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 3박5일(제4일)【1.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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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캄보디아

캄보디아 여행 3박5일(제4일)【1.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by 정산 돌구름 2011. 12. 5.

캄보디아 여행 3박5일(제4일)【1.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 4~5일차(11.23~24, 수~목)

  06:10 보레이 앙코르호텔 조식  / 07:30 호텔 출발(버스로 프놈펜까지 이동)

  13:40~14:20 프놈펜 춘천닭갈비 중식(낙지볶음) 14:35~15:35 왕궁, 압살라댄싱홀, 왕족의상실

  15:45~16:05 왓 프놈  16:10~17:00 투슬랭고문박물관  17:15~17:40 훈센파크

  17:55~20:30 메콩강변 산책, 선상 유람 및 식사 / 21:15 프놈펜국제공항 (23:45 탑승)

  00:05 프놈펜 출발 (06:50 인천국제공항 도착)

 

여행개요

1) 보레이 앙코르호텔 조식

  조금 이른 아침 6시10분, 호텔 1층의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 07:30 호텔 출발

2) 프놈펜으로 버스여행

  6시간여를 달려 프놈펜에 도착 중식을 하고 왕궁으로 향한다.

3) 왕궁 / 왓 프놈 / 고문박물관 방문

  왕궁내부를 관람하고 나서 프놈펜 최초의 사원인 왓 프놈에 이어 고문박물관을 관람한다.

4) 훈센파크 / 메콩강변 및 메콩강 선상 유람 석식

  고문박물관에서 훈센파크를 둘러보고 독립기념탑을 바라보고, 이어 메콩강으로 이동 강변 산책과 유람선을 타고 선상에서

  석식을 하고 야경을 둘러본다.

5) 프놈펜 국제공항 출발

  부두에서 푸놈펜 국제공항으로 향하여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수화물을 송부, 공항에서 면세점 구경 및 대기하다가

  아시아나항공 OZ-740편으로 귀국

 

 

 

씨엠립 보레이앙코르호텔을 떠나며..

 

 

 

 

 

씨엠립에서 프놈펜 이동중 농촌풍경.. 

 

 

 

 

 

 

 

 

 

 

 

 

 

 

 

 

 

 

 

 

 

 

 

 

 

 

 

 

 

 

 

 

 

 

 

 

 

 

 

 

 

 

 

 

○ 프놈펜(Phnom Penh)

  캄보디아수도이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캄보디아 최대의 도시이다.

  메콩강사프강의 합류점에 위치하며,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아름다운 거리풍경이 남아 있다.

  또 왕궁이 있는데 여기서 캄보디아 국왕이 살고 있다.  '프놈펜'이라는 명칭은 이 거리의 언덕에 세워져 있는 사원인

  왓프놈(Wat Phnom)에서 유래한다. 프놈펜은 '펜의 언덕'이라는 의미로,  펜 부인은 믿음이 깊은 여성으로 강을 따라 흘러 온 불상을

  극진하게 모셔서 그 사원을 왓 프놈이라고 불렀고 그 언덕을 프놈펜이라 불렀다.

  1975년4월17일 크메르루즈에 의해 함락당하면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시 외곽에는 폴 포트 정권 시대에 대량학살의 경험이 있는

  킬링필드가 있다. 13세기 자야바르만 7세의 시대, 와트 우나롬의 땅에 사원이 건립되었다.

  1431년 샴의 거듭되는 침공에 의해 왕포니 야트는 앙코르 톰으로부터 콘폰체무주의 스레이 산토로 천도 했지만, 하천의 범람이 자주

  일어나므로 다시 프놈 펜으로 재천도를 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네 개의 큰 강이 만나는 곳으로 알려진 프놈펜은 교역이 번창한 곳이었지만 습지대였다.

  스페인인이나 네델란드인, 혹은 화교나 일본인이 무역으로 다수 왕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캄보디아 왕실의 내분에도 개입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866년 왕궁이 건설되어, 우동으로부터 프놈펜에 천도를 단행하였다. 1920년 대에는 "아시아의 진주"로 명성이 높아졌으며,

  프놈펜 국제공항이 건설되었다. 1953년의 캄보디아 독립 이래 1960년대까지는 이웃 나라의 내전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해, 프놈펜은 '동양의 파리'로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였고, 치안도 좋은 도시였다.

  1970년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미국이 캄보디아에 군사에 개입하여 공산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

  농촌 각 지역에 폭격을 퍼부었다. 그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민들이 난민이 되어 수도에 집결하여,

  1975년 론 놀 정권 말기에는 프놈펜의 인구는 2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1975년4월17일, 크메르 루즈에 의해 프놈펜이 함락되었다. 시민들은 처음에는 크메르루즈를 환영하였지만, 크메르루즈는 미국이

  도시를 폭격 하려한다고 시민들을 속여 시골에 있는 집단농장으로 내몰거나 각 방면으로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한 사람은 사살되었고, 자살하거나 환자, 노인, 아이, 임산부 등 수만명이 희생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1979년1월7일, 베트남군과 헨 삼린이 이끄는 캄푸챠 민족구국전선에 의해 프놈펜이 함락될 때까지 도시의 인구는 5,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프놈펜에는 S21라고 하는, 원래는 키엔스와이라고 하는 고등학교였던 장소에 강제수용소가 설치되어

  론 놀 시대의 공무원, 군인, 기업인은 물론, 크메르 루즈의 충실한 간부까지가 다양한 직업군들이 스파이 등의 혐의로 수용되어, 고문을

  받고 시외 근교의 툴 에크, 이른바 킬링필드에서 참살되었다. 2만명 이상이 수용된 수용소에 생존자는 단지 여섯 명만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영화로도 유명한 킬링필드라는 말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캄보디아 각지에 존재한다.

프놈펜 왕궁

  캄보디아에 있는 궁정의 복합단지. 캄보디아 왕국 때의 건물로서 크메르어로 하면 "Preah Barom Reachea Vaeng Chaktomuk"라고 한다.

  1866년 지어진 이후 캄보디아의 왕이 줄곧 머물렀다.

  궁전은 노로돔 왕국이 수도를 오동에서 프놈펜으로 옮기면서 1800년대 중반 때에 완성되었다. 사실은 반테이 케브(Banteay Kev)라고

  불리는 성채 위에 지어졌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메콩강의 서쪽 강둑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성곽을 따라 3개의 주요 단지로 나뉜다. 북쪽에는 은으로 된 탑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크메르 궁전이 중앙에는 왕좌의 회당

  (The Throne hall)이 위치하고 있다. 궁전의 건물은 여러 번 재건축되었으며 1960년 후반에 다시 지어졌다.

  왕좌의 회당 : 크메르어로 하면 "Preah Thineang Dheva Vinnichay" 이며 그대로 옮기면 진리를 내리는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이다.

  왕의 측근과 주요 인사가 머물렀으며 그들이 업무를 보기도 하였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종교/왕가 의식을 위해 쓰이고 있다.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왕좌의 회당은 왕의 흉상을 전시해놓고 있다. 

  은탑 : 궁전 북쪽 단지에 있는 탑이다. 왕궁의 사찰 형태를 띠고 있으며 대개는 "Preah Vihear Preah Keo Morakot"라고 부르거나

  "Wat Preah Keo"라고 부른다. 건물 내부에는 수많은 국보가 있으며 금과 보석으로 된 불상이 대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수정 불상으로 캄보디아의 에메랄드 불상이라고 부른다.

  크메르 궁 : 크메르 왕을 위한 궁이다. 왕의 거처로 쓰여왔다. 다른 건물과 여러 벽을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왕좌의 회당 바로 옆에 있다.

  월광의 전각 : 찬 차야 전각(Chan Chhaya Pavilion)을 일컫는 말로서 사방으로 열린 전각이다. 크메르 전통 무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까지도 이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전체 궁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1866년에 지은 건물로 국왕이 살고 있기 때문에 국가 행사나 외교사절단이 왔을 때만 공개된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높이 59m의

  황금탑 건물이며 즉위전으로 이용된다. 파빌온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영화를 상영했던 곳으로 시크누빌 왕이 만들었다.

  왕궁 안에는 2층 구조의 나폴레옹관이 있다.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유제니가 1900년대 초반에 프랑스에서 배로 실어 나른 재료들로

  지어졌다. 현재는 캄보디아 역대 국왕들의 사진과 계보를 전시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받은 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왓 프놈[Wat Phnom]

왓 프놈은 '언덕 위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메콩강의 범람으로 인해 이곳으로 떠내려 온 네 개의 부처님 상을 펜(Penh)이라는 여인이 건져서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여인의 이름과 사원의 이름을 합쳐 '프놈펜'이라는 도시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1373년에 세워졌으며 높이가 27m나 되기 때문에 프놈펜에 있는 종교적인 건축물 중 가장 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계단에 조각된 나가와사자상이 눈길을 끈다. 본당에는 황금부처상이 모셔져 있고, 벽과 천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본당 뒤에는 거대한 불탑이 한 개 솟아 있고 그 주위를 7개의 작은 탑이 둘러싸고 있다. 사원 주변은 푸른 숲이 우거져 있어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코끼리를 타거나 방목하는 새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민들에게 있어 도심 속의 휴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