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의 아픔이 서린 작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小鹿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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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한센의 아픔이 서린 작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小鹿島)..

by 정산 돌구름 2013. 2. 1.
한센의 아픔이 서린 작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小鹿島)...

 

탐방일 : 2013년 1월 28일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

소록도(小鹿島) 소개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는 소록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약 7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 여느 관광지의 흥겨움이나 소란스러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녹동항에서 바라보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4.4㎢의 작은 섬이지만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다운 소록도해수욕장과

  일제시대 강제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 가꾼 것으로 알려진 중앙공원 등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예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야 했지만 2009년3월2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로 오갈 수 있는 섬이다.

  주차장에서 해변데크를 따라가면 해변을 감싸 안으며 시원스레 하늘을 바라보는 소나무숲과 갯바위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가면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생활자료관과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등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제2안내소 앞에는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수탄장이 있다.

  한센병환자의 자녀를 강제로 격리해 놓고 병사지대와 직원지대에 있는 이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게 했는데 그것도 전염을

  우려해 서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칠 수 있었다 한다.

  실제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최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찾기가 더욱 쉬워졌다. 단, 일몰 후 출입은 통제된다.

  소록도에 대한 기록은 <호구총수>의 도양면에서 소록도를 처음 볼 수 있다.

  <해동여지도>, <청구도>, <동여도>에도 묘사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소록도 옆에 주기로 녹도(鹿島)로부터 물길로 5리라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섬 지명의 유래는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

  즉, 도양읍 본토 녹동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사슴 머리에 해당하므로 녹두(鹿頭) 또는 녹도(鹿島)라 하였고, 녹도의 맞은편에 있는 섬은

  '작은 녹도'라는 뜻에서 소록도(小鹿島)라 하였다고 한다. 녹도는 뒤에 녹동(鹿洞)으로 바뀌었다.

  소록대교는 녹동항-소록도-거금도를 잇는 연륙교 가설공사 구간 중 녹동항-소록도 1단계 구간의 교량으로 2001년 6월 착공하여

  2008년 완공하였으나, 섬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명절 연휴에만 임시로 통행해 오다가 2009년3월2일 완전하게 개통하였다. 

  길이 1,160m이고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진 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서 사업비는 2,960m 연결도로를 포함, 1,652억원이 들었다.

  12개의 교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은 높이 87.5m에 이르는 주탑 2개가 지탱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들어서면 보리피리휴게소..

 

소나무숲이 우거진 수탄장(愁嘆場)..

이곳은 예전에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누어지는 경계선으로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철조망이 쳐 있었다.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단한번의 면회가 허용되었다. 이때 미감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에 갈라선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하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고한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해변가 데크를 따라간다..

 

소록도 포구..

 

멀리 소록대교가 바라보인다..

 

 

 

애환의 추모비...

 

1945년8월22일, 해방을 맞아 원생 자치권을 요구하던 84명의 협상대표단이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 당했다.

참사 56년만인 2001년12월8일 화장, 매몰된 현장에서 유골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다.

당시 학살당한 현장에 2002년8월22일 상징적인 기념비를 세웠다...

 

국립소록도병원..

1916년5월에 설립된 소록도자혜의원을 전신으로, 1949년5월 중앙나요양소, 1957년12월 소록도갱생원, 1960년7월1일 국립소록도

병원으로 개편되었다. 1968년11월8일 소록도에 국립나병원을 신설하면서 산하에 있던 국립익산병원(구 익산소생원)·국립칠곡병원

(구 칠곡애생원)·국립부평병원(구 부평성혜원)을 모두 폐지하였다.

1977년 부설 간호보조원양성소를 설치하고 1982년12 31일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개칭하였다.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으로, 설립 당시는 한센병 환자의 강제 격리·수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현재는 한센병 환자의 진료·치료를 담당하고

치료 후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보도·후생사업·한센병에 관한 연구를 기본업무로 하고 있다.

사실상 섬 전체가 병동의 일부로, 7개 마을에 각각 치료소를 설치하여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주거시설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선물의 집..

 

중앙공원안내도...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舊 小鹿島更生院 檢屍室)..

1934년 건립된 이 건물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관수술과

시체해부를 했던 곳으로 소록도의 인권 유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우선 검시 절차를 마친

뒤에야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었고 시신은 구북리 뒤편의 바닷가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되었다.

건물 내부에 수술대와 검시대 그리고 세척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된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舊 小鹿島更生院 監禁室)..

 

1935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를 불법적으로 감금했던 장소이다.

남과 북에 각각 1동의 건물을 나란히 짓고 두 건물 사이를 회랑으로 연결하여 외관상 ‘H’자형 평면을 이루며, 붉은 벽돌로 높은 담을

쌓아 밖에서 볼 때 마치 작은 교도소처럼 느끼게 한다.

일제 강점기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인권 유린의 현장이다...

 

 소록도 자료관...

 

전시관...

 

소록도 중앙공원..

1936년12월1일 착공, 3년4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1940년4월1일 완공하고, ‘부드러운 동산’이라 불렀다.

당시 산림을 깎아 만든 공원의 면적은 약 1만 9,800㎡에 달했다.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 연인원 6만여 명을 강제동원하여

조성하였으며,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여 옮겨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광복 후 공원 명칭이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변경되었고,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면적은 약 25,000㎡에 이른다.

솔송과 황금편백을 비롯하여 향나무·후박나무·삼나무·팽나무·히말라야시더·종려·치자·팔손이나무 등 잘 손질된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은 구라탑(求癩塔, 1963년 건립)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詩碑), 공덕비 2기가 있다...

 

 

 

 

 

 

 

 

 

 

 

 

 

 

 

 

 

 

 

 

 

주차장 바로 옆의 안내소.. 

 

거금도 오천리 청석마을 소원동산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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