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경남여행 - 2. 함양 대봉산, 개평마을, 남계서원&청계서원, 용추폭포&용추사, 함양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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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캠핑카

3박4일 경남여행 - 2. 함양 대봉산, 개평마을, 남계서원&청계서원, 용추폭포&용추사, 함양상림

by 정산 돌구름 2021. 8. 21.

3박4일 경남여행 - 2. 함양 대봉산, 개평마을, 남계서원&청계서원, 용추폭포&용추사, 함양상림


2021년 8월 17일, 경남 서부지역으로 떠난 3박4일 캠핑여행..

○ 1일차(8월 17일) : 광주 - 광주-대구고속도로 - 거창 창포원 - 감악산 산행 - 풍력발전단지

○ 2일차(8월 18일) : 감악산 풍력발전단지 - 함양 대봉산 - 개평마을 - 남계서원&청계서원 - 용추폭포&용추사~용추계곡

○ 3일차(8월 19일) : 용추계곡 - 함양상림 - 산청 동의보감촌 - 수선사 - 정취암 - 자양보유원지

○ 4일차(8월 20일) : 자양보유원지 - 덕천서원 - 하동 삼성궁 - 동정호생태습지 - 광주

~^^~

2021년 8월 18일, 함양 대봉산 천왕봉과 계관봉에 오르다.

대봉산 스카이밸리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30여분 오르면 해발 1,228m 천왕봉에 이른다.

천왕봉에서 능선을 따라 1km를 거리에 있는 대봉산 계관봉(1,253m)을 다녀온다.

정상은 운무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봉산 모노레일은 전체길이가 3.93km로 우리나라 최장으로 1시간 가량 소요되며,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코스로 짜릿한 스릴을 즐길 수 있다.

날씨가 흐려 조망은 없었지만 기분좋은 여행이었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병곡면에 걸쳐 있는 대봉산(大鳳山 1,245.8m)은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일제강점기 때 벼슬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산 이름을 괘관산(掛冠山 벼슬을 마친 선비가 갓을 벗어 걸어둔 산)으로 격하하였다.

함양군이 2009년3월30일 중앙지명위원회 승인 고시를 거쳐 원래 이름인 ‘대봉산’으로 바로 잡아 사용하게 되었다.

남덕유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함양군 서쪽 할미봉-깃대봉-백운산에서 동쪽으로 함양군 중앙부를 향해 이어지는 산줄기에 대봉산이 자리한다.

대봉산에는 인접한 두 개의 봉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북쪽의 봉우리가 대봉산 계관봉(鷄冠峰)이며 동쪽으로는 천왕봉(天王峯 1,228m)이 이어진다.

대봉산은 함양군 함양읍의 정북쪽 방향에 자리한 함양의 뒷산으로 불리며, 옛날 빨치산의 활동거점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대봉산 정상에는 곳곳에 돌탑이 있으며 정상에 서면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연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대봉산 천왕봉에는 아름드리 철쭉 군락이 있고 봄철 대봉산 정상 부근의 철쭉군락지는 함양 8경 중 ‘대봉 철쭉’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함양대봉산휴양밸리 모노레일은 국내최초 산악관광 모노레일로서 길이가 3.93km로 국내 최장을 자랑한다.

짚라인은 국내 최장거리(3.27km), 최고도(1,228m)의 자유비행방식 짚라인으로 대봉산휴양밸리의 자연경관과 아찔한 스릴을 즐길 수 있다.

2021년 8월 18일, 고색창연한 전통한옥, 함양 개평마을~

개평마을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이자 5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정여창 생가인 일두 고택을 필두로 오담 고택, 풍천 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 하동 정씨 고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잠시 개평마을길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떠난다.

개평(介坪)이라는 지명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마을이 위치해 ‘낄 개(介)’ 자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

또한 마을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어 ‘개들’이라고도 불린다.

14세기 경주(慶州) 김(金)씨와 하동(河東) 정(鄭)씨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후 15세기에 풍천(豊川) 노(盧)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현재 마을에는 대부분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거주하고 있다.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100여 년 전에 지어진 약 60여 채의 전통 한옥이 보존되어 있다.

함양은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으로 불림만큼 안동과 더불어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개평마을은 영남의 대표 사림이라 불리는 성리학자 정여창(鄭汝昌)의 고향이다.

정여창은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하였으나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고택들이 남아 있다.

중용민속자료 제186호인 일두고택(一蠹古宅)은 1570년 정여창의 생가 자리에 지어진 이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 번 중건 되었다.

‘정여창 고택’, 또는 문화재 지정 당시 등록된 이름인 ‘정병옥 가옥’으로도 불린다.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집의 형태로 현재 사랑채와 안채, 사당 등 1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풍천노씨의 시조 노숙동이 1820년대에 지은 풍천노씨 대종가(豊川盧氏大宗家 문화재자료 제343호)는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사료로 가치가 높다.

함양 오담고택(咸陽梧潭古宅 문화재자료 제407호)과 1644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河東鄭氏古家 문화재자료 제361호) 등이 남아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마을 특산물인 500년 전통의 지리산 솔송주는 봄에 나는 소나무 순과 찹쌀, 솔잎을 이용하여 만든다.

진한 솔향기가 특징인 솔송주는 정여창(鄭汝昌)의 종가에서 술, 엿, 식혜를 빚어 방문객에게 접대했던 가양주로, 당시 성종에게 진상한 전통 명주라 전해진다.

정여창 문중의 자손들이 솔송주 주조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 8월 18일. 함양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사적 제499호로 지정된 남계서원은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47졌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9개 서원중 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는 문민공 김일손이 수학하던 청계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배롱나무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잠시 머무렀다가 떠난다.

남계서원(灆溪書院)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명종 7년(1552년)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명종 21년(1566)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남계’는 서원 근처에 흐르는 시내 이름이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년)에 나촌[또는 구라촌]으로 옮겨 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년)에 옛터에 재건하였다.

정여창 외에도 숙종 때 인물 동계(桐溪) 정온(鄭蘊), 개암(介庵) 강익(姜翼)을 추가로 제향하고 있다.

별도의 사당에는 임계(林溪) 유호인(兪好仁)과 송탄(松灘) 정홍서(鄭弘緖)를 모셨다.

남계서원은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창건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전국에 걸쳐 서원 훼철이 진행되었지만 함양 남계서원은 존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등이다.

매년 2월과 8월의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남계서원은 앞쪽 낮은 곳에는 강학 공간을 두어 강습을 하도록 하였고, 뒤쪽의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 공간을 이루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전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사당이나 사원(祠院)에 모신 여러 위패 가운데 주장되는 위패]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

누문(樓門)인 풍영루를 들어서면 강학 공간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인 명성당(明誠堂)이 위치하고 있다.

명성당은 1559년에 완성된 정면 4칸 규모의 건물로 명성당의 앞쪽 양옆으로는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양정재[동재]와 보인재[서재]가 있다.

양정재와 보인재의 1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만들어 각각 애련헌(愛蓮軒), 영매헌(咏梅軒)이라 이름하였다.

이 누마루 아래 누문 쪽으로 연당(蓮塘)[연못]이 하나씩 꾸며져 있다.

이밖에 전사청, 고직사, 정여창·정온·강익을 칭송하는 송덕비인 묘정비가 있는 묘정비각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함양 청계서원(靑溪書院)은 연산군 때의 학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 기리기 위하여 1921년에 건립되었다.

청계서원이 위치한 자리는 원래 1495년에 김일손이 청계정사(淸溪精舍)를 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김일손은 성균관 기사관이 되어 『성종실록』을 쓴 학자이다. 하지만 「조의제문(弔義帝文)」 수록으로 1498년 무오사화 때 희생되었다.

무오사화에 연루되면서 청계정사도 폐사되었다. 1906년에 유림들이 상의하여 청계정사가 있던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다.

청계정사 중건은 1917년에 시작되어 1921년에 준공되고, 이름을 청계서원이라 하였다.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청계서원은 남계서원과 인접하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입지는 높은 곳에 제향 영역,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전형을 보이고 있다.

서원 건물 중앙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 형태의 강당이 있다.

강당 뒤쪽의 높은 지대 위에는 사당인 청계사(靑溪祠)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내삼문이 배치되었다.

강당 앞으로는 학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인 구경재(求敬齋)와 서재인 역가재(亦可齋)가 있다.

경내에는 탁영김선생유허비와 연당(蓮塘 연꽃을 심은 못)이 있다.

2021년 8월 18일, 함양 용추계곡 따라 용추사~

여름철 폭포 물소리가 마치 용이 지축을 흔들며 승천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데에서 유래한 용추폭포가 있는 용추계곡,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尋眞洞)’이라 불리기도 한다.

골짜기가 깊고 계곡물의 양이 풍부하여 여름에 많은 피서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용추폭포 바로 옆에 있는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옛 장수사의 부속 암자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이다.

계곡을 따라 용추폭포와 용추사를 둘러보고 계곡에 자리를 잡는다.

함양 용추사(龍湫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소지왕 8년(487년)에 각연(覺然)대사가 장수사를 창건하였고, 고려 말 무학(無學)이 중수한 뒤 은거하여 수행하였다.

숙종 6년(1680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계곡의 아래쪽으로 절터를 이전하였다.

그 뒤 숙종 7년(1681년)에 운흡(雲洽)과 전 주지 수오(秀悟) 등이 합심하여 절을 아래쪽으로 이전하였고, 1684년에는 문찬(文贊)이 법당을 지었다.

다음해에는 문감(文鑑)이 소상(塑像)을 이룩하고 사주 이영생(李英生)이 시왕상(十王像)을 조각하였다.

또, 1686년에는 김상운(金尙雲)이 누각을 지었고, 다음해 지찰(智察)이 팔상전과 팔상탱화를 조성하였으며, 천왕문과 요사채를 이룩하였다.

용추사는 원래 장수사의 10여 곳의 암자 가운데 한 곳으로, 북쪽에 위치하였다고 전한다.

1721년(경종 원년) 봄에는 지찰(智察) 등이 세운 팔상전을 용추사의 옛터로 옮기고, 1725년(영조 원년)에는 서언(瑞彦)이 용추암을 만들었다.

1734년(영조 10년)에는 실화로 인하여 대웅전과 소상(小像), 서상실(西上室)·향각(香閣) 등이 타버렸다.

호경(護敬)을 중심으로 두인(斗仁)·영우(靈祐)·삼준(三俊)·광연(廣衍) 등이 합심하여 같은 해에 불탄 전각을 모두 중건하였다.

2021년 8월 18일, 고요한 함양 용추계곡에 머물다.

심하게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어둠이 내리니 고요하기만 하다.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주차장은 무료 차박이 가능하여 평일이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다.

계곡가 주차장에 자리를 잡고 용추계곡을 따라 용추폭포와 용추사를 보고 돌아온다.

오늘밤은 용추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여기에 머문다.

용추계곡의 용추폭포(龍湫瀑布)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곳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 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란 의미로 심진동(尋眞洞)이라고도 불린다.

낙동강 남강 상류인 지우천의 최상류에 형성된 용추폭포는 기백산(1,331m), 금원산(1,352m), 거망산(1,184m), 황석산(1,190m) 등 고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명승 제85호(2012년2월8일)로 지정되었으며, 전국의 수많은 용추폭포라는 이름의 폭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용추폭포는 함양팔경 중 하나로 과거 안의현에서 빼어난 절경으로 꼽은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심진동에 있다.

안의삼동은 함양의 화림동과 심진동, 수승대가 있는 거창의 원학동을 말한다.

이곳 주변은 삼림이 울창하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며, 떨어지는 용추폭포와 그 아래 용소가 어우러져 명승을 이룬다.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尋眞洞)’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는 돈암 정지영(鄭芝榮)의 후손들이 1806년 세운 ‘심원정(尋源亭)’이 있는데, 심진동이라 불리던 용추계곡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용추계곡 상류는 골짜기가 깊고 계곡물의 양이 풍부한 곳으로, 여름에 많은 피서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용추계곡의 절경 용추폭포 바로 옆에는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용추사(龍湫寺)가 있다.

용추계곡로 입구에는 용추오토캠핑장, 연암물레방아공원, 함양예술마을이 있다.

연암물레방아공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함양군에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운용한 박지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4년에 조성되었다.

2021년 8월 19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 함양 상림공원~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함양상림은 약 1,100년전인 신라 진성여왕 때 당시 함양태수 최치원이 호안림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라고 한다.

연꽃은 지고 있지만 오는 9월10일부터 시작되는 2021 함양 산삼항노화엑스포 축제를 앞두고 심은 꽃들로 가득하다.

무더운 날씨지만 녹음이 짙은 상림공원을 걸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함양상림(咸陽上林)은 천연기념물 제154호(1962년12월7일)로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渭川)가를 따라서 조림한 호안림이다.

이 숲은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崔致遠)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림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위천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며 매년 홍수의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최치원은 농민을 동원하여 둑을 쌓고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의 숲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숲을 대관림(大館林)이라고 이름지어 잘 보호하여서 홍수의 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에 대홍수에 의해서 둑의 중간이 파괴되고 지금의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다.

상림 안에 최치원 신도비가 있는데 그 안에 ‘건학사루 수식림목어장제(建學士樓手植林木於長堤)’라 씌어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야산의 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숲에는 은행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 서어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상림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의 하나인데, 현재는 풍치림의 구실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