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8-1구간(탄항산) 마의태자, 덕주공주 그리고 하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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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백두대간

백두대간 제18-1구간(탄항산) 마의태자, 덕주공주 그리고 하늘재

by 정산 돌구름 2010. 2. 12.

백두대간 제18-1구간(탄항산), 미의태자와 덕주공주, 그리고 하늘재..

(하늘재 ~ 탄항산 ~ 마패봉 ~ 조령3관문 ~ 신선암봉)

 

○ 일시 : 2008. 2. 23(토)

○ 기상 : 맑음(바람이 세차고 추운 날씨)

○ 구간 : 11.58km(미륵사지~탄항산~하늘재 3.8km, 절골 3.0km, 총 18.38km) - 경북 문경, 충북 충주

  하늘재~1.82km~월향삼봉~1.75km~주흘산갈림길~1.5km~동암문~3.41km~마패봉~0.91km~조령문~2.19km~신선암봉

○ 소요시간 : 3시간35분(기타구간 6시간30분 포함, 총 10시간 05분)

  하늘재(10:25)~탄항산(11:05)~평천재(11:20)~주흘산갈림길(11:40)~부봉갈림길(12:00)~동암문(12:07)~북암문

  (13:05)~마역봉(13:30)~조령3관문(14:00~10)~깃대봉(14:30)~신선암봉(16:49)

  * 미륵사지(09:00) ~ 탄항산(09:48) ~ 하늘재(10:25), 신선암봉(16:45~17:30) ~ 절골(19:05)

○ 주요봉우리 : 하늘재(525m), 탄항산(856.7m), 마역봉(927m), 신선봉(967m), 깃대봉(835m), 신선암봉(937m)

○ 산행팀 : 광주아침산악회 (22명) - 회비 50,000원

○ 교통

   비엔날레(04:00)~호남고속~경부고속~중부고속~증평IC~34번~3번~597번~미륵사지(08:15)

  절골(19:15)~3번~34번~증평유스호스텔(20:00~21:15)~증평IC~중부~호남고속~정읍휴게소~비엔날레(23:40)

○ 구간소개

  이번 구간은 「하늘재~이화령」구간으로써 속리산권을 벗어나 소백산권으로 들어서는 구간이다.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를 경계 지으며 절묘한 모양을 자랑하는 암봉도 많을 뿐만 아니라 이화령,조령,하늘재 같은 유서 깊은

  고개도 여럿 있는 구간이다. 신라의 북진을 위해 신라 제8대 왕인 아달라이사금 3년에 열었다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고개이기도 하다.

  하늘재에서 탄항산을 지나 부봉 갈림길에서 대간 마루금은 우측 산성을 끼고 「조령3관문」까지 이른다.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마역봉(마패봉)을 지나면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즉 「조령3관문」이다.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고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오르던 유서 깊은 고개로 백두대간길에 지친

  산객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좋은 휴식처로써 매점, 화장실, 약수터 등의 시설이 있다.

  「조령3관문」을 지나 깃대봉 갈림길을 지나서부터는 이번 구간에서 가장 체력 소모가 많은 암릉과 직벽 구간이 시작된다.

  923봉, 신선암봉, 조령산에 이르는 등로는 산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한판 싸움을 해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그러나 사방으로 전개되는 기묘하게 생긴 하얀 암봉의 절경은 대간길 산객들의 피로를 다소 풀어줄 수 있어 이제까지의

  힘들었던 산행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눈으로 받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조령산, 마폐봉, 부봉, 월향삼봉은 일반산행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코스이다.

  이번 구간의 특징은 새령(新嶺)으로 불리기도 하는 조령(鳥嶺)과 계립령(鷄立嶺)으로 불렸던 하늘재이다.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로서 한양과 영남의 문화를 교류하는 교통중심지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조령(새재)과 하늘재(계립령)는 옛날 영화는 이미 사라졌고 천하를 호령하던 군사들의 함성과 과거길 오르던 선비들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곳이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초점(草岾)으로, 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신경준의 여암전서 산수고의 문경조에는 신령

  (新嶺)으로 불렸던 조령은 깃대봉에서 시작하여 마패봉을 지나 부봉까지 조령산성으로 이어지는데 이 성은 조선 선조 때 쌓고

  숙종 때 중창하였다고 한다.

  마패봉에서 조망되는 부봉의 6개봉, 가지 줄기인 신선봉과 백두대간 남진방향의 신선암봉을 시작으로 조령산과 백화산의

  하늘금을 따라 희양산과 함께 멀리 속리산의 서북능선까지 조망되는 경관이 압권이며, 마역봉에서 내려서는 길목에 월악산의

  영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월항삼봉으로 불리기도 하는 탄항산(山)은 조선초기부터 봉수대가 있었다는 군사적 요충지로 동국여지승람 문경조에

  탄정산(炭頂山)으로 표기되었고, 세종실록지리지 문경조와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 탄항산으로 바로잡아 놓아 지금까지

  탄항산으로 불리고 있으나, 근래 각종 지도에는 월항마을 부근의 세 봉우리라는 뜻으로 누군가에 의해 월항삼봉으로 불리며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는 고대에 계립령, 마골점, 마목현 등으로 불렸고 계립령을 통하여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신라에는 토속신앙이 성행하였으나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정식으로 인정되면서 활화산처럼 번지기 시작한

  불교신앙은 호국불교로 자리잡아 신라의 삼국통일 대업을 달성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산행후기

 3주만의 대간길... 더구나 새벽 4시출발...   차를 가지고 비엔날레주차장에 도착하니 몇몇이서 벌써 와 있다.

 4시5분에 출발... 가는 길에 오창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출발...

 이화령에서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전달이 잘못되었는지 기사가 하늘재로 향하였다.

 

08:15 미륵사지 도착

상당 시간이 지체되었고 잠시 헤매다가 미륵사지에 이른다.

륵사지(彌勒寺址)는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마의태자(麻衣太子)와 덕주공주(德主公主)가 경주를 떠나 망국의 한을 달래며

권토중래하던 중 월악산 미륵리에서 관음보살의 현몽으로 마의태자는 미륵불을 조성하고 덕주공주는 마애불을 조성한다..

 

마의태자의 미륵사 미륵불상이요, 덕주공주의 덕주사 뒷벽의 마애불상이다. 높이 9,8미터의 직립 미륵불상이 있는 석굴로

3면은 6미터 높이의 석축을 쌓았는데 불에 심하게 타서 돌이 탄 흔적이 지금도 완연하게 남았다.

석축에 조각된 불상은 구분키 어렵게 화상으로 손상되었다. 

미륵불의 몸체 또한 불에 타고 천년 세월에 이끼 끼고 손상되었으나 미륵불상의 얼굴은 천년 세월에도 변함없이 밝고 환하다.

미륵입상은 보물 제96호로 지정 되었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월악산 미륵사지는 미륵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터이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고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으나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은 석물만 남아있다.

석불입상이 북쪽을 향하게 한 것은 덕주사 덕주공주의 마애불과 마주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 미륵불은 세월이 흘러도 얼굴 부분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뒤쪽의 돌들은 이 곳이 석굴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미륵불은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이다..

 

비석없이 귀부만 남은 거북...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

 

08:15 미륵사지 도착

상당 시간이 지체되었고 잠시 헤매다가 미륵사지를 지나 하늘재 표지석위의 공터에서 이른다..

 

무척이나 추운 날씨지만 간단히 시산제를 지냈다..

 

09:00 미륵사지 공터 출발

하늘재 표지석 옆의 산책로를 따라 하늘재에 올라야 하지만 하늘재에서 오르는 구간이 통제되어 바로 오름의 길을 택하여

탄항산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치 코에 닿을 듯한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얼어붙은 능선길이 매우 미끄럽고 위험하다.

오르는 길목의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미륵리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좌우로 평쳐지는 암봉들..

 

사람들의 흔적도 별로 없고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능선을 따라 오르면 월항삼봉이라 불리는 탄항산에 이른다.(09:48)

 

대부분 탄항산에서 이화령 방향으로 갔지만 하늘재와 탄항상 사이를 빼먹을 수 없어서 산토끼, 착칸이, 목포2명, 그리고 나

5명이서 하늘재 방향으로 좌회전하였다. 급경사의 내리막과 암릉... 하늘재에서 오르는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가파른 암릉길을 따라 내려서 암봉에 이르면 바로 아래 하늘재 도로와 공터가 보인다.(10:16)

건너편으로는 포함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25 하늘재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면 철조망이 쳐진 조그만 시멘트 건물이 있고 사람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하늘재이다.

하늘재에 조금 못 미쳐서 하늘재를 보니 산불감시초소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 내려가려다 그냥 지나쳐 되돌아간다.

하늘재....  

포함산과 월항삼봉사이 고개인 하늘재는 신라가 북진을 위하여 처음 개척하였다는 기록으로부터 고구려 온달장군의 한강이남,

중원 단양지역회복 전투, 신라 마지막왕자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이야기, 고려 항몽사, 조선시대 조령의 활성화와 더불어

쇠퇴하면서 상민과 천민들의 애달픈  고개 등등 한민적의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내려온 고개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하늘재(해발 525m)는 이름처럼 그리 높지는 않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고 있는 도경계로서 미륵리에서 걸어 오르면 관음리로 연결된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죽령보다 수년 먼개통되어 남한강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충지로 신라는 일찍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하지만 하늘재는 태종14년(1414년)에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측은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 구간을「역사·생태관찰로」로 조성했다.

재 하늘재로 알려진 이 길은 지난 70년대에 농로를 새로 개설한 것으로 도랑 너머 오솔길이 진짜 하늘재라는 것이다.

월악산 자연 생태를 직접 보며 역사를 설명해주고 문화재 화판 등을 설치해 주변 문화유적과 함께 설명한다.

청북도가 선정한 「충청북도 자연환경 명소 100선」중 10걸로도 선정된 하늘재는 그렇게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늘재에서 다시 오르는 길은 매우 험하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르는 길목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포암산의 신선한 아름다움은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오늘은 아름다움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11:05, 탄항산 

계속되는 오름길.. 거북바위를 지나 커다란 입석바위가 앞을 가로 막고 있다.(10:55)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탄항산, 일명 월항삼봉(851m).. 충북 충주시 상모면 월악산국립공원 남단에 위치하며 가까이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든

미륵사지와 삼국시대부터 호서 영남을 잇는 하늘재를 감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산세를 가지고 있는 산이다.

동국여지승람 문경조에 탄정산(炭頂山)으로 표기되었던 탄항산(山)은 세종실록지리지 문경조와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

탄항산으로 바로잡아 놓아 지금까지 탄항산으로 불리고 있으나 근래에 이르러 각종 지도에 월항삼봉(월항마을 부근의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다하여 누군가에 의해 삼봉으로 불려졌고 또, 예전에 산삼이 많이 난다하여 삼봉(蔘峰)이라 부르기도 함)

으로 기록되어있다.

조선초기부터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북으로 수려한 부봉과 포함산이 웅장하게 서있어 백두대간 종주자들에 의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산 정도에 불과한 산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아름드리 장송들과 암봉들은 나름대로 산행의 재미를 만끽해 주기에 충분한 산이다.

상은 사방에 우거진 나무들로 주변 조망이 좋지 않지만 나무사이로 멀리 보이는 주흘산의 웅장한 모습을 잠시 응시하여 보고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 급히 진행..

 

11:20 평천재(월항재)

빠른 걸음으로 가지만 왠지 오늘따라 발길이 무겁다.

정상 능선상에서 바라본 주흘산과 부봉의 북사면은 문경새재에서 바라 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잘 발달된 도로와 도시 가까이의 산이 아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말 그대로 첩첩산중에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수목으로 울창하게 뒤덮인 주흘산은 문경읍에서 바라본 기암괴석의 암봉이 아닌 육중한 모습의 육산이며 급한 경사를 이룬

자태는 자못 경외롭다. 뒷모습인 듯한 부봉은 육중한 모습은 어디가고 오히려 날카로워 보인다.

내리막인가 싶더니 널따란 평지가 나온 것을 보니 평천재이다.

좌로는 문경읍 평천리 월항마을로 내려서고 우측으로는 동암문과 동화원을 거쳐 조령3관문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안부이다.

‘평천재(일명 월항재) 힘내세요. 둘산악회’라고 씌어진 코팅된 표시기가 정겹게 느껴진다..

 

평천재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포암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 좋은 곳에서 잠시 머무르고

다시 얼어붙은 미끄러운 암릉길이 시작되어 로프를 잡고 오른다..

 

11:40 주흘산 갈림길

능선에 들어서니 전망이 트이고 주흘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림길 이정표「주흘산2.6km(1시간30분)/제3관문4.7km(3시간)/부봉1.3km(40분)/하늘재3.2km」가 있고,

리 포암산과 지나온 탄항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주흘산, 대간길은 우측으로 꺾어 돈다.

백두대간을 북에 두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아 오른 주흘산(영봉 1,106m, 주봉 1,075m)은 예부터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져 온 산이다.

정상 남사면이 수백 길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문경읍에서 보면 철옹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매년 주흘산을 진산으로 받드는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서쪽으로 조령천을 사이에 두조령산(1,017m)과 마주보며, 포암산(962m), 신선봉(967m), 대미산(1,115m) 등과 함께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룬다.

서쪽과 남서쪽 사면을 제외하면 대체로 급경사를 이루며,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과 서쪽에서 발원하는 물은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각각 흘러들며, 높이 10m정도 되는 여궁폭포, 파랑폭포가 있다.

남서쪽 기슭에는 통일신라시대(846년, 문성왕 8)에 보조 국사 체징(體澄)선사다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했다는 혜국사(惠國寺)가 있다. 과거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이루기도 했다.

남한 땅 백두대간 가운데 약 5분의1에 해당하는 긴 능선이 문경 땅을 거치면서 수많은 산봉을 일으켜 놓았는데 등산인들에게

문경하면 주흘산이 떠오르는 것은 육산과 바위산의 멋을 겸한 빼어난 산세와 함께 문경새재를 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주흘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있는 산으로 정상에서는 멀리 

소백산까지 볼 수 있으며 가까이로는 문경읍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다시 오르내리기를 몇 번... 암봉에서 바로 앞에 부봉이 올려다보인다.(11:51)

 

12:00 부봉 갈림길

암벽을 넘어 내려섰다가 다시 조금 오르니 「부봉(제1봉)0.5km(20분)/제3관문4.6km(2시간20분)/주흘산3.5km(2시간)/

동화원」부봉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좌측으로 500m를 오르면 부봉이고, 우측으로는 대간길이다.

곡관(제2관문)뒤에 우뚝 솟은 바위산인 부봉(912.6m)은 부봉의 6개 봉중 제1봉에 해당한다.

백두대간은 하늘재를 지나 조령까지 주능선이 이어지고 가지를 뻗어 주흘산을 만들며 부봉에 와서 6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놓아 저마다 특색 있는 암체로 이루어져 있다. 부봉에 오를까 망설이다가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바로 대간길로 내려선다..

 

12:07 동암문

잠시 후 오른쪽으로 성벽이 보이고 급경사로 내려서면 이정표「주흘산4.1km(2시간30분)/부봉1.3km(30분)/제3관문3.9km

(2시간)/동화원1.4km(30분)」가 있는 동암문에 이른다.

우측으로는 석성을 지나 평천재, 좌측으로는 동화원으로 가는 길이며, 대간길은 직진이다.

화원은 영남지방과 한양을 오가던 옛 선비들이 하룻밤 묵어가던 곳으로써 고려 왕건이 남쪽을 칠 때 행재소(行在所)로

사용한 곳이며, 고려 말 공민왕이 이곳에 행궁을 짓고 홍건적의 난을 피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오르막은 이어진다..

 

동암문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가니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우리 팀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겨우 따라 잡았다. 점심 후(12:15~30) 후 바로 출발하였으나 B코스로 하산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후미다..

13:05 북암문

비교적 완만한 봉우리인 763봉과 764봉을 지나는 동안 잡목에 가려져 조망이 없다.

756봉을 지나면 「마패봉0.7km20분/부봉3.0km1시간40분/지릅재1.7km50분/동화원1.3km35분」가 있는 북암문이다.

우측 성벽을 넘어 내려서면 지릅재로 가는 길이고 우측길은 동화원으로, 대간길은 바로 직진하여 마패봉까지는 오르막이다...  

 

북암문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멀리 부봉이 선명하다.

 

다시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오르면 능선이 바로 앞에 보이며 해발 910m 표지판이 있다.

 

옆으로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있다..

 

정상 100m전방인 해발 910m 표지판을 지나면 바로 확 트인 전망의 널따란 공터가 나온다..

 

13:30 마역봉

바로 옆에 해발 927m 정상표지석이 있는 마역봉이다..

 

북 중원 상모면과 괴산 연풍면 그리고 문경읍과 경계를 이루는 마역봉(馬驛峰)은 마패봉이라고도 부르는데, 마패봉이란 이름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산을 넘으며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 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의 한이 서린 조령3관문을 안고 있는 산이다..

 

주말 산행 코스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선봉(967m) 동쪽 1.5km 거리의 독립봉으로 우뚝 솟아 있지만 높이에 비해 의외로

쉽게 오를 수가 있다. 출발지점인 지릅재가 표고가 해발 650m이기 때문이다..

 

가야할 대간능선은 깃대봉을 넘어 낙타등과도 같은 암봉들을 지나 신선암봉, 조령산이 우뚝 솟아있다.

좌측으로는 대간에서 뻗어나간 주흘산과 부봉의 여섯봉우리, 월악산암봉들이 도열하고 있다..

14:00, 조령3관문

조령까지는 경사가 제법 심한 로프와 비탈을 이어가는 내림길이다.

30여분 내려서면 이정표「마패봉0.9km45분/조령산 6.1km3시간55분」를 지나 넓은 광장 이 있는 조령3관문이다..

 

조령제3문의 성문을 지나 안에 들어선다..

 

문경새재 과거길이라는 표지석도 있다.

이곳「문경새재 과거길」은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였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쪽 추풍령과 북쪽 죽령, 가운데 새재가 있는데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가 있어 영남의 선비들의 과거급제를

위하여 넘던 과거길이기도 하다.. 

 

안에서 바라보는 제3관문은 조령문이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새재는「하도 험하고 높아서 새도 쉬어간다」는 뜻에서 조령은 천혜의 요새지다..

그 옛날 한양을 사수할 수 있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임란 이후 새재에 제3관인「조령관」, 동쪽10리에 제2관인「조곡관」,

재 초입에 제1관인「주흘관」을 두고 성을 쌓았다.

문경관문(聞慶關門,사적제147호)..

고려 태조가 경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아들을 차례로 보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삼국시대는 동쪽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 이곳 초참(새재)을 조령이라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선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때 왜장「고니시 유끼니가」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신립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지금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년)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세개의 관문중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관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 한다..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 경계를 이루는 「조령관」은 비가 올 때 용마루에서 남쪽 기왓골을 타면 흘러서 낙동강으로 들어가

남해로 빠지고 북쪽 기왓골을 타면 한강으로 접어들어 서해로 유입된다..

 

「백수영천 조령약수」의 시원스런 물 한 모금으로 마시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카메라에 돌석에 새겨진 세재와 조령을 담고

우측 산신각을 지나 오름길에 올라서 산성길을 따라 오른다..

 

14:30, 깃대봉입구 갈림길

가파르게 오르니 능선에 접어들고 성벽이 있는 안부를 지나서 오르면 이정표 「깃대봉 입구 갈림길/조령산6km/깃대봉300m/

제3관문1km」가 있는 깃대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깃대봉, 왼쪽은 대간길이다..

 

10여m 옆에 삼각점이 있는 813봉....

 

지나온 대간의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능선은 조망이 아름답기만 하고...  

 

길목의 757봉의 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부봉의 아름다움을 잡아본다..

 

15:00, 신선암봉 구조10지점

칼바람 추위를 헤치며 오직 앞으로만 가니 거대한 바위와 수백년 된 노송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하는 암봉들...

암벽과 암릉을 오르내리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산악구조 10지점 표지판을 지나 다시 오르내린다..

 

수직에 가까운 거대한 바위 직벽을 밧줄에 의지하며 내리고 잠시 휴식의 또 오르고... 

체력의 소모가 상당하다.. 후미를 기다리지만 아직 오질 않는다..

 

지나온 암봉....

 

계속되는 크고 작은 암봉을 지나면 바로 앞에 923봉이 있고 그 뒤로는 신선암봉이 위용을 뽐낸다..

 

15:50, 923봉

가파르게 올라서면 신선암봉119신고안내 제13지점 표지판이 있는 마지막 923봉에 오른다.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다시 거대한 암봉이 앞에 버티고 서 있는데 신선암봉이다..

 

지나온 923봉...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안부에 내려서는데 우측으로는 한섬지기계곡으로 내려선다.

다시 오르막이 이어지고 얼어붙은 암벽을 밧줄에 의지하며 오른다. 반대편의 건너편 923봉이 선명하다.

아직도 후미는 보이질 않는다..

 

암벽을 지나 이정표「신선암봉/절골(1시간20분)/조령삼관문(2시간50분)」와 조령산119신고 안내표지판을 지난다.(16:48)

 

16:49  신선암봉

바로 올라서면 신선암봉에 이른다.

아.. 신선암봉....  조령산 종주로의 중간에 위치한 암봉으로 조망이 좋고 오르내리는 코스도 다양하여 종주로 거쳐 가기보다는

단독등산이 좋은 산이다..

 

오르는 코스로는 조령산의 등,하산로로 이용되는 절골에서 암벽훈련장 앞을 지나 오르는 코스와 절골에서 중암절로 오르거나

용성골을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 등 계절에 맞게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17시30분이 다되어서야 후미 도착... 종주를 포기하고 절골로 내려가기로..

 

가야할 조령산 능선을 가늠해 보며 몇사람 때문에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대간길을 마무리하며 내려선다..

 

절골로 내려가는 9명... 후미 3명 때문에 종주를 포기하고..

19:05,  절골마을

절골로 가는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 어둠이 밀려와 조망도 없다... 

갈림길에서 좌측을 택하여 한참을 내려선다. 골짜기를 따라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헤드랜턴을 꺼내서 불을 밝히고 내려선다. 절골 마을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어섰고..

종주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이 구간은 다음에 꼭 하리라 마음먹고...

버스가 한참을 달리다가 증평유스호스텔에 들러 목욕을 하고 간단한 추어탕 뒷풀이로 마무리..

광주에 도착하니 11시40분이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