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9구간(고루포기산) 마지막 남은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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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백두대간

백두대간 제29구간(고루포기산) 마지막 남은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고..

by 정산 돌구름 2010. 2. 19.
백두대간 제29구간(고루포기산), 마지막으로 남은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삽당령~화란봉~닭목령~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 산행일시 : 2008. 7. 19(토) - 7.18(금) 22:40출발

○ 기상상황 : 흐리고 비(중부지방에 5mm내외의 비가 온다고 예보하였으나 종일 많은 비가 내림)

○ 산행구간 : 27.1Km(대간구간) - (강원 강릉, 평창)

 삽당령~6.8km~석두봉~5.4km~화란봉~1.95km~닭목령~6.75km~고루포기산~5.4km~능경봉~1.8km~대관령

○ 소요시간 : 9시간 5분 소요(중간그룹)

  삽당령(04:10)~임도(04:35)~862봉(04:43)~방화선(05:08~23)~들미재(05:28)~석두봉(05:53)~1006봉(07:03)~

  화란봉(07:39)~닭목령(08:16~40)~왕산1쉼터(09:42)~왕산2쉼터(10:28)~고루포기산(10:56~11:01)~제1쉼터

  (11:08)~전망대(11:18)~횡계치(12:16)~행운의 돌탑(12:30)~능경봉(12:40)~인풍비약수터(13:00)~대관령(13:15)

○ 주요봉우리 : 석두봉(982), 화란봉(1,069.1m), 닭목령(706m), 고루포기산(1,238m), 능경봉(1,123m) 대관령(832m)

○ 산행팀 : 28명(광주아침산악회) - 회비 60,000원

○ 교통

  비엔날레(22:40)~호남고속~경부고속~중부고속~영동고속~강릉휴게소~횡계IC~35번국도~삽당령(04:00)

  대관령(14:10)~456번~대관령면사무소(대관령호텔사우나,14:20~16:10)~횡계IC~영동~중부~호남~비엔날레(21:30)

○ 구간소개

  이번 구간은 오대산권인「삽당령~대관령」구간으로써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의 마루금으로 닭목재와 고루포기산 그리고

  능경봉을 이어가는데 문헌상 뚜렷하게 나타나는 산은 없지만 고려 우왕과 관련되어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구간이다.

  정상에 자리잡은 돌들의 모양에 빗대어 부르는 석두봉((石頭峰)과 난초처럼 예쁜 봉우리란 뜻에서 유래된 화란봉(花蘭峰)

  을 지나면 닭목이와 왕산골 사이에 위치한 닭목재에 이르게 된다.

 

 

  풍수가들은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고 형세가 닭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닭목재」로 부른다.

  닭목재를 지나면「고루포기산」에 이르는데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옛날 화전민이 살던 곳)에서 유래되어

 「곳은백이산~고른포기산~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된 것으로 추측한다.

  능경봉은 소우음(所于音)산에서 능정산(能政山) 또는 능정봉으로 불리다 전음된 것으로 여겨지며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 「能政日出」이라 부르고 「횡계팔경」의 하나이다.

  대관령으로 가는 안부의 지능선에 솟아있는 제왕산은 고려 우왕에 관한 일화가 담겨 있는 제왕산성이 있다.

  대관령은 넘나들던 고개가 하도 험하여「데굴데굴 구르는 고개」란 뜻에서 생겨나 「대굴령」이라 부르다가 「大關嶺」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동과 영서(백두대간 마루금을 기준으로 하여 강릉~동해지방을「영동」, 춘천~원주지방을「영서」라 부른다)를 연결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대관령은 조선 중종 때「고형산」이 사비를 들여 우마차가 다니도록 길을 넓혀 놓았다고 한다.

  그후 세월이 흘러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으로 상륙하여 대관령 길을 이용하여 쉽게 한양을 침범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인조가 크게 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헤쳐 부관참시 하였다고 한다.

  또, 대관령은 아들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떠나면서 고갯마루에 올라 오죽헌을 바라보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친정집을 바라

  보며 홀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마음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신사임당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져 오는「울고넘는 눈물고개」

  라고도 전한다.

○ 산행후기

  금요 무박산행은 매우 바쁘고 시간이 촉박하다.

  목포에서 올라와 저녁을 먹고 산행채비를 하면 금방 9시가 넘어버린다.

  가족들과 한주일 동안 떨어져 보내지만 도착하자마자 산으로

  가는 남편이 반가울 리가 없다.

  호산님을 태우고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하니 예정시간인 10시30분이 조금 지났다.

  남부지방은 토요일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중부지방은 5mm 내외로 조금 비가 온다고 예보하였다.

  가는 길목 호남고속도로상에는 많은 비가 내려 앞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하다.

  강릉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횡계IC를 빠져나와 35번국도를 타고 삽당령에 도착(04:00)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아 헤드렌턴을 켜고 산행준비를 하였다.

04:10, 삽당령 출발

지난 구간의 날머리였지만 어둠속의 삽당령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어두운 길가에서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 임도를 타고 가다가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로 들어서 잠시 후 바로 좌측 오르막을 택하여야 하는데 선두가 계속 직진하는 것을 불러 세워 길을 바로 잡고 올랐다.

초입에서 임도를 따라 계속 직진하여도 되지만 대간 마루금 능선을 따르기 위해서는 산속으로 들어가 능선을 따라야 한다.

숲길로 들어가 초입부터 약간 가파르게 오르면 능선을 따라 좌측 아랫쪽으로 임도가 따라오고 있다.

산죽사이로 봉우리를 넘어 부드럽게 진행하면 통신용 철탑이 세워져 있는 790m봉을 지난다.(04:34)

 

철탑을 내려서면 바로 삽당령에서부터 시작되는 임도에 이른다.(04:35)

차단기를 넘어 임도를 따라가면 좌측에 숲길로 오르는 등산로로 이어지고 고도를 높이며 오르면 공터에 나무목 이정표

「닭목령/들미골」이 세워진 862봉에 이른다.(04:43)

들미골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이며 내려섰다가 올라 이어진 산길은 산죽사이로 진행하면 우측으로는 절벽이고,

안부에서 급경사를 올라 봉우리에 이정표 「닭목령/대용수동」가 세워진 공터에 이른다.(05:07)

 

05:08, 방화선

공터를 지나면 바로 전망이 확 트이며 방화선이 시작된다. 

 

대간길은 우측으로 급히 꺾이며 북진하여 올라서는데, 20m 정도의 폭으로 벌목하여 능선을 따라 방화선을 형성하고 있다.

약15분간 계속되고 방화선을 따라 잠시 내려섰다가부드러운 길을 따라가면 안부에「백두대간 쉼터」란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05:28, 들미재(810m)

완만하게 올라 부드럽게 이어져「자유인8기팀종주대」가 하얀 코팅지에 써놓은「들미재 810m」표시판이 땅에 떨어져 있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면 978.8m봉을 지나는데 정상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고 삼각점이 있다고 하나 확인하지 못하였다.

05:53, 석두봉(982m)

다시 완만하게 내려섰다가 안부에서 고도를 높여 가파르게 올라서면 정상이 조그만 암봉으로 이루어진 석두봉에 도착한다.

평소에는 조망이 트여 멀리 강릉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인다고 하나 오늘은 바로 앞도 보이질 않는다.

 

다시 내려섰다가 부드러운 오름에 봉우리에는 이정표 「대용수동」가 나무에 매달려 있고(05:58)  

 

잠시 후에 헬기장 이정목「대용수동」에는 매직으로 석두봉이라고 써 놓았다.(06:03) 

 

잠시 내려선 안부에서 산죽길 따라 989.1봉을 향해 오르다 좌측으로 꺾어 사면길로 진행하다 완만하게 안부에 내려선다.

다시 조그만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린다.

 

이어 좌측으로 지능선이 달려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틀었다가 940m 능선분기점에 이른다.(06:44)

 

07:03, 1006m봉

능선분기점에서 좌측으로 틀어 완만하게 내려가다 올라서면 목원대 표언복 교수가 붙여놓은 표시판이 있는 1,006봉이다.

대간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며 고도를 120m 정도 낮추어 885m 안부까지 내려간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의를 꺼내 입고 우중 산행에 대비한다. 종일 비가 내릴 것 같다.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고도를 높여 화란봉을 향해 오르는데 비가 와서 땅이 매우 미끄럽다.

07:39, 화란봉(1,069.1m)

한참을 올랐다고 생각되는데 중간정도에 공터에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다.

잠시 옷을 고쳐 입고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따라 오른다.

화란봉에 올라서지만 좁은 공간에 한쪽에는 하얀 바탕에 매직으로 써놓은 글자가 희미한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반대편에는 나무판에 「화란봉/←닭목재/삽당령→」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화란봉은 표지석도 없고 이름처럼 아름다움도 없고 조망도 없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고 화란봉에서 부드럽게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거대한 노송이 있는 곳에서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된다.

빗길에 매우 미끄럽다.

 

전망바위에는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멀리 까지 바라다 볼 수가 있을 것 같으나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급경사의 내리막이 한참동안 계속되다가 완만해 지더니 오름길로 변해 742봉을 향해 오른다.

 

봉우리를 넘어 부드럽게 내려서면 잘 단장된 커다란 사각 묘지가 나타난다.(08:10)

가는 길목에는 「푸른고원 닭목령 민박(2층) 자)033-648-5721/010-5576-0369」판이 하얗게 걸려있다.(08:12)

 

시 내려서면 시멘트 임도를 지난다.(08:13)

 

08:16, 닭목령

임도를 넘어 숲길따라 조금 가니 농산물창고가 보이고 창고 옆으로 465번지방도로가 지나는 닭목령에 내려선다.

「계항동번영회」에서 1999.9.9 세웠다는 커다란 「닭목령」표지석이 비에 젖은 채 서있다.

 

그 옆으로 장승과 이정표 「삽당령13.5km/능경봉10.2km/노추산입구8.1km」가 있다.

 

길 건너에는 산불감시초소 옆으로 백두대간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굳게 닫힌 산신각....

 

「전국최고 감자채종포마을」이라는 큰 입간판과 「마지막으로 남은 청정고랭지 채소마을」이라는 간판도 이곳을 말해준다.

 

아름답게 꾸며진 집...

 

빗줄기가 그치지 않아 산불감시초소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다.(08:40)

백두대간 등산로 닭목령을 알리는 표지판 옆의 농로로 접어들어 농로를 따라간다.

 

길가의 채소밭에는 빗속에서도 일을 하는 아낙들이 반기는데 저들의 눈에는 빗속을 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질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농로가 좌측으로 꺾이면서 농로가 끝나고 표시기들이 많이 걸려 있어 숲길로 들어선다.(08:50)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안부에서 완만하게 오르면 841봉이고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가는데 커다란 두꺼비 한마리가 노송을

껴안고 있다.

 

다시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만나는데(09:09) 임도따라 가다가 내리막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표시기가 있어 따라 오른다.

우측 아래 고랭지 채소밭과 목장을 바라보면서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955.6m봉에 닿는다.(09:14) 

 

좌측으로는 미인송들이 아름답게 서있다.

 

955.6봉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며 우측에 목장을 끼고 부드럽게 진행하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곳에서 숲길로 들어섰다 나오니 다시 임도와 접한다.

이정표「백두대간 등산로」를 바라보며 숲길로 들어가는데 목장 후문으로 표시된 곳이다.

 

능선을 따라가면 좌측으로는 훤하게 벌목된 곳에는 푸르름을 더하는 미인송들이 줄지어 서있다.

한편으로는 죽어 고사목이 된 나무들도 어울려 서있다.

 

09:42, 왕산제1쉼터

숲길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고 한참을 오르면 철재의자가 있는 「왕산 제1쉼터」에 이르고 여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선다. 이정표에는「닭목령2km/왕산제2쉼터2km」고도가 855m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믿을 수 없다.

 

1쉼터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 990m고도에서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1020봉을 넘어서 내려섰다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데 1003봉에서 내려가다 바위지대 너덜길을 오르면 갈림길로서 좌측으로 우회길을 따라 오른다.

10:28, 왕산제2쉼터

너덜길을 올라 좌측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알루미늄의자 3개가 있는「왕산 제2쉼터」이다.

이정표「왕산 제1쉼터2km/고루포기쉼터2km」에 해발 952m로 표기해 놓았는데 실제로 1,100m고지는 될 것 같다..

 

쉼터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면 35번 송전탑이 세워져 있고(10:36) 로프가 쳐진 급경사를 올라서면 임도에 이른다.(10:40)

 

임도를 따라 1,225m봉을 넘어간다..

 

조금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에 숲길로 들어가 봉우리를 넘어 안부에 내려선다.

 

다시 임도와 만난다.

 

다시 38번 송전탑 밑으로 지나게 된다.(10:50)

 

10:56, 고루포기산

약간 오름을 따라가니 좁은 공터에 삼각점(도암24/1991복구)과 표지판, 철재의자가 있는 1238.3m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잡목에 가려지고 안개에 끼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며 빗줄기가 거세져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되다가 완만해지며 이정표「고루포기500m/능경봉4.9km/오목골1.6km」좌측으로 오목골로 내려선다.  

 

우측에는 돌탑이 있다.(11:08)

 

다시 부드러운 길로 이어지다가 오르면 1180봉을 지나고(11:15) 

 

11:18, 대관령전망대

바로 위에는 조망이 트이면서 이정표 「고루포기산1.1km/능경봉4.3km」가 있는 1174m의 「대관령전망대」이다..

날씨가 좋으면 바로 아래 대관령면 횡계리 풍경과 멀리 대관령 풍차와 목장이 바라보이겠지만 오늘은 바로 앞의 조망도 없다.

평창군 대관령면은 원래 도암면이었으나 개칭하였다.

 

도를 낮춰 이정표「왕산골2.0km/고루포기산1.4km/능경봉정상3.7km」가 세워진 넓은 공터 안부에 내려선다.(11:34)

 

이어 완만하게 오르다가 이정표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휘면서 급경사의 내리막이 한참동안 이어지다가 완만해진다.

다시 올랐다가 내려서면 안부에 이정목「샘터100m,왕산골700m/전망대1.6km/능경봉2.8km」이 있다.(11:48)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안부에 이르는데 이곳이 대관령터널 위에 위치한 횡계치이다.(12:16)

 

12:30, 행운의 돌탑

횡계치에서 부드럽게 오르면 봉우리를 연거푸 오르내리고 고도를 높이면 행운의 돌탑이란 안내문과 함께 커다란 돌탑이 있다.

 

행운의 돌탑에는..

우리 선조들은 험한 산길을 지날 때마다 길에 흩어진 돌들을 하나씩 주어 한곳에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럽게 돌탑을 만들어

여로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나마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풍습을 오늘에 되살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백두대간인 이곳을 등산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고자 여기에 행운의 돌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지나실 때마다 이 돌탑에 정성을 담은 돌 하나를 쌓으시고 백두대간의 힘찬 정기를 받아 건강과 행운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쓰여있다.. 

 

이정표「고루포기정상5.5km/대관령1.7km」을 지나 오르막은 계속된다.(12:33) 

 

12:40, 능경봉

능경봉으로 오르는 길은 돌을 깔아 잘 정비해 놓은 돌길이다.

고도를 높이면 넓은 공터에 삼각점(구정301/2005복구)이 우뚝 솟아나 있고 지석「능경봉 1,123.2m」이 세워진 정상이다.

 

한편에는 이정표「능경봉(해발1,123m)/전망대4.3km/대관령휴게소1.8km」가 있다.

 

이곳 역시 조망이 좋아 강릉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하나 안개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능경봉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산정에 영천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이 봉에서 맑은 날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경봉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면 커다란 헬기장이 있고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이어지는데 빗길에 무척이나 질퍽거리며

미끄러워 내려가기가 힘들다. 

 

도에 내려서는데 산불감시초소로 사용하는 콘테이너가 있고 길가로 나서면 이정표「능경봉정상1.1km/신재생에너지전시관

700m/대관령박물관 6.9km」가 있다.

 

관령박물관은 청동기부터 근세에 이르는 수십세기의 방대한 역사와 민속유물 2천여점이 전시되어 있는 사설박물관으로

고인돌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으며 언뜻 보면 6개의 건물로 보이지만 건물내부는 하나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원통형으로

들어온 곳을 통해 다시 나가게 되는 특이한 건축형태를 하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로 나누어진 전시관은 다시 여섯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지는데 백호방에는 주로 조선시대 유물중 종교, 민속신앙,

궁중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현무방에는 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청동기 유물이, 토기방에는 주로 석기시대와 신라시대의 토기

유물이, 청룡방에는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도자기 유물이, 우리방에는 조선시대의 생활용품류가 전시되어 있으며,

주작방에는 15세기 설화도를 비롯해 산수도, 민화 등의 고화와 불화 등이 진열되어 있다. 

각 방마다 우리고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살려 진열되어 있으며 눈으로만 보는 문화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유리진열장이 아닌

노출상태로 진열되어 놓은 전시품이 많다.

또한 야외전시장에는 20개의 장승을 비롯해 신라시대의 사리함, 조선시대의 문관석 및 동자석등이 있다.

 

도로가에는「氤風碑(인풍비)」와「澶望碑(단망비)」가 세워져 있다.

양쪽으로 샘터가 있어 젖은 신발과 옷을 세척하고 다시 내려선다.

 

 

 

13:15, 대관령

도로를 따라 20m 정도 가다기 다시 오른쪽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 「고속도로준공기념비」에서 계단길로 주차장에 이르면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앞에서 오늘을 마감한다.

 

대관령... 

해발 832m로 고한, 태백을 잇는 만항재(1,313m)나 지리산 정령치(1,313m), 홍천의 운두령(1,089m)에 비해 낮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대관령은 그 어느 고개 보다 높고 크다.

아마도 백두대간의 정점에서 아흔아홉 구비 아래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는 장쾌함 때문일 것이다.

동의 관문인 대관령은 바람과 구름의 관문이기도 하다. 산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쏟아대는 구름으로 겨울이면 미치도록

아름다운 순백의 세상을 여는 곳이 대관령이다.

 

14:05, 대관령 출발

계속해서 비는 내리고 먼저 도착한 팀들은 대관령면으로 내려가 목욕을 한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가 오고 후미가 도착한 것은 14:00가 넘어서였다.

대관령에는 예상했던 시각보다 1시간이상 늦게 도착하였다.

대관령면소재지에 있는 대관령호텔 사우나에서 하였다.

호텔사우나라고 하지만 동네목욕탕보다 적고 허름하였다.

목욕을 하고 준비한 뒷풀이 음식을 가지고 인근의 대관령면사무소의 쉼터로 가서 식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