 

 

 

바로 앞의 천일염 전시장..

 

 

덕봉강당(德鳳講堂)..

하의면 출신 유학자 초암 김연은 지조 높은 대유학자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서당을 지어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선생은 당시 신간서적이라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돌아다니면서 2,000여권의 고서(필사본)를 모았으며,

항상 정직하게 살아 갈 것을 강조하고 공자의 예절을 높이 숭상했다고 한다.

당시 초암의 높은 학문을 배우기 위해 나주, 신안의 모든 지역에서 수천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후 제자들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어 1965년 덕봉강당을 지어 유물인 성리대전 등 166책, 1435여권의 책을 보관하고 있으나,

고서적 등 초암선생의 유물을 과학적으로 보관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을 2001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