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화북동 문화탐방 - 화북포구, 곤을동, 해신사, 별도포구, 별도연대
본문 바로가기
제주여행/제주여행

제주 화북동 문화탐방 - 화북포구, 곤을동, 해신사, 별도포구, 별도연대

by 정산 돌구름 2025. 4. 8.

제주 화북동 문화탐방 - 화북포구, 곤을동, 해신사, 별도포구, 별도연대 


2025년 4월 8일, 제주 화북포구 해신사, 별도연대와 별도포구를 지나며 ~

제주올레길 18코스를 따라가면 별도포구라고 불리는 화북포구를 지난다.

이 포구는 조천의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육지와 제주를 잇는 2대 포구 중 하나로 역사가 깊은 포구이다.

부임하는 목민관이나 김정희, 최익현 등 유배인들이 이곳을 통해 제주에 들어왔다.

화북포구는 작은 포구에 불과하지만 비교적 수심이 깊어 썰물 때가 되어도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의 전선인 판옥선이 정박했고 수군이 진을 형성했다.

현재 화북포구는 어촌정주항으로 역할하며 물양장과 방파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판소리 열두마당 배비장전의 무대로 알려진 곳이다.

해안에 있는 작은 사당인 해신사(海神祠)는 화북포 앞바다에 오고가는 배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해안에 세운 사당이다.
순조 20년(1820년) 당시 제주목사로 있던 한상묵이 세웠으며 그 뒤 헌종 7년(1841년) 방어사였던 이원조가 건물을 보수하고 헌종 15년(1849년) 장인식이 돌에 ‘해신지위’라는 글자를 새겨 보존하도록 하였다.

지금의 사당 건물은 1975년에 이곳에 옮겨 세운 것으로 건물의 넓이는 1칸이며, 지붕은 한식 기와로 덮고 바닥은 강화다짐을 하였다.

화북동 선창은 조선시대 제주목의 관문인 선창으로 이용되어 모든 관원이 본토와 내왕할 때 이곳을 거쳤으므로 여기에 세워진 것이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어서 본토와 내왕할 때 해상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어서 해신제를 지낸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792년(정조 16년) 제주에 큰 흉년이 들어 목사 이철운이 조정에 구휼을 요청하자 곡물을 나르기 위하여 어리(중앙 관리)를 보내면 민폐가 될 것이니 수령 가운데 수송할 사람을 정하여 운송하라 하고 해신제 제문을 지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관헌에서 해신제를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정월보름과 선박이 출범하기 전에 관헌에서 해신제를 지내어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여 왔는데 민족항일기초에 관헌의 제의가 폐지되었다.

현재 해신제는 민간의 개별제의로 되어 매년 음력 섣달그믐, 7월 백중날, 8월 14일에 화북동 어부들이 각각 제물을 따로 차려와서 진설하고 해상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한편, 무속에서는 여기의 신을 ‘금돈지 해신영감님·해신부인님’이라 하여 해상안전을 수호하는 신으로 위하기도 한다.

1974년 4월 3일,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별도연대는 제주시 화북동 동쪽의 연대동산에 자리 잡고 있어 화북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로 정치적, 군사적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으로 해상에서 접근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신호를 보낸다.

산 정상에 설치하고 신호만 보내는 봉수대와는 달리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서 신호를 보내고 위로 올라가 해상에서 접근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곳이었다.
별도연대는 동쪽의 조천 연대, 서쪽의 수근 연대와 신호를 주고받았다.

이 연대는 많이 허물어져 불규칙하게 받침돌만 남아있는 상태였으나 2001년 2월에 복원하였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연대의 형태와는 달리 타원형의 독특한 방호벽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환해장성과 화북포구가 내려다보이고 사라봉과 별도봉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으므로 올레길 18코스를 걷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