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 랑탕-고사인쿤드-헬람부 트레킹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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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랑탕-고사인쿤드-헬람부 트레킹 17일..

by 정산 돌구름 2022. 11. 7.

 

네팔 히말라야 랑탕-고사인쿤드-헬람부 트레킹 17일..


□ 여행기간 : 출발 2022년 10월 23일(일), 도착 2022년 11월 8일(화)

  < 출발 10월23일(일) 인천공항 19:55 진에어,  방콕 23:55, 24일 10:30 Thai Smile항공,  12:35 카트만두 > 

  < 도착 11월  7일(월)  카트만두 13:30 Thai Smile항공, 방콕 18:30, 11월8일 01:00 제주항공, 08:20 인천공항 >

□ 여행지역 : 네팔(카트만두, 히말라야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 여행인원 : 9명

□ 여행경비 : 3,300,000원 <공통경비 1,500,000원 + 1,800,000원(경비 1,140$, 포터 120$, 비자 30$) >

□ 여행일정

  ○ 1일차(10월23일, 일) : 광주~인천국제공항(진에어)~태국 방콕 수완나폼공항( Suvarnabhumi Airport) 

  ○ 2일차(10월24일, 월) : 태국 방콕~타이스마일항공(Thai Smile Air)~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공항~소얌부나트(swayambu nath)~Hotel Arts

  ○ 3일차(10월25일, 화) : 카트만두~버스~샤브루베시(Syabrubesi)~라사호텔(Hotel Lasha & Lodge)

  ○ 4일차(10월26일, 수) : 샤브루베시~뱀부(Bamboo)~림체(Rimche)~창담(Changdam) 라마호텔 Friendly Geust House)

  ○ 5일차(10월27일, 목) : 라마호텔~리버사이드~고다타벨라(Ghoda Tabela)~탕샤프(Thangshyap)~랑탕마을 Chhomo Valais

  ○ 6일차(10월28일, 금) : 랑탕마을~신둠(Sindum)~캰진곰파(Kyanjin Gompa)~캰진리(Kyanjin Ri)~캰진곰파 Hotel Super View

  ○ 7일차(10월29일, 토) : 갼진곰파~체르고리(Tsergo-Ri)~캰진곰파 Hotel Super View

  ○ 8일차(10월30일, 일) : 캰진곰파~신둠~랑탕밸리~탕샤프~고다타벨라~리버사이드~라마호텔(창담)

  ○ 9일차(10월31일, 월) : 라마호텔~창담~림체~뱀부~파히로(Pahiro)~고사인쿤드 갈림길~찻집~현수교~툴로샤브르(Thulo Shaflu)

 ○ 10일차(11월 1일, 화) : 툴로샤브르~두르사강(Drusagang)~포프랑(Foprang)~신곰파(Sing Gompa) Hotel Yak & Nak

 ○ 11일차(11월 2일, 수) : 싱곰파~초랑파티(Cholangpati)~라우리비나(Lauribina)~사원~고사인쿤드(Gosainkund) Hotel Lakeside)

 ○ 12일차(11월 3일, 목) : 고사인쿤드~수르야쿤드 패스(Sryakund pass)~페디(Phedi)~두피차우르(Dhupi Chaur)~곱테(Ghopte) Namaste Hotel

 ○ 13일차(11월 4일, 금) : 곱테~타데파티(Thadepati)~마긴고트(Magingoth)~도바토(Dhobato)~쿠툼상(Kutumsang) Hotel Namaste

 ○ 14일차(11월 5일, 토) : 쿠툼상~치플링(Chipling)~파티반쟝( Pati Bhanjyang)~치소파니(Chisopani) Dorje Lakpa Hotel

 ○ 15일차(11월 6일, 일) : 치소파니~검문소~댐~ 순다리잘(Sundarijal)~카트만두 Hotel Arts

 ○ 16일차(11월 7일, 월) : 카트만두~트리부반공항~타이 스마일항공~태국 방콕 수완나폼공항

 ○ 17일차(11월 8일, 화) : 태국 수완나폼공항~제주항공~인천공항~광주

□ 네팔(Nepal)에 대한 이해

정식 국가명칭은 네팔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이다.

네팔은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총면적 147,181㎢로 남한의 1.5배, 한반도의 2/3 크기다.

총인구는 3,054만7,580명(2022년)이며, 수도는 카트만두(Katmandu)이다.

기후는 아열대성 몬순기후로 1월 평균기온은 11˚C, 7월 평균기온은 25˚C이다.

민족은 아리안족(80%), 티베트·몽골족(17%), 기타 소수민족(3%)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팔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그밖에 10여 개의 소수 부족어가 있다.

종교는 힌두교(87%), 불교(8%), 이슬람교(4%) 등이다.

화폐단위는 네팔루피(Nepali Rupees, NPR)로 환율은 2022년 10월 기준으로 1달러(USD)는 약 130NPR이다.

국내총생산(GDP)는 2021년 기준 362억 8,883만 달러로 세계 91위이다.

정부형태는 공화정이며, 국가원수로는 대통령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가 2008년 7월 23일 취임하였다.

총리는 바부람 바타라이(Baburam Bhattarai)로 2011년 8월 29일에 취임하였다.

지형은 남북으로 150km라는 좁은 폭 사이에 고도 60m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8,848m(히말라야 산)의 고봉까지 다양한 높이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기후 또한 지역에 따라 아열대성 기후부터 극한 기후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도 카트만두(Katmandu)를 기준으로 북위 27˚ 42´, 동경 85˚ 20´에 위치한다.

카트만두의 날씨는 봄(3월~5월)은 평균기온 20°C, 여름(6월~8월)은 24°C, 가을(9월~11월)은 20°C, 겨울(12월~2월)은 10°C를 보인다.

6월부터 9월까지는 우기이며, 우기에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수도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유실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네팔의 국기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닌 국기이다.(두개의 삼각형)

네팔의 초기 역사는 불교와 힌두교 색채가 강했던 네와르족(Newari) 전설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4세기경 카트만두(Katmandu)에서 발흥한 릿처비(Lichhavis) 왕조는 카트만두 지역을 지배하고 7세기 이후 타국과 외교적, 문화적 교류를 시작하면서 티베트(Tibet)와 중앙아시아에 불교문화를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8세기경 중세로 접어들면서 카트만두 북쪽에 있던 누와코트(Nuwakot)의 타쿠리(Thakuri) 왕조가 지배세력이 되면서 네팔은 불안정과 침략의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11세기경 타쿠리의 아리데바(Arideva) 왕이 말라 왕조(Malla Dynasty)를 세워 네팔 문화의 새로운 르네상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5세기에는 카트만두 분지 안에 말라(Malla) 왕조의 3개 왕국이 세워져 네와르족을 통치하였다.

각각의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 박타푸르(Bhaktapur), 파탄(Patan) 등으로 이곳에서 네와르 문화가 꽃을 피웠다.

1769년 서부 고르카(Gorkha) 지방에서 발흥한 프리티비 나라얀 샤(Prithivi Narayan Shah) 왕이 카트만두 지역의 말라 왕조를 멸망시키고 고르카 왕조(Gorkha Dynasty)를 건설하였다.

국수주의자인 나라얀은 왕국을 보호하고 교역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면서 외국인이나 선교사들이 네팔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폐쇄정책을 실시하였다.

네팔을 통일한 고르카(Gorkha) 왕조는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티베트계의 민족이 세운 시킴, 부탄 및 타라이(Tarai)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후 고르카 왕조는 티베트 진출을 꾀하였으나 청나라 군대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종속국으로 전락하였으며, 5년마다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19세기 초 네팔은 무역협약을 체결한 동인도회사와 갈등의 수위가 높아졌다.

그러다가 1814년 부투왈(Butawal) 지역에서 발생한 영국 경찰과의 무력충돌로 인해 앵글로-네팔 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네팔은 영국에 전략적으로 우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였다.

이로 인해 네팔은 영국과 수가울리 조약(Treaty of Sugauli)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네팔은 시킴(Sikkim) 지역과 타라이(Tarai) 지역을 상실하였다.

이후 타라이 지역은 1857년 인도 저항 진압의 협력 대가로 회복되었다.

1846년 장바하두르(Jang Bahadur Rana)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정권을 장악한 장바하두르는 스스로 라나(Rana)라는 종신 재상에 취임하여 통치를 시작했으며, 추후 라나 지위를 세습화하였다.

1846년 이래 네팔을 지배하고 있던 라나 가문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과 타협하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1860년 국내외로부터 라나체제 보호 및 국내문제에 대한 실질적 자치를 영국으로부터 보장받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러한 영국과의 협력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3년 영국과 새로운 조약(Treaty of Friendship)을 체결해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라나 일족은 1948년 영국군이 인도에서 철수하자 네팔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면서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인도와 함께 네팔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1951년 네팔의회당(NC)1)이 이끈 혁명군은 인도의 강력한 외교적 지원을 등에 업고 라나 체제를 무너뜨린 뒤 왕정 복귀를 선언하였다.

1951년 2월 라나 일족과 네팔의회당(NC)은 각각 절반을 차지하는 정부를 조직하고, 민주주의 이행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트리부반(Tribuvan)을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1955년 트리부반에 이어 국왕에 오른 마헨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Mahendra Bir Bikram Shah Deva)는 1959년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는 헌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총선거를 통해 네팔의회당(NC) 내각을 출범시킴으로써 네팔은 국왕과 민선정부가 권력을 공유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마헨드라는 1960년 12월, 민주주의를 네팔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래 사상으로 간주하고 직접 통치를 선언하였다.

동시에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와 내각을 해산하였다.

뿐만 아니라 네팔의회당(NC)과 공산당 등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고, 독재에 대한 불평과 비판을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등 언론출판의 자유도 완전히 억압하였다.

마헨드라 국왕은 자신이 직접 수상과 내각을 구성하고 의회의 기능을 대신하는 ‘무정당 판차야트(Panchaayat) 체제’를 도입하였다.

판차야트 의원들은 직접선거로 선출된 112명과 국왕이 임명하는 28명으로 구성되었다.

판차야트의 소집과 폐회 권한은 국왕에게 있고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 감독하에 있었기 때문에 의회(판차야트)는 단지 명목상의 기구로 전락하였다.

1972년에는 마헨드라에 이어 비렌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Birendra Bir Bikram Shah Dev)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비렌드라는 강력한 경제개발정책을 실시하고 판차야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체제 위기에 직면하였다.

결국 1980년 5월, 비렌드라 왕은 체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의원직선제를 도입하고 네팔의회당(NC)을 비롯한 정당의 활동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정치제도 자유화라는 유화책을 제시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팔의회당(NC)을 중심으로 정치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90년 11월에 입헌군주제와 양원제 그리고 복수정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헌법이 창시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는 네팔의 정치적 혼돈기였다.

1994년 11월, 조기 총선에서 네팔공산당(UCPN)이 네팔의회당(NC)을 이겼으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소수 내각을 구성하였다.

네팔공산당(UCPN)은 소수 내각의 한계점을 타개하기 위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이처럼 과열된 의석 확보 경쟁은 정치적인 혼돈의 시발점이 되었다.

더구나 1996년에 들어서면서 증가된 마오이스트(Maoist)들의 활동, ‘인민전쟁’ 등이 국내 정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2001년에는 비렌드라(Birendra)왕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Gyanendra Bir Bikram Shah Dev) 왕이 즉위하였다.

갸넨드라 왕이 즉위하면서부터 2005년까지 마오이스트들의 활동은 더욱 과격해졌다.

국왕이 수상과 장관 등을 수시로 바꾸는 의원내각제 등의 영향으로 네팔은 극심한 혼돈이 지속되었다.

결국 2006년 4월, 유혈사태가 발생할 정도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였다.

아울러 미국과 인도 등이 압력을 가하면서 국왕이 야당 측 민주절차 회복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Girija Prasad Koirala) 전(前) 수상이 야당연합(SPA)4)의 만장일치로 수상에 취임하여 과도정부를 구성하였다.

2006년 11월 21일, 네팔 과도정부와 마오이스트는 지난 10여 년간 1만 2,800명이 사망하고, 10만 명 이상의 실종자를 발생시킨 인민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평화협정(CPA)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마오이스트 측은 반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공식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편 평화협정 이후 국왕의 권력은 무력화되었다.

2007년 1월 15일, 네팔 과도정부는 임시헌법을 공표하고 임시국회를 출범시켰다.

임시국회는 수바스 넴방(Subas Nembang) 전 하원의장을 임시국회 의장으로 선출하고 코이랄라를 수상으로 선출함으로써 신정부 구성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2008년 4월 10일에는 새로운 헌법 제정을 위한 총선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선출된 제헌의회는 그 해 5월 12일 국왕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기로 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로써 ‘네팔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이 탄생하였다.

2008년 6월 2일 갸넨드라(Gyanendra) 국왕은 제헌의회에서 ‘국왕제 폐지 및 공화국 선포’를 수락하였다.

2008년 7월 19일에는 네팔의회당(NC) 소속의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를 대통령에, 파르만난다 자(Parmananda Jha)를 부통령에 선출하고 수바스 넴방(Subas Nembang) 전 임시국회의장을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2008년 8월 15일, 제헌의회는 푸슈파 카말 다할(Pushpa Kamal Dahal)5) 마오이스트(Maoist) 의장을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의 초대 수상으로 선출하였다.

네팔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도와 같은 카스트(Caste) 제도의 영향이 존재한다.

힌두 카스트의 성은 직업·지위, 지역 및 신분을 반영한다.

카스트 제도는 각 계급이 살아가는 법이나 옷 입는 법뿐만 아니라 출산, 결혼, 죽음과 관련된 기타 의식도 규정하고 있다.

결혼 상대자 선택 및 장례 등 중요한 가정의례 시에도 카스트를 엄격하게 따진다.

네팔인은 힌두교 정신에 입각하여 국왕을 힌두교 신 중의 하나인 비스누(Visnu) 신의 화신으로 존경하였다.

카스트는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귀족·무사계급인 체트리(Chetris), 농민·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그리고 천민계급인 수트라(Sudra)로 구분된다.

브라만은 성직자와 법전해석자로 구성되며, 대부분은 힌두사원의 승려로서 종교적 행사나 장례식을 할 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체트리는 투쟁과 언쟁에 능하고 용감하며,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적으로 군인과 행정가, 정치가가 많고 교육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네팔 신분의 상징인 자나이(Janai)는 카스트의 상위계급을 상징하는 신성한 끈으로 오직 브라만과 체트리 남자들만 면 끈 세 개로 된 자나이를 어깨와 가슴, 팔 아래쪽에 두른다.

자나이의 얽힌 세 개의 끈은 머리와 몸과 말을 상징한다.

자나이를 두르는 이유는 두 번째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을 때가 첫 번째이고, 힌두교에 입문할 때가 두 번째 탄생을 의미한다.

힌두교로 입문하는 의식은 브라타반다(Bratabandha)라고 하는데 성년식과 힌두교 의식이 혼합되어 있다.

자나이는 청결하고 숭고하게 간수해야 하며, 더럽혀지거나 닳거나 오염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만약 월경 기간의 여자와 접촉했다면 즉시 교체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불임, 심각한 장애, 불치의 성병 등을 이유로 이혼 청구가 가능하나 아내는 같은 이유로 이혼 청구가 불가능하다.

이혼을 할 경우 아내는 남편의 재산 및 자녀에 대한 권리가 없다.

재산 상속의 경우에도 결혼한 딸은 부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없으며, 35세 이상의 미혼 딸만이 상속권을 보유한다.

□ 히말라야(Himalaya)

총길이 2,400km의 히말라야(Himalaya)는 고대 산스크리트(梵語)의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2개 낱말이 결합된 복합어이다.

처음에는 갠지스강(江) 연변의 수원(水源)지대를 가리켰으나 점차 아시아 남부 대륙에 이어지는 산계를 이르는 말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히말라야산맥은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활 모양을 그리며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네팔·시킴·부탄·티베트 남부를 뻗어내리면서 몇 갈래의 산계로 나누어진다.

맨 앞쪽의 힌두스탄 평원에 면하면서 비교적 낮은 시왈리크산맥과 그 뒤쪽에 있는 소(小)히말라야산맥, 산맥의 주축에 해당하는 대(大)히말라야산맥의 3개의 산계로 나눌 수 있다.

대히말라야산맥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최고봉이 솟아 있으나 줄곧 연속되지는 않고 거대한 산괴를 이루면서 군데군데 깊은 계곡으로 단절되어 있다.

이 가운데 카라코람산맥을 히말라야산맥과 구분하여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함께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말라야산맥은 ‘눈의 거처’라는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Mt. Everest, 8,848m), 케이투(K2, 8,611m), 칸첸중가(Kānchenjunga Mt. 8,586m), 로체(Lhotse Mt. 8,516m), 마칼루(Makalu Mt. 8,463m), 초오유(Cho Oyu Mt. 8,201m), 다울라기리 제1봉(Dhaulagiri I Mt. 8,167m), 마나슬루(Manaslu 8,163m),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 Mt. 8,125m), 안나푸르나(Annapurna Mt. 8,091m), 가셔브룸Ⅰ(Gasherbrum Ⅰ Mt. 8,068m), 브로드피크(Broad-Peak 8,047m), 시샤팡마(Shishapangma Mt. 8,046m), 가셔브룸Ⅱ(Gasherbrum Ⅱ Mt. 8,035m)

□ 랑탕+고사인쿤드+헬람부 트레킹(Langtang & Gosainkund Trek 최고고도 4,984m)

히말라야의 산길인 랑탕트레킹은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를 바라보며 아열대의 저지대 계단식 논, 우거진 전나무숲과 랄리구라스 숲길을 지나 수목 한계선을 넘어 설산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따라 다양한 소수부족의 삶을 기웃거리며 걸으면 몸은 지쳐도 마음만은 상쾌하다.

랑탕은 카트만두 북쪽으로 티베트 남쪽과 국경을 접하는 좁은 골짜기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트레커들이 적어 비교적 고즈넉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잘 가꾸어진 숲과 맑고 깊은 계곡을 따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중간중간 숙소가 있어 하루에 걷는 거리를 체력에 따라 조절할 수 있고, 곳곳에 찻집과 식당이 있어 음식에 대한 걱정이 없다.

랑탕 트레일은 샤브루베시(Syabrubesi 1,410m)에서 시작해 캰진곰파(Kyanjin Gompa 3,870m)까지이다.

갼진곰파에서 캰진리(Kyanjin-Ri 4,330m)와 체르고리(Tsergo-Ri 4,984m)를 오르면 금상첨화이다.

길을 걷는 동안 티베탄, 타망 부족의 마을을 경유하며 해발 7,256m의 랑탕리룽(Langtang Lirung)과 북서쪽으로 펼쳐지는 가네쉬 히말(Ganesh himal)의 멋진 전망을 내내 감상할 수 있다.

히마라야 중 안나푸르나지역이나 에베레스트지역에 비해 인기가 덜하지만 이 길은 고즈넉함이 살아있다.

탕사프 마을을 지나 랑탕(LangTang 3430m) 마을에 들어서면 체르코 리(Tsergoo-Ri 4,984m)와 간첸포(Ganchenpo 6,387m)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 농도가 희박해지기는 하지만 전망은 훨씬 좋아진다.

랑탕마을에서 더 걸으면 랑탕 트레일의 마지막 지점인 캰진 곰파(Kyanjin Gompa 3,870m)이다.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주변의 캰진리(4,333m), 랑시샤카르카 (Langshisha Kharka 4,160m), 체르고리까지 다녀올 수 있다.

내려오는 길목에 길을 틀어 고사인쿤드(Gosainkund) 호수를 경유해 순다리잘(Sundarijal)로 내려서는 고사인쿤드-헬람부(Helambu) 트레일을 함께 걷는다.

랑탕까지는 왕복 1주일이면 충분하지만 고사인쿤드를 경유해 헬람부 코스와 연결하면 2주가 소요된다.

해발고도 4,380m의 성스러운 호수 고사인쿤드는 힌두교도들의 성지이다.

특히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활짝 피는 4월 초, 이 길은 천상의 화원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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