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나한산 만연사(萬淵寺)에서
2021년 3월 19일 (수), 봄이 오는 길목의 화순 나한산 만연사(萬淵寺)..
만연산 자락의 만연사(萬淵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고려 희종4년(1208년)에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산은 나한산(羅漢山)이라고도 불려 나한산 만연사로 표기되어 있다.
만연선사(萬淵禪師)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등의 주봉을 넘어 남으로내려오다가 만연사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앉은 사이 언뜻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을 깨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하게도 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6.25전쟁 이전까지 대웅전, 시왕전. 나한전, 승당, 선당, 동상실. 서상실. 동병실. 서별실. 수정료, 송월료 등 3전 8방과 대웅전 앞의 큰 설루, 설루 아래 사천왕문과 삼청각이 있던 대찰이었다.
또 부속암자로는 학당암, 침계암, 동림암, 연혈암이 있었다.
6.25로 전소되었다가 1978년 이후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 요사채가 복원되었고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1345호로 지정된 만연사 괘불탱은 조선시대 후기 1783년(건륭 48년)년 3월에 영산회상탱으로 조성되어 화순 나한산 만연사에 봉안되었다는 화기를 가지고 있다.
제작에 비현(丕賢)스님이 참여하였는데 비현은 선암사 괘불 봉안에서는 대화주로, 흥국사 괘불 제작에서는 금어로 활약하였다.
괘불의 크기는 가로 586cm, 세로 760cm이고, 괘불함은 길이 674cm, 너비 34 cm, 높이 31cm 이다.
푸른색이 화면 전반을 휩싸고 있는 이 괘불은 천의 일부와 가사를 붉은 색으로 채색했으며 바탕은 삼베이다.
적녹색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강희, 건륭 연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조선후기의 특징이다.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입상으로 육계와 나발을 갖추고 눈은 정안으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불타의 모습을 하고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의 옷깃에 화려한 무늬를 더했으며, 몸 주변에 그리는 신광은 없고, 머리주변은 둥글게 표현했다.
두광 내에는 녹색으로 칠하고 노랑, 빨강, 청색으로 돌려 문양을 내었다.
비슷한 크기의 형태로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을, 오른쪽에는 덕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표현하였다.
두 협시는 지금까지의 삼존도 양식과는 달리 주존의 크기와 대등한 위치에 배치되어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괘불 아랫면에는 제작연대와 괘불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때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젊은시절 부친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던때에 만연사 동림암에 거처한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선생이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곳을 찾아 피나는 연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한다.
높이 1.55m,너비 56cm,두께 23cm 내외 가량의 석조지주 2쌍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향좌의 지주는 46cm의 거리를 두고 있고, 향우의 것은 55c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각 지주에는 약 10cm크기의 간공이 위 아래로 2개가 뚫려있는데 간공 사이는 향좌가 60cm, 향우가 68cm가량이다.
하단부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 있으며 건립 시기는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일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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