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도(都草島)는 신안군에 속한 섬으로 우리나라 섬 중 열세번째 크기로 면적은 41.94㎢, 해안선길이 42㎞이다.
신라시대에 당나라와의 무역기항지로서 당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당나라의 수도와 비슷한 지형이면서 초목이 무성하다 하여
‘도초(都草)’라 하였다고 한다.
혹은 부근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라 도치도라 불렀다는 설도 있고, 섬의 형태가 고슴도치처럼 생겨 도치를 도초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귀양지로 알려졌으며, 흑산도와 중국 장쑤성(江蘇省)을 잇는 상업 통로였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아차산현에, 고려시대에는 나주목에, 조선시대에는 해남군·나주군·완도군·지도군·진도군 등에 속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무안군에 속하였다가 1969년 신안군 창설시 신안군에 편입되었으며, 1981년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고점은 금성산(219m)이며, 남쪽으로는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북쪽과 서쪽은 구릉지와 평야가 발달하였다.
중부지역 수항리 일대에 펼쳐진 고란평야는 신안군 도서 중에서 가장 넓은 들을 이루고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복잡하며, 남서쪽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농산물로 쌀·보리·고구마 등과 특산물로 담배가 생산된다.
근해 일대에서는 갈치·농어·참조기·새우·우럭·붕장어·가자미 등이 잡히고, 김 양식업이 이루어진다.
유적으로는 고란리 장군상, 김권일 효행비, 도초도 초가집 등과 만년사·한산사·성각사·만덕사 등의 사찰이 있다.
남쪽 해안 만입부에는 시목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시목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다.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며 주변에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시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만큼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1996년 9월에 비금도와의 사이에 연도교인 서남문대교가 개통되어 비금리 및 연평해수욕장과 연계되었다.
우이도(牛耳島)는
섬의 서쪽 양단에 두개의 반도가 돌출하여, 마치 소의 귀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우이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소구섬, 소구 또는 우개도라고도 한다.
2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우이군도의 주섬으로서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43㎞, 도초도에서 남서쪽으로 8㎞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부속도서로 동소우이도(東小牛耳島),서소우이도,화도(花島),항도(項島),승도(僧島),송도(松島),가도(駕島),어락도(漁洛島) 등이 있다.
북동쪽에 도초도(都草島), 서쪽에 흑산도(黑山島), 동쪽에 하의도(荷衣島)가 둘러싸고 있다. 북쪽에는 긴 사빈해안이 발달하고 있고,
해안 곳곳의 돌출부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으며, 특히 서쪽해안은 절벽과 기암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섬의 중앙에는 상산(上山 359m)이 있어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농지가 거의 없어 농업활동이 미미하며, 주요농산물로는 보리·콩·마늘·고추 등이 생산된다.
흑염소 사육과 어업이 주를 이루고 꽃게, 새우, 돌김, 자연산 미역 등이 특산물로 꼽힌다.
부근수역은 조기의 월동수역이고, 고등어·전갱이·갈치·장어 등이 많이 회유하는 좋은 어장이다.
섬 전체가 산악지대로서 취락의 분포는 해안평지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450여 년전 파평윤씨가 들어와 현재 그 후손이 대초리마을에 남아 맥을 지키고 있다.
서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북쪽 해안에는 길게 사빈(砂濱)이 형성되었다.
돈목리의 돈목해수욕장 오른쪽에 있는 높이 80m의 모래언덕은 우이도만의 특별한 볼거리이다.
유적으로는 밀양박씨 열녀각(密陽朴氏烈女閣)과 우이산성(牛耳山城)이 있으며, 엉터리 풍수(風水) 전설, 최치원과 상산봉(上山峯)
바둑판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분교 2개교가 있고, 1971년 6월 우이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도초도에서 1일 2회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호구총수』에 섬의 인구와 동리가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진도군 흑산면에 딸린 섬이었으나, 1896년 지도군 흑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진리·성촌·비두리·저두리·소우이도를 합하여 우의도라 해서 무안군 흑산면에 편입되면다.
1962년 도초면에 편입되고 1969년 신안군에 이속되었다..
2013년 8월 1일, 아침부터 잔뜩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다..
07:50분 출발하는 쾌속선을 타기 위해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휴가철이라서 평일인데도 마치 주말인것처럼 붐빈다..
07:50 홍도를 향해 출발하는 남해퀸호에 승선한다..
50여분만에 비금항에 도착한다.. 격월제로 도초와 비금항을 경유한다.. 7월에는 도초항이었으나 8월에는 비금항..
도초와 비금간을 이어주는 서남문대교..
차를 타고 서남문대교를 건너 도초선착장에서 3톤규모의 선외기를 타고 우이도로 향한다..
선착장의 풍경..
도초 열목해안선..
도초의 해안선이 길게 이어진다..
안개속에 경치도 옆을 지난다..
또 다른 모습의 경치도..
안개속에 우이도 옆 가도가 다가온다..
우이도선착장...
선착장에서 바라본 우이도..
우이도 진리의 풍경...
돌담위의 담쟁이 덩쿨..
예전의 분교장..
아름다운 민박집..
상산봉이 바라보인다..
우이도 경찰치안센터와 민박집..
섬마을 풍경..
상원김씨 열녀지각..
안에는 순정열녀비가 새겨져있다..
우이도1구 마을표지석..
진리삼거리..
돌탑..
국립공원안내도..
우이도항의 풍경..
아름다운 소나무 분재..
신안 밀양박씨열녀각(密陽朴氏烈女閣)..
조선시대 열녀비각으로 박씨는 예비신랑 김씨가 혼인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자 그와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시부모님을 정성으로 모셨다.
1907년 박씨가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김씨 문중에서 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열녀각을 세웠다고 한다..
우이도 진리 옛 선창..
영조21년(1745년) 3월 만든 시설로 배를 닿는 포구시설과 방파제, 그리고 배를 수리하고 짓는 선소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이선창이라 불렀던 선창의 현재 규모는 긴쪽 63.3m, 높이 2~3m, 폭 1.6m이며, 형태는 산 경사면에 반하여 타원형을 취하고 있다..
선창은 배만 정박했던 곳이 아니라 우이도 인근 야산에서 굵은 소나무를 베어 배를 건조하였으며, 방파제의 역할도 하여 태풍 때 마을
배들과 외지의 배들도 피항하였다고 전하며, 선창안 중앙에는 계주석(비리목)이 설치되어 배를 줄로 묶어 두도록 하였다...
우이도 선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옛 선창이며, 형태가 잘 남아있는 유일한 포구시설로,
섬사람들의 생활문화자료 해운관련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이도 선창중건비.
선창 위 북쪽으로 약 5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선창중건비가 세워져 있는데, 규모는 높이 96cm, 폭 46.8cm, 두께 11.2cm이다.
비문에 따르면 1745년3월 마을 주민 김하승 등 21명이 시주하고 최두산 등 3명의 화주의 일을 맡아 비를 세웠다..
그 옆으로 선창공적비각자나주우이선창비(船倉功績碑刻字羅州牛耳船倉碑)가 새롭게 서있다..
선창에서 바라본 진리마을과 상산(上山 359m)..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최치원선생과 관련하여 상서로운 산이라 하여 상산(祥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제주도에서 중국으로 유람가던 중에 우이도 상산에 도착했다.
때마침 우이도에는 한발이 극심하였는데 고 운선생을 본 주민들은 가뭄을 물리치고 비를 내려주도록 간청했다.
고운은 즉시 북해 용왕을 불러서 가뭄을 해결하라고 했으나 옥황상제 명령이 아니면 용왕의 마음대로 비를 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용왕의 말을 듣고 고운은 화를 벌컥 내면서 속히 비를 내리라고 호령했다.
용왕은 하는 수 없이 고운 선생의 명령대로 비를 내려 가뭄을 해결했다.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는 뒤늦게 보고를 받고 용왕을 잡아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고운은 용왕을 도마뱀으로 만들어 선생의 무릎에 감추어 죽음을 면하게 했다.
그후 고운 선생은 중국으로 떠났는데 선생이 머물면서 상산봉 제2봉에 있는 바위에다 바둑판을 만들어 바둑을 두면서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지금도 바둑판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파제를 빠져나와 우이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이도 해변..
예전에는 흑염소가 많았다고 하며, 지금도 흑염소들이 보인다..
해안선을 따라서..
멀리 띠밭너머해변이 바라보인다..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성촌해변..
아름다운 천혜의 섬이다..
무인도...
파도가 거세진다..
모래언덕이 바라보인다..
선명한 모래와 완만한 곡선의 구릉.. 풍성사구..
한때 자연이 빚은 최고의 조각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자연이 빚은 최고의 조각품이란 찬사를 받았던 동양 최대의 우이도 모래언덕(砂丘)의 비경이 황홀경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폭 100m, 높이는 80m에 달했다고 하나 현재 이곳 풍성사구의 폭은 67m, 높이는 50m 정도...
사면 전체가 은빛으로 빛나던 모래 언덕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 잡초와 나무들이 늘어가면서 결국은 절반 이상 점령당했다고 한다..
방파제..
우이도해수욕장..
백사장 길이 1.5km, 너비 300여m로 돈목부락에 있어 돈목해수욕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사 30~40˚, 높이 80~90m, 너비 50m의 모래언덕 2개가 백사장 옆에 있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파도가 잔잔하며 백사장에서 꽃조개를 따거나 갯바위에서 농어·도미·우럭·장어 등을 잡을 수 있어 피서지로 적합..
하지만 우이도에는 숙박시설이 없어 민박이나 야영을 해야 한다...
선상에서 돈목해수욕장과 사구를 보고 되돌아간다..
경치가 좋아 이름하였다는 경치도..
예전에는 유인도였으나 지금은 무인도..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암괴석..
그 속에서도 꽃들이 피어있다..
물방울동굴..
도초도의 서쪽 해안..
도초 서쪽 해안의 문바위가 다가온다..
드디어 도초선착장..
비금선착장에서 쾌속선을 기다리며..
도초도와 비금도를 이웃처럼 만든 937m 길이의 서남문대교...
1996년 완공된 서남문대교는 아치형의 연도교로 흑산도와 홍도로 가는 여객선은 모두 이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남문대교는 내해와 큰바다의 경계이기도 하다..
12시10분 여객선이지만 12시30여분이 다되어 도착한다..
2008년7월14일 등록문화재 제379호로 지정된 해남 목포구등대(木浦口燈臺)..
일본이 본격적인 대륙진출을 위한 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1908년 목포항의 관문인 화원반도 끝자락에 축조했다.
건립 당시는 높이 7.2m의 콘크리트로 세운 흰색 원형 무인등대로 운영되다가 1964년 유인등대로 바뀌었다.
대한제국기의 대표적인 등대이자 전체적인 비례가 조화되고 외형이 아름다워 이후 우리나라 등대건축의 기본적인 전형이 된 등대이다.
또한, 거푸집을 짜서 시공하는 등 콘크리트 축조의 근대 건축기술이 집약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등대 건축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마주보는 달리도 사이의 너비 700m 남짓 되는 협수로를 비추는 불빛으로 뱃사람들에게 육지로 통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
2003년 새로운 목포구등대가 설치된 이후 사용되지 않는다..
고하도 용머리와 목포대교..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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