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년 느티나무가 있는 천년고찰 세종 운주산 비암사..
2021년 2월 25일, 세종 여행 2일차는 810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천년고찰 비암사를 찾아서..
천년고찰 운주산(雲住山) 비암사(碑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창건된 절이라고 전하고 있다. 출토된 석불비상의 명문에 ‘계유년과 해명법사’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계유년 673년에 창건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창하였으며, 그 뒤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있으나,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된 『전역지(全域誌)』에 비암사가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그 무렵까지 존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근대에 들어와 극락전 앞뜰에 있는 높이 3m의 고려시대 삼층석탑 정상부분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대웅전을 지었으며, 1995년 극락보전을 중수하고 산신각과 요사 2동을 지었다. 1996년 범종각을 짓고 1997년 요사 1동을 지었다.
석상 중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은 국보 제106호로,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과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은 각각 보물 제367호와 제368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극락보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이며, 전내에 아미타불을 안치하였고, 불상 위의 닫집과 조각물들은 그 수법이 우수하다.
이 밖에 사면군상이 발견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인 삼층석탑과 부도 3기가 있다.
비암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79호(1978년12월30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세종시 승격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재지정되었다. 2021년2월23일 보물 제2119호로 승격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포계 건축물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측면 3칸형에서 벗어나 2칸으로 지은 것은 전란 이후 사찰 경제가 축소된 사정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의 3칸은 기둥사이를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하고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으며, 측면과 후면은 모드 회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내외 모드 3출목으로 짜 올렸으며, 쇠서는 3개의 앙설과 1개의 수설로 만들어져 있다. 내부 살미첨차는 운궁형을 이루고 있고 연봉이 3개씩 조각되어 있다. 공포의 구성은 크기에 따른 대첨차, 중첨차, 소첨차를 모두 사용한 특징을 보이며, 첨차를 배열한 방식, 내외부의 살미 모양 등에는 조선 중기 이후 다포 건축물에 보이는 특징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가구 방식은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있으나 불단 좌우에 옥내 기등을 세워서 중간에서 그 무게를 받쳐 주고 있다. 건물 측면 가운데 위치한 기둥에서 대들보를 걸쳐 충량이 배치되었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를 세워서 종량을 받치고 하부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전내에는 닫집을 설치하고 매우 큰 소조아미타여래좌상(塑造阿彌陀如來坐像)을 안치하였다.
창호는 일반적인 조선후기 불전 창호와는 차별성이 보인다. 앞쪽 창호는 문얼굴을 4분할하여 가운데 두 짝은 여닫이를 두고 문설주로 분리하고, 좌우에는 외짝 여닫이를 설치했다. 뒷쪽 창호는 이른바 영쌍창으로 쌍여닫이창의 중간에 설주를 세운 형태이다. 건립 당시에 제작한 창호는 아니지만 뚜렷한 근거를 토대로 창호의 원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극락보전의 건립시기에 걸맞는 외관을 보여준다.
극락보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소조아미타불좌상은 세종시 유형문화재 제12호(2012년12월31일)로 지정되어 있다.
흙으로 만든 후 개금하여 보존하고 있는 아미타불은 전체적으로 건장한 편으로서 직사각형에 가까운 강건한 얼굴, 둥글면서도 벌어진 어깨, 결가부좌한 넓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촘촘한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큼직한데 중간 부분에는 반원형의 넓적한 중간계주가 표현되었다. 정상부에는 원형의 작은 정상계주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직사각형에 가깝지만 턱부분에 살이 많아 둥근 느낌을 주며 이마 한가운데는 백호가 작게 묘사되었다. 코는 날카로운 각선을 보여주지만 콧망울이 둥글어 복스럽게 보인다. 가늘고 길게 뜬 두 눈은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인중이 뚜렷하고 입술 또한 큼직하여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표현되었다. 목에는 뚜렷하게 삼도가 표현되었고 길게 능러진 두 귀는 귓불이 두툼하다. 어깨가 넓은 편이지만 둥글어 건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법의는 통견으로 걸친 것처럼 보이지만 우견편단으로 입은 후 다시 옷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걸친 변형된 우견편단식이다. 이러한 착의법은 조선시대 후기 불상에서 유행한 것으로 이 불상은 그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법의 사이로 드러난 가슴에는 군의를 걸치고 있는데 가운데를 끈으로 묶어 윗부분에 주름이 잡혀있으며 아래 부분은 불룩하게 처리하였다. 결가부좌한 무릎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옷자락은 옷주름이 매우 유러하고 사실적으로 처리되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수인은 왼손으로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배 아래쪽에 두었으며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손가락 역시 사실적으로 자연스러우며 생동감이 넘친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다소 낮게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하체가 약간 부실해보이기는 하지만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비암사 소조아미타불좌상은 17세기적인 특징을 보이면서도 얼굴이나 무릎의 표현이 매우 독특하여 시대성을 짐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얼굴모습이나 볼 살을 늘어지듯 표현한 점은 매우 특이한데 혹시 후에 개금하면서 외형의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깨의 옷자락이 접혀진 모습이나 자연스러운 옷주름의 표현에서는 16세기 후반경의 작품일 가능성도 엿보이지만 현재로서 확인은 어려우며 적어도 17세기 전반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이 불상은 규모가 크고 양식도 우수한 편이다
비암사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비암사 3층석탑은 세종시 유형문화재 제3호(2012년12월31일)로 지정되었다.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1982년 복원 공사를 하면서 없어진 기단부를 보완하고 뒤집혀 있던 석재들을 바로 잡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날카롭게 하늘로 향해 있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둔해 보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암사 영산회괘불(靈山會掛佛幀)은 세종시 유형문화재 제12호(2012년12월31일)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성중들을 함께 묘사한 그림으로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장엄하게 표현한 것이다.
중앙에는 정면관을 취한 석가여래가 거신광의 광배에 싸여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그 주위를 6타방불과 시방제불, 용왕과 용녀가 상단을 둘러싸고 있으며, 옆에는 제석천과 범천. 가섭과 아난, 12제자와 신중들이 배치되었고 하단부에는 좌우협시보살인 문수와 보현보살,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있다. 석가불은 화면의 중앙부에 항마촉지의 수인을 하고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전체적으로 밝은 색조를 띄며 선명한 보색을 사용하여 장식적이고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하단부에는 묵서로 적은 화기가 남아 있는데 '신겸비구 응상비구 응열비구 덕회비구'를 비롯한 화원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중에서 신겸은 1652년 청원 안산사 영상회괘불탱(국보 제297호)을 제작한 화원이며, 응열은 1650년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제298호), 1664년 공주 신원사 괘불탱, 1673년 수덕사 노나사괘불탱(보물 제1263호)을 제작한 화가로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비암사 느티나무는 810년 된 고목으로 높이 15m, 둘레 7.5m로 비암사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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