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각산봉수대(角山烽燧臺)와 각산산성(角山山城)..
2022년 1월 21일, 통영 각산 산행길에 만난 각산봉수대와 각산산성..
각산의 정상인 해발 408m 고지에 있는 각산봉수대(角山烽燧臺)는 경남문화재자료 제96호(1983년12월20일)로 지정되었다.
고려 원종 때 설치되었으며,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각산봉화대는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널찍하고 둥그런 단위의 중앙에 또다시 둥근 단을 쌓아올렸는데 아랫단보다 높직한 모습이다.
2개의 단에는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각의 뚫린 공간이 남아 있으며, 아랫단 한쪽에는 위로 오르는 계단을 두기도 하였다.
당시 봉수망의 직결점은 서울 남산에 있었으며 간선(幹線)을 직봉(直烽)이라 하고 보조선을 간봉이라 했다.
봉화는 고대의 통신방법으로, 봉수(烽燧)라고도 한다.
주로 군사적인 목적에서 연락할 일이 있을 때 높은 산 위에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주고받았다.
남해의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신호를 창선면 대방산을 거쳐서 받고, 용현면 침지봉수와 곤양면 우산봉수로 보냈다.
우산봉수는 다시 진주 망진산봉수로 신호를 보냈다.
연락방법은 평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넘어오면 4개, 접전을 하면 5개를 올렸다.
만약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서 연락이 안 될 때에는 봉졸(烽卒)이 차례로 달려서 보고했다.
봉수대에 배치되는 봉군(烽軍)은 다른 군역에는 종사할 수 없고 오직 망보는 일에만 종사했다.
삼천포항을 서남 방향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각산 8부 능선에 있는 각산산성은 경남문화재자료 제95호(1983년12월20일)로 지정되었다.
남쪽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1991년과 1993년, 그리고 1995년 세 차례에 걸쳐 복원공사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백제의 전성기 때 진주가 백제의 영토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가 가락국을 병합할 무렵 진주지방의 고령가야는 백제가 공취하여 거열성을 두었는데 605년(무왕 6년) 2월에 각산산성을 쌓았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의 항쟁을 평정하는 데에도 활용되었다.
또 왜구의 침범이 잦았을 때에는 각산리 주민들이 이 산성을 의지해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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