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기행] 편안하고 풍성한 땅 ’ 김환기 고향 안좌도(安佐島), 그리고 반월도(半月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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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기행] 편안하고 풍성한 땅 ’ 김환기 고향 안좌도(安佐島), 그리고 반월도(半月島)..

by 정산 돌구름 2013. 7. 24.
편안하고 풍성한 땅, 신안 안좌도(安佐島), 그리고 반월도(半月島)..

 

안좌도(安佐島)는 목포에서 서쪽으로 20.8㎞지점에 있으며, 북쪽에 팔금도가 있다.

섬의 서북쪽에는 봉산(182m), 남쪽에는 대산(149m)과 후동산(151m) 등의 산지가 발달, 암석은 주로 산성화산암류이다.

동쪽 해안선을 따라 연안류의 퇴적작용과 간척사업에 의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비교적 복잡하며,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간조 시에 부속 섬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주위에는 상사치도, 하사치도, 내호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북쪽에 있는 팔금도와는 안좌팔금 연도교로 이어져 있고, 부소도와 내호도와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구전에 따르면 마씨와 차씨가 기좌도 한운리에 처음 들어와 살았으며, 그뒤 조선시대인 1690년(숙종 16) 무렵 김해 김씨가 해남에서

들어와 각 마을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원래 안창도와 기좌도 두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연결되어 두 섬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서 안좌도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사지리지』(나주)에 장산현의 '안창도'와 압해군의 '기좌도'가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여지도서』에 안창도에 관해 "둘레는 20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189호이다."고 적고 있으며,

『호남읍지』에서도 안창도가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안장도와 기좌도가 분리되어 묘사되었다.

안좌도 대리(大里) 뒷산의 음바위(陰石)와 양석(陽石) 전설이 전해 온다. 마을 부녀자들이 이 음바위를 쳐다보면 바람을 피워 대책을

숙의한 끝에 바로 앞에다 양바위를 깎아 세워 가정파탄을 신통하게 막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요 식생으로는 북가시나무·동백나무·사철나무·후박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경지는 논 960㏊, 밭 1,220㏊, 임야 1,679㏊이다.

주민의 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쌀·보리 이외에 고구마·콩·마늘·참깨 등이 많이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숭어·멸치·갈치·낙지·문어·참조기 등이 잡히며, 굴 양식과 제염업이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4개교, 분교 7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으며, 면사무소·경찰지소·한국전력공사출장소·보건지소·

우체국·무선전화중계소 등이 있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6회 운항된다.

문화유적으로는 신안 김환기 가옥(전남 기념물 제146호), 방월리 지석묘(문화재자료 제117호)가 있다.

구비전승으로는 좃바위, 벼락바위 전설과 사촌형 노래, 모내기 노래 등의 민요가 전해지고, 아직 당제를 모시고 있는 마을이 많다. 

상고시대에는 마한에, 삼국시대에는 백제 물아부에,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1895년(고종 32)에 지도군에,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지도군 폐지로 무안군에 속하였다가 1969년 무안군에서 분리되어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반월모양의 섬, 반월도(半月島)는 면적 2.05㎢, 해안선길이 6.7km, 목포항에서 서쪽으로 32㎞, 안좌도에서 남쪽으로 10km에 있다.

섬 모양이 어느 곳에서 보아도 반달모양으로 보여 반월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300여년전 처음으로 이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한다.

최고점은 견산(202m)이며, 경사가 완만하다. 해안은 사질해안이 대부분이고, 동쪽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하여, 주요농산물은 보리이고, 쌀·콩·마늘·참깨·고추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잡어가 잡히며, 자연산 돌김이 난다. 취락은 남쪽 해안가 반월마을과 북쪽 해안가 토촌마을에 분포한다.

초등 분교 1개교가 있으며, 경찰지서, 보건진료소 각 1개소와 수산업협동조합 어촌계가 있다.

상여소리가 구전되며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풍어와 무사를 위해 당제를 지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27호이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지도군 기좌면 지역으로 1914년 퇴촌 마을을 합하여 반월리라 하여 무안군 기좌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안좌면에 편입되고, 1969년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 속한 반월도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1450년 전라도 나주목 영광군에 현입되어 있었고 그 당시 반월도에 암수말 40필이 정부에서 관리 시키며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 13년(1789년) 안좌면 인구 통계와 함께 반월도에 거주했던 호수는 31가구에 남자 46명 여자 31명 총 77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1913년12월29일(부령 제111호) 공포로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무안군 기좌면에 속해있다.

면소재지로부터 남으로 약 6Km 떨어진 섬으로 동으로는 박지도와, 서로는 우목도가 이웃해 있고 섬의 오른쪽은 어깨산(견산)이,

왼쪽은 큰산(대덕산)이 자리하고 있다. 

안마을은 인동 밀양 박씨 전주 이씨가 살고 퇴촌 마을은 김해김씨가 살고 있으며, 반월보건진료소, 반월분교, 새벽교회 등이 있다..

 

2013년 7월 23일, 11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 신안 압해도 송공리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 한켠의 신안수협 송공위판장에는 한창 경매중..

 

커다란 민어가 경매를 기다린다..

 

가야할 철부도선..

 

바로 앞의 역도..

 

송공항을 떠난다..

 

전설에 의하면 역도라는 섬은 송공리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하루는 검은 구름이 일고 햇빛이 사라지더니 천지를 진동하며 우뢰와 같은

큰소리로 울부짖는 사람의 목소리가 압해도 전역에 메아리쳤고, 이어 말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이때 온 땅이 진동하고 바다에서는 물결이 솟구쳐 역도가 압해도에서 갈라졌다는 것이다.

사면이 조용해지자 위풍당당한 송장군이 커다란 돌지팡이와 활, 창을 들고 송공산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송공산 끝에 모래사장이 1km쯤 펼쳐지고 커다란 굴이 하나 있는데 이 굴이 송장군이 나온 굴이라 전한다.

굴에서 200m 떨어진 곳에 무인도에서 송장군의 역마가 나왔다하여 역도(驛島)라 하였다 한다.  

송장군은 역도에서 나온 역마를 타고 송공산에서 8마일쯤되는 매화도의 산을 왕래하며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것이다.

송공(宋孔)리의 송공은 '송장군이 나온 구멍'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법 물결이 거세다..

 

압해면 송공리와 암태면 오도를 연결하는 새천년대교의 공사가 한창이며 그 뒤로 당사도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매화도..

 

당사도...

 

뒤돌아본 압해도.. 송공산이 솟아있고 새천년대교의 교각이 공사중이다..

 

공사중인 대교..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있다..

 

줄지어 서있는 조그만 무인도들..

 

당사도 앞의 초란도(草蘭島)

암태도의 북동쪽, 당사도와는 1km 가량의 수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데, 섬 전체가 풀로 뒤덮여 있어 초란도라고 하였다고 한다...

 

암태면의 부속섬인 당사도(唐沙島)..

 

초란도·삼발도·삼도·항도 등의 부속도서가 있으며, 섬에 당이 두개 있고 모래가 많아 당사도라 부른다고 한다.

약 360년 전 나주 임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지도군 선도면에 속했으나, 1914년 마진도, 초란도를 합하여 무안군 선도면 당사리라 하였다가 다시 암태면에 편입되었다..

 

무인도들..

 

암태도가 다가온다..

 

암태도 오도선착장 풍경...

 

항일 농민항쟁 의기 서린 암태도(巖泰島)..

북쪽의 북강진은 은암대교로 자은도와, 남쪽의 남강진은 중앙대교로 팔금도와 연결되었다.

원래는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토사의 퇴적으로 하나의 섬으로 연결되었으며, 추포도 등도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쪽은 저산성산지이고, 남쪽에 추봉(159m), 동쪽에 박달산(197m), 서쪽에는 승봉산(356m) 등 산지가 발달하고,

중앙부는 평지로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된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암태도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600여년전 서씨가 처음 입도하였다 한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산마루 가까이 있는 모래주머니모양의 큰바위 아래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이자겸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에는 암태도소작쟁의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암태도 오도선착장..

 

안좌도로 이동, 우럭지리로 점심식사를 한다..

 

반월도를 가기 위해 두리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 건너편의 박지도(朴只島)... 좌우로는 천사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반월도..

 

두리~박지간 다리가 바라보인다..

 

당겨본 모습..

 

아름다운 풍경.. 

 

두리 선착장에서 반월도에 가려면 하루 8번의 도선이 안좌도 본섬과 반월도, 박지도 사이를 오간다.

군에서 제공한 나룻배로 주민들은 공짜이고, 반월도를 찾는 이용객은 편도 1000원씩 받고 교통수단으로 이용된다.

신안군이 7천500만원을 들여 건조한 이 도선은 4.36t의 최신형 항해장비를 갖춘 FRP선박으로 2012년8월3일 운항되었다..

 

뒤돌아본 두리선착장..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천사의 다리..

 

반월도에 도착한다.. 

 

며칠 전에 신안군에서 제공한 마을 공영버스..

 

 

청정해역으로 김, 낙지, 굴, 전복, 아나고, 숭어, 미역, 다시마, 소라, 쭈꾸미 등 각양각색의 풍부한 해산물이 사시사철 넘쳐나고..

살아있는 갯벌등은 각종 어류의 산란 장소로써 먹이사슬의 보고이다..

 

산에는 각종 약재와 산나물이 넘쳐나고 특히 180ha에 이르는 신안제일의 잘피(잔줄) 군락지..

반월도 마을 뒷편 젖과 물이 흐르는 지명으로 젖골 바위 위 골짜기로 그곳에 가면 여자의 성기처럼 생긴 바위 모양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씹새미 고랑이라는 샘터가 하나 있다...

그곳 모양이 꼭 여자의 생식기처럼 생겨서 씹새미고랑이라는 곳으로 마을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명으로 불리는 곳..

그곳에 가면 자연의 참 신기하고 오묘하구나할 정도로 지형이 여자 생식기처럼 생겼다.

지금은 나무숲에 우거져 옛날처럼 아무때나 가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서 가볼수가 없다.

군의 지원속에 등산로와 연계시켜 씹새미 고랑의 우물맛을 보실수 있도록 길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어린애가 안생기던 마을 새색시가 있었는데 이 물을 먹고 임신이 되어 아들 딸 잘 낳았다는 옛날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삼백초(三白草)..

 

마을이장집의 정원에서..

 

후박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멀리 장산도..

 

독살로 연결된 푸른섬..

 

안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1980년 초까지 매년 정월 보름날에 마을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올렸던 당이 있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1달전부터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마을사람 세분을 선정하여 굳은 일이나 부정하는 곳에는 출입을

금지시켰고 아침, 저녁으로 당열 담샘에서 물을 떠다 목욕을 하며 몸을 관리 하였었다.

당주위에는 붉은 황토를 군데군데 부어 놓았고 볏짚으로 왼쪽으로 새끼를 꼬아 하얀 참 종이를 잘라 새끼줄에 채워 당 주변에 새끼줄로

쳐서 부정타고 몸과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통제시켰다.

안쪽에는 재를 지내는 보양안이라는 돌주변에 새끼줄과 황루로 신선한 곳이라는 표시를 해 상당한 사람이나 돼지, 개, 닭 짐승 잡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신성한 곳임을 알려 반월도를 찾는이나 마을분들도 자기 몸이 조금이라도 불결하다는 사람은 당위길로 오지 않고

당 밑 강변길로 마을을 다녔었다.

마을 사는 주민들 한가정에 소지(소원을 적어 불에 태워 보낼 종이)명목으로 할당되어 걷어 경비를 충당하였다.

소지 내용으로는 군대간 아들 무사귀환, 질병 및 무병장수, 풍녀, 풍어기원 각 가정에서 절실히 필요한 소원성취를 비는 내용으로

보양안에는 당 가운데 나무아래 재단 앞에서 순서에 따라 잔을 올리고 절차대로 제를 올린후 마을에서 걷어온 소지를 태워 하늘로

올라가면 모든일이 잘 풀린다는 일념으로 제를 지냈었다.

소지를 태운 당사자 한테 일찍가서 아침이면 올해의 운수가 어떻더냐고 물어보고 한해의 점꽤를 알고 난후 제를 지낸 음식을 마을사람

전체가 골고루 나누어 먹고 보름날 아침이면 걸궁(농악)을 시작으로 가가호호마다 건강과 평안 풍년풍어를 기원하며 소원을 빌었다.

재물로는 숫꿩을 이용하였다. 그 방법이 그 당시에도 반월도 주민의 단결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제물용으로 꿩 잡는 방법은 남녀 주민

전체가 나와서 남자의 일부는 장도(장섬), 청도(청섬)로 가고, 부녀자와 노약자들은 본도에 줄을 길게 세워서 장도와 청도에 들어간

청년들이 꿩몰이를 하며 소리를 지르면 꿩이 청도에서 본도를 날아갈때 본도에서 소리를 지르며 함성이 터져 나오면 당황한 꿩이 장도로

갈때면 장도에서 소리를 지르고 손에 손에 들고 있는 깃발 및 나무가지를 흔들면 당황한 꿩이 왔다갔다 지쳐서 섬 사이 뻘에 떨어져

날아가 물과 뻘에 젖어 날지 못하고 머리를 뺄때 처박고 허우적 대는 꿩을 잡아서 재물로 썼었다..

 

담 주변에는 군에서 지정한 400여년된 수령의 드릅나무와 팽나무의 위용속에 왕매미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반월도 천사공원..

 

건너편 박지도로 이어지는 천사의 다리..

 

박지도까지 이어지는..

 

반월~박지 구간 915m의 목교가 시작된다..

 

 

 

멀리 장산도..

 

박지도..

 

 

중간의 쉼터..

 

 

뒤돌아본 반월도..

 

박지도에서 바라본 지나온 다리..

 

박지도에서 두리로 이어지는 목교..

 

박지도(朴只島)..

최고점 130m의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해안은 대부분 암석 해안이고,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썰물 때는 기좌도, 안좌도, 반월도 등과 연결된다..

 

남쪽 해안 일부는 방조제를 축조해 경작지로 이용하고,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 반포 마을과 북쪽 해안의 문서구지에 주로 분포한다.

북쪽의 기좌도(箕佐島), 서쪽의 반월도(半月島), 남쪽의 부소도(扶所島)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둘레는 8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25호이다."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섬이 묘사되어 있다.. 

 

약 250년 전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 섬 이름도 그의 성을 따라 '박지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섬의 지형이 '박' 모양이라 하여 '바기섬' 또는 '배기섬'이라고도 한다.

신세타령 민요가 전해오고 마을 뒷산 정상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 때 당제를 지낸다.

초등학교 분교 1개교가 있었으나 1991년 폐교되었다...

 

박지~두리 구간은 547m..

 

 

 

 

두리에서 바라본 천사의 다리..

 

두리에서..

 

두리선착장, 그리고 반월도..

 

안좌면소재지의 천주교성당..

 

안좌면사무소..

 

읍동선착장의 안좌 표지석...

 

 

 

화장실의 김환기화백의 그림..

 

선상에서 바라본 풍경..

 

안좌와 팔금을 이어주는 신안1교...

 

 

부둣가의 풍경..

 

안좌~목포북항을 잇는 농협 철부도선..

 

안좌 읍동 선착장을 떠나며..

 

멀어져가는 선착장...

 

완좌~팔금을 잇는 신안1교..

 

순수한 자연, 인정넘치는 섬, 팔금도(八禽島)..

북쪽에 자은도와 암태도, 남쪽에 안좌도, 서쪽에 비금도, 동북쪽에 압해도가 이웃하고 있다.

원래 작은 섬들 사이에 있던 간석지가 간척되어 하나의 섬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평지가 넓고 벼농사가 성하다.

중앙에 금당산(130m)이, 서쪽에 채일봉(159m)이 솟아 있으며, 해안은 사빈해안이 대부분이고 북쪽과 남쪽 해안에 염전이 많다. 

매도(梅島)·거문도(巨文島)·거사도(擧沙島)·백계도(白鷄島)·원산도(元山島)·매실도(梅實島)·일금도(一禽島)·팔금도 등 8개 섬이 있고,

새처럼 생긴 금당산이 이 섬들을 거느리고 있어 여덟 '팔'(八)자와 새 '금'(禽)자를 따서 '팔금도'라고 하였다 전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신안 읍리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71호)이 있으며, 모내기소리와 상엿소리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3층석탑은 옛날에 당신(堂神)이 있었다하여 매년 음력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내고 악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빌고 즐겼다고 한다..

 

안좌와 팔금 사이를 달리는 철부도선..

 

안좌 금산리...

 

안좌도 금산선착장..

 

갓섬과 등대..

 

멀리 해남 화원번도와 목포 앞바다의 섬들이 바라보인다..

 

목포와 신안의 경계가 되는 섬, 불무기도(不霧起島)..

옛날 어부들이 이 섬에 불을 놓아 그 해 고기잡이의 길흉을 점쳤으며, 풍어를 기원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화가 있다..

 

무인등대시설이 있고, 우이도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가을로'에서 잠깐 선보였다고한다...

 

멀리 화원반도 끝자락에 목포구등대가 바라보인다..

1908년1월1일, 최초로 점등한 이래 105년 동안 목포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을 인도하였다..

 

수류미등대로 불리며 등록문화재 제379호인 이 등대는 군산 어청도등대, 가거도 등대와 함께 문화재로 등록된 3대 등대이기도 하다..

 

외달도, 그리고 그 너머의 달리도..

 

목포대교와 유달산이 바라보인다..

 

멀리 북항도..

 

외달도해수욕장..

 

달리도가 가까워지고..

 

오가는 철부도선들..

 

맥도 너머로 율도..

 

맥도의 등대..

 

장좌도 너머로 목포대교와 유달산 일등바위..

 

장좌도..

장군이 양팔을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어 장좌도라 하였으며, 15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63년1월1일, 이로면이 목포시에 편입 되면서 달리, 눌도리가 충무동으로 개칭되고 허사도,고하도,달리도,율도 등과 함께 편입...

 

장좌도를 돌아서면 목포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목포신외항과 서해안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2012년6월29일에 개통된 목포대교(木浦大橋)...

국도 제1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 교량으로, 죽교동과 유달동의 고하도, 허사도를 연결한다...

 

사장교 형식이지만, 세계에서 두번째, 한국에선 최초로 시도된 3웨이 케이블공법이란 고난이도 공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사장교는 상판 좌우측에 각각 2쌍의 케이블로 지탱하지만 3웨이 케이블공법은 좌우측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고

이를 상판의 중앙에 옮겨 상판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대교역사의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설계나 시공등에서 고난이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케이블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사장교 좌우측의 경관을 살릴 수 있는게 장점이다...

 

목포대교는 목포의 시조이며, 상징인 학을 형상화하여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또한 목포는 태풍이나 강풍이 자주 불기 때문에 다리의 상판은 초속 67.4m, 주탑은 초속 7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고,

또한 상판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시켰다...

 

총연장 4.129km를 잇는 왕복 4차로로 3,346억원을 투입, 길이 167.5m짜리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라브 36경간이 시공됐다.

사장교 형식은 3경간 연속 유선형강상판 강사장교(200+500+200m)이고, 주탑 모양은 다이아몬드형이다.

그리고, 케이블은 3웨이 120케이블(약 19,500m)이 시공됐다.

대불산업단지~고하도~허사도(목포신외항)~목포대교~목포IC~죽림분기점~남악IC~서영암IC~대불산업단지로 구성된 사실상

목포 외곽순환도로의 한 주축이다..

 

목포 북항, 그리고 유달산..

 

멀리 압해대교(押海大橋)...

목포시 연산동과 신안군 압해면에 딸린 압해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로서 2000년6월 착공, 2008년에 완공된 국도 2호선이다.

총길이는 3,563m이며, 이 가운데 해상 교량이 1,420m, 육상 교량이 420m, 접속 도로가 1,720m이다.

총 사업비는 2098억원이 소요되었으며, 중심부는 케이블로 경사지게 교량을 연결하는 닐센아치교 형태로 설계하여 조형미를 살렸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목포에 있는 신안군청과 유관기관이 압해도로 이전하고, 목포 북항에서 운항하던 여객선이 압해면 송공 연안항에서

팔금도 고산 선착장과 암태도 오도 선착장 방면으로 운항하게 됨으로써 운항시간이 1시간10분 이상 단축되었다...

 

북항 선착장을 오가는 철부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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