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지리산 끝자락 수정봉, 그리고 둘레길과 구룡폭포 순환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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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3

한여름의 지리산 끝자락 수정봉, 그리고 둘레길과 구룡폭포 순환코스..

by 정산 돌구름 2013. 8. 4.
한여름의 지리산 끝자락 수정봉, 그리고 둘레길과 구룡폭포 순환코스...

 

 

산행일자 : 2013. 8. 3(토)

기상상황 : 흐리고 한 때 소나기(고온다습하고 무더웠지만 산들바람)

산행인원 : 빛고을토요산악회(34명) - 회비 30,000원

산행코스 : 여원재~주지봉~입망치~수정봉~덕운봉~구룡치~구룡폭포~육모정(전북 남원)

거리 및 구간별 소요시간 : 약15.0km, 6시간35분소요

  여원재(08:55)~주지암갈림길(09:12)~주지봉(09:25~35)~대간갈림길(09:45)~입망봉(10:07)~입망치(10:25~30)~헬기장

  (10:53~11:00)~수정봉(11:10~17)~노치(11:27)~능선봉(11:33~12:00)~덕운봉(12:06)~739봉(12:24)~구룡봉 

  (12:28)~김씨묘(12:45)~둘레길 합류점(12:50)~연리목(12:54)~사무락다무락(13:07)~징검다리(13:17)~샛집(13:22)~

  정자나무쉼터(13:30~45)~구룡교(13:50)~구룡폭포(14:03~10)~비폭등(14:27)~지주대(14:39)~유선대(14:45~15:00)~

  챙이소(15:12)~구시소(15:14)~구룡탐방지원센터(15:22)~육모정(15:25)~구룡분소 주차장(15:30)

교통상황

  비엔날레(07:30)~88고속~남원휴게소~남원IC~24번~여원재(08:50)

  구룡분소(15:45)~중앙하이츠콘도(16:15~17:25)~남원허브마을(17:40~18:30)~남원IC~88고속~비엔날레(19:50)

 

 

산행지 소개

  수정봉(水晶峰 804.7m)은 남원 운봉읍, 주천면,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한 봉우리로서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수려한 산이다.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 된다.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 구룡계곡은 지리산의 품에 있지만 지리산의 능선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구룡계곡길을 일부 정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 길이 지리산둘레길 제1구간(주천~운봉)과

  이어지면서 소위「구룡폭포 순환코스」가 새롭게 생겨났다.

  구룡계곡은 서북능선의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계류와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능선 계류가 모여 한데 어우러진 심산유곡이다.

  원천폭포로도 불리는 구룡폭포는 구룡계곡 아홉 명소중 으뜸으로 폭포 자연미도 빼어나지만 동편제 소리꾼들의 성지로도 통한다.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구룡폭포의 웅장한 소리에 맞서 소리를 다듬어 냈다고 전한다.

  구룡구곡은 1곡 송력동폭포, 2곡 육모정 앞의 용소, 3곡 학서암, 4곡 구시소(서암), 5곡 유선대, 6곡 지주대, 7곡 비폭동, 8곡은

  경천벽, 9곡은 구룡폭포이다.

  1곡인 송력동폭포는 구룡분소 옆 육모정 관찰로에 위치하며, 2곡인 용소는 육모정 앞에 보이는 소(沼)로 불영추라고도 한다.

  3곡 학서암은 학들이 고기를 잡아먹는 형상으로 삼곡교 옆에 위치한다.

  4곡 구시소는 물살에 패인 바위 모양이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시처럼 생겼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서암은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건너편의 작은 바위는 중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곡 유선대는 계곡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위에 금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여기에서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6곡인 지주대는 크고 작은 폭포, 그리고 소와 담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작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칠 기세로 솟아있다.

  7곡인 비폭동은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름다운 물보라를 그리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비폭동은 평소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비가 온 후에 보아야 제맛이라고 한다.

  8곡인 경천벽은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있어 붙여졌으며, 비폭동에서 급경사를 오르는데 계곡이 워낙 험하여

  길을 산으로 돌린 탓에 볼 수가 없다.

  남원 8경중 제1경으로 꼽히는 9곡 구룡폭포 교룡담은 두 마리 용이 서로 꿈틀거리는 형상을 한 모양으로 약15m에서 떨어진 폭포가

  구룡담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하단으로 소용돌이치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폭포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폭포의 장쾌한 모습이다.

  4월초파일이면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 한곳씩 자리를 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Prologue

오랜만에 빛고을토요산악회와 함께 한 것 같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에 비라도 내릴듯하다. 한달여의 긴 공백 끝에 시작한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34명이 함께 하였다.

오랜만에 함께 한 얼굴들이 반가웠고 그동안 개인산행 위주의 산행에서 모처럼 산악회와 함께 하니 이 또한 새로운 느낌이다..

 

8시50분, 여원재에 도착하니 지난해까지 없었던 백두대간 여원재휴게소가 새롭게 들어서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24번 국도의 여원재(女院峙)..

기원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 그 궁터가 남아있는 계곡, 여원치 마애여래불에 얽힌인의 정절에 대한 이야기,

호국혼의 전설을 간직한 아흔아홉 구비 고개,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들어 준다는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 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성계는 꿈에 나타난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갯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고개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는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길가에는「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이 우뚝 서 있고 뒷면에 새겨진 글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운봉의 문화유적 / 운봉은 신라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은거하면서 거문고를 전수시킨 이래 판소리 동편재의 고장으로써

가왕 송홍록, 국창 송만갑, 인간문화재 박초월, 낙화의 명인 박항규 등이 터를 이룬 고장으로 많은 문화유적과 민속사료들이 산재해

있어 민속문화의 보고라 불리운다. 주요문화재로는 황산대첩비지, 서천리 당산, 운봉향교, 행정리 고분, 여원치 마애불, 동학토벌비

등이 있고, 고성으로 고남산성, 장교리 합민성, 춘향산성, 수정산성, 노치산성, 정령치 순라도가 있다.

또 명승과 고적으로 옥계동과 피바위, 면왕목장, 정령치 등이 있으며, 서천리 장승, 북천리 장승, 권포리 장승, 임리 당산 등 많은

민속자료와 황산대첩제, 운봉줄싸움, 목기와 유기 낙곡공예 등은 옛부터 운봉의 특산품으로 알려져 왔다.」

 

여원재에서 수정봉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 오똑한 암봉이 주지봉이다..

 

새롭게 정비한 등산로 상의 이정표... 여원재에서 수정봉까지는 4.4km라고 한다..

 

가파른 산길로 들어 봉우리를 넘으면 주지사 갈림길.. 조금전에 여원재 0.8km를 지났지만 0.6km라 되어있다..

 

임도의 끝지점에 돌탑이 있고.. 좌측으로는 주지사로 내려서는 길이며, 주지봉은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들어서는 길에 시그널 몇개가 나부낀다..

 

주지봉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

 

잠시 내려서면 주지봉의 암봉이 고개를 내민다.. 

 

좌측으로 돌아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주지봉 정상의 조그만 석불...

 

그너머로 멀리 고남산이 바라보인다..

 

지리산의 마지막 정기가 머문 자리라고 주지봉(住智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아래에는 기원문과 명산기도자의 명단 등이 새겨져 있다..

 

주비봉 정상에 선 기념으로..

 

멀리 백두대간 고남산도 바라보이고..

 

돌부처와 함께..

 

흐린 날씨지만 그래도 조망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가야할 능선..

 

멀리 남원시가지도 바라보인다..

 

주지봉을 내려서며..

 

바로 아래 조망터에서 바라본 고남산..

 

겹겹히 쌓아 놓은듯한 바위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임도 돌탑 옆 능선을 따라가면 대간길과 만나는 갈림길에 이른다..

 

가파르게 올라선 첫 봉우리..

 

잠시 후 입망봉(갓바래기봉)으로 불리는 700m봉에 이른다..

 

잠시 기피른 내리막을 따라 부드럽게 안부에 내려서면, 예전에 갓바래기재라고도 불리었다는 입망치...

 

좌측으로는 운봉읍 엄계리로 내려서고, 우측으로는 이백면 과립리로 내려서는 안부 사거리이다..

 

입망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파르게 올라서면 잡초 무성한 헬기장.. 힘들어 여기서도 잠시 휴식..

 

무더위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힘겹게 올라선 수정봉..

 

수정봉(水晶峰)..

해발 804.7m로 운봉과 주천, 이백의 삼 개 읍면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의 맥에서 가장 극적인 분수계를 만나는 봉우리...

수정봉에서 바라보면 벌판 너머에 지리산 자락이 펼쳐진다.

『산경표』에서 말하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1정간 13정맥 모두는 하천을 둘러싼 하천의 유역분지 분수령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가장 큰 백두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은 한반도 물줄기를 동서로 가르는 주맥으로서 가장 큰 분수령맥이다.

이런 백두대간이 수정봉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능선을 타고 지리산으로 갈 수가 없다.

수정봉에서 덕산저수지로 빠지는 낙동강 물줄기와 노치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요천, 섬진강 물줄기를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이 좌우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노치마을 길을 따라서만이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평지가 산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분수계를 따라 운봉읍과 주천면의 경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가 산이 되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정확하게 지키는 구간인 것이다...

 

수정봉은 운봉분지를 에워싸는 북서산릉의 한 봉우리로 화강암이 변성받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심층풍화된 남원화강암의 운봉분지에 비해 풍화에 강한 암질 산으로 남아있다...

 

수정봉 표지석 후면에는 수정봉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있다..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피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의 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는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년전에 세워진 정상표지석이 없었을 때에는 이 표지판이 정상을 알려 주었었다..

 

정상을 내려서며..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연산골 갈림길...

 

잠시 후 고인돌 바위를 지난다...

 

공터가 있는 소나무숲 능선봉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소나무 숲길은 이어지고..

 

덕운봉... 대간길과 구룡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

 

우측 움막 옆으로 나있는 지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가야할 구룡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 739m봉...

 

건너편에 구룡봉이 바라보인다..

 

능선 길목에서 잠시 우측으로 비켜나 있는 구룡봉..

 

해발 728.2m의 구룡봉은 삼각점과 산성의 흔적만 있을 뿐, 잡초만 무성하다..

 

노치산성(蘆峙山城)..

삼국시대에 국경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산성은 수정봉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쌓은 테뫼식산성이다.

산성은 두 개의 산봉우리를 감싼 표주박 형태이며, 경사가 심한 남쪽과 서쪽은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동쪽과 북쪽은 할석

(깬돌)을 이용하여 내탁법(외부 성벽만 돌로 쌓고, 내부 성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우는 축조법)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150m 정도이고, 성 북쪽에 토루(土壘)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망대(望臺)와 우물터가 확인되었다.

우물터 주변에서는 삼국시대의 기와편과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서로를 껴안은 아름드리 소나무..

 

능선 공터의 김녕김씨묘를 지나 내리막이 이어진다..

 

지리산 둘레길이 합류된다..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구룡사로 내려서는 길과 둘레길의 갈림길..

 

용 소나무... 소나무 한그루가 용틀임 하듯이 꼬여져 다른 소나무를 휘감는 연리지...

 

이 용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소원을 빌면 모든 이들의 행운과 건강이 오래오래 이어진다고 전한다..

 

숲속 길가의 작은 연못... 산짐승들의 목마름을 달래주겠지..

 

잠시 부드럽게 길을 걷다보면 돌탑을 쌓아놓은 사무락다무락...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 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이라고 하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 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아름다운 소나무...

 

길게 내려서면 회덕마을이 내려다보이고..

회덕마을은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하여 살게 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포장마차 앞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고..

 

올라선 도로, 탐방로 연결안내도..

 

좌측으로는 지리산둘레길 제1구간이 운봉으로 이어지고, 구룡계곡 순환코스는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치리 초가가 바라보인다..

 

둘레길을 따라 100m가량 가면 덕치리 초가..

 

덕치리 초가(德峙里 草家, 전북 민속자료 제35호)..

이 초가집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으로 조선시대 일반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1895년에 박창규씨가 처음지었으나 6.25때 불타 1951년 다시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등으로 이루어진 이집은 이지역에서

구석집이라고도 부른다. 집이 있는 자리는 원래 논이었으나 터가 좋다는 한 풍수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집앞 논밭 너머로는 지리산의 줄지은 봉우리가 펼쳐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안내판에서)

 

도로 아래로는 정자나무쉼터가 있다..

 

정자나무 쉼터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조금전에 다녀온 억새초가지붕은 꼭 가볼 곳으로 되어있다..

 

다시 도로로 나와 도로를 따라간다..

 

푸르름을 더하는 정자나무, 그 뒤로는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과 덕두봉이 하늘금을 긋는다..

 

구룡교에서 우측 구룡사 방향으로 들어선다. 물론 직진하여 주차장에서 내려서도 되지만 우측 구룡사 앞에서 내려서기로 한다..

 

구룡사 앞에서 내려서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구룡폭포의 상류지역은 물이 깨끗하고 맑아 남원의 유명한 소리꾼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판소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일제때 명창 송만갑도 이곳에서 득음했고, 또 이곳은 기운이 영험하여 많은 무당들이 굿을 하였고 도인들이 많아 도인골이라 했다고...

지금도 사찰 뒤편에는 소나무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성황당이 있으며, 지리적으로 운봉 연재에서 넘어오는 백두대간 줄기...

 

좌측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면 구룡폭포로 이어지고 출렁다리가 있는 구룡폭포 하단에 도착 출렁다리..

구룡폭포 상단은 계단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물줄기가 거세게 내려오는 구룡폭포...

 

계단을 따라 올라선 구룡폭포 상단..

 

방장 제일동천..

 

약 30m 길의 구룡폭포(九龍瀑布)는 원천천(元川川) 상류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이라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폭포..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沼)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이라고도 한다..

 

출렁다리를 지나 다시 가파른 내리막...

 

깊은 협곡이 내려다보이고,

 

암벽에 오르면 용트림하는 소나무...

 

첩첩산중의 암릉을 지나 깊은 협곡이 내려다보이고..

 

7곡인 비폭동(飛瀑洞)..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름다운 물보라를 그리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비폭동은 평소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비가 온 후에 보아야 제맛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제법 수량도 풍부하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제6곡 지주대..

크고 작은 폭포, 그리고 소와 담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작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칠 기세로 솟아있다..

지리산의 또 다른 협곡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어지는 계곡..

 

유선대에서 잠시 쉬어간다..

 

제5곡 유선대...

 

계곡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위에 금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여기에서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주변의 절벽은 선인들이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기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사랑의 다리를 건너고..

 

계속 이어지는 협곡..

 

쪼개낸듯한 암벽...

 

잠시 내려서면 챙이소..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4곡 구시소..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이 지방 사투리인 구시를 써서 구시소라 부른다.

서암은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건너편의 작은 바위는 중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구유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1960년대 발생한 큰 홍수로 인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소나기..  계곡길을 내려서 도로에 이르면 탐방지원센터..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용호서원(龍虎書院)..

1927년 원동향약계(1572년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향약계)에 소속된 유림의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원이다. 설립 당시에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영정을 봉안하고 주자를 배향하였으나 이후 한말의 우국지사

연재 송병선을 비롯하여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 김재홍, 입헌 김종가로 배향 인물이 바뀌었다.

해마다 음력 3월15일 지역의 유림이 참여하여 제향을 올린다.

서원 건물들은 1974년 보수되었으며, 사우인 경양사, 동재·서재 건물인 목간당과 수성재 그리고 솟을 삼문의 대문 등이 있다..

 

육모정(六茅亭)..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름이 붙었으며, 원동향약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였던 곳이었다고 한다.

1961년 수재로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

옛 육모정은 구룡계곡 옆 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쪽에 복원되어 있다..

 

육모정 앞의 춘향묘(春香墓)..

남원시조성한 <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의 무덤으로, 1962년 현 위치에서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지석(誌石)이 발견되어 묘역을

단장하였다고 전해지며, 1995년 정비작업을 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춘향이 실존인물이 아닌 만큼 이 무덤은 시신이 있는 진짜 무덤은 아니다.

무덤 입구에 한자로 '춘향묘(春香墓)'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지나 3단으로 구성된 1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봉분을 갖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만고열녀 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쓰인 비석과 망주석, 상석이 놓여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구룡분소까지 내려오니 빗줄기는 약해지고..

 

바로 아래 주차장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남원시내 진영목욕탕이 내부수리중이라 가까운 중앙하이츠콘도 목욕탕에서 몸을 담근다... 빗줄기가 너무 거세 잠시 대기..

 

다시 남원대교 옆의 남원허브마을에서 뒤풀이를 한다..

 

18가지의 산나물 반찬이 나오는 돌솥산채비빔밥과 허브막걸리로  마무리..

 

예전의 남원허브마을에서 채마루로 이름이 바뀌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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