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월진성(明月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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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제주여행

한림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월진성(明月鎭城)..

by 정산 돌구름 2023. 3. 2.

한림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월진성(明月鎭城)..


2023년 3월 2일, 한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월진성~
제주 한림읍 명월진성은 둘레가 3천 20척, 높이가 8척이었으며, 동쪽과 남쪽 및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었다.
성안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고, 건물로는 객사·별창·군기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월포는 삼별초의 별장 이문경이 고려에서 파견된 관군을 진압하고 탐라를 점령할 때 상륙한 곳이다.
성 위에 서면 한림읍과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우거진 팽나무 숲이 아름답다.

명월진성(明月鎭城)은 조선 중기인 1510년(중종 5년) 제주목사 장림이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木城)으로 축조하였다.

그 후 1592년(선조 25년) 제주목사 이경록(李慶祿)이 돌로 바꿔 쌓았는데 제주목의 서북쪽을 방어하는 진지였기 때문에 1764년(영조 40년)에 조방장을 승격하여 만호를 두고, 제주 출신을 임명토록 하였다.

조선시대 명월진에는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서기 30명 등 총 568명이 있었다.

또한, 2봉수(도내봉수, 만조봉수)와 7연대(귀덕연대, 우지연대, 죽도연대, 마두연대, 배령연대, 대포연대, 두모연대를 관할하였다.

명월진성이 있는 명월포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제주에 살던 원나라가 운영하던 국영 목장 관리자인 목호(牧胡)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상륙하여 난을 진압하고 돌아간 곳이다.

명월진성의 원래 둘레는 3,020척이고 높이가 8척으로 성 안에는 풍부한 양의 감천(甘泉)이 있었다.

동문과 서문·남문 위에는 1칸씩의 초루를 두었다.

성벽은 북서와 남동 방향으로 장축인 타원형으로 성벽의 요소에 치성을 두어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성 안에는 진사(鎭舍 3칸), 객사(客舍 3칸), 사령방(使令房 2칸), 공소(供所 2칸), 공수(公需 2칸), 무기고(武器庫 4칸), 도청(都廳 4칸), 진고(賑庫 4칸), 창대청(倉大廳 3칸), 중화청(仲和廳 2칸), 진졸청(鎭卒廳 3칸)과 창고 4동(각각 2칸)이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성벽은 동문과 남문 사이 120m의 외벽 성석()이며, 각 문에 있었던 옹성()은 동문 쪽에 외벽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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