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옛길 1구간 따라 증심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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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무등산길

무등산옛길 1구간 따라 증심사까지..

by 정산 돌구름 2021. 1. 6.

무등산옛길 1구간 따라 증심사까지.. 


차갑지만 바람이 없는 맑은 날씨에 버스를 타고 무등산옛길 1구간이 시작되는 산수동으로 향한다.

10시10분, 산수동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장원초등학교 앞을 지나 옛길 1구간을 시작한다.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숲길로 들어서고 얼어붙은 길을 오르면 잣고개에 이른다.

무진고성이 있는 잣고개에서 동문지로 내려서 북향의 눈 덮인 길을 따라 제4수원지를 지나 청풍쉼터에 이른다.

김삿갓동산인 청풍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숲길을 따라 오르면 충장사 갈림길을 지난다.

얼어붙은 눈길을 따라 원효봉너덜을 지나 원효사 일주문에서 도로르 따라 오른다.

원효사에서 늦재삼거리, 늦재를 지나 바람재에서 덕산골로 내려서 증심교를 지나 증심사지구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상가지대에 쌈밥으로 유명한 ‘전원일기’에서 씸빕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차가운 날씨에 얼어붙은 눈길이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걷는 무등산옛길 1구간을 따라 걷는 기분좋은 발걸음이었다.

○ 산행일자 : 2021년 1월 6일 (수)

○ 기상상황 : 맑음(구름 조금 맑고 차가운 날씨 -6~1℃)

○ 산행인원 : 부부

○ 산행코스 : 산수동~잣고개~충장사갈림길~원효사~늦재~바람재~덕산골~증심사지구(광주 북구, 동구)

○ 거리 및 소요시간 : 13.8km(트랭글GPS), 4시간 55분 소요

산수동(10:10)~옛길 입구(10:20)~잣고개(10:40)~소금장수묘(10:45)~김삿갓동산(10:20~30)~충장사입구(12:15)~원효봉 너덩겅(12:45~55)~원효사주차장(13:25)~원효사(13:40)~늦재 삼거리(13:55~14:00)~바람재(14:15)~증심교(15:00)~증심사 시설지구(15:05)

○ 산행지 소개

무등산옛길은 광주 도심의 산수오거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새 길이다.

무등산옛길은 총3구간으로 옛길 1구간은 광주 도심의 무등산 옛길 입구-잣고개-동문지터-청풍쉼터-충장사-원효봉 너덜겅-원효사 일주문 구간으로 7.75km이다.

옛길 2구간은 원효사 일주문-공원관리사무소-서석대에 이르는 구간으로 4.12km이다.

옛길 3구간은 지산유원지입구 교차로에서 장원정을 거쳐 충장사, 충효동도요지를 지나 환벽당까지 약12km로, 무등산 자락의 낮은 능선을 따라 난 숲길로 유적과 가사문화권으로 걸어가는 역사길로 불린다.

무등산 옛길은 2009년 5월15일 개방되었다. 산수동부터 시작된 옛길은 충장사와 원효사에 이르는 7.75km 구간으로 보통 걸음으로 서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족하다.

이 길은 천천히 걸으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고사목을 활용해 이동 통로를 만드는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렸다.

등산로보다는 평탄한 산책길에 가까운 옛길은 수목이 훼손되지 않도록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성인 2명이 나란히 걸을

정도로 좁은 오솔길로 복원됐다.

또 편백나무를 깎아 만든 안내표지목을 300m 간격으로 설치하고 이정표와 옛길 표지를 달아 쉽게 찾도록 배려했다.

~^^~

상수동 무등로와 밤실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무들로를 따라 오르면 장원초등학교..

제2순환도로 굴다리를 지나면 무등산옛길이 시작되는 1구간 입구..

골목길을 지나 오르면 숲길로 들어선다..

전망대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고..

무등산옛길 안내판..

무등산옛길은 산마을 사람들과 무등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다녔던 옛길이다. 황소 팔러 가는 농부, 지게 진 나뭇꾼, 등짐 진 상인, 봇짐 진 아낙, 책을 낀 선비 등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넘나들었던 애환이 서린 길이다..

차가운 날씨에 눈길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무등산옛길 1구간 제1길은 황소걸음길, 쉬엄쉬엄 걷는 길이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무진고성이 있는 잣고개..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무진고성(武珍古城)은 무등산 장원봉(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상대봉(350m)과 제4수원지 안쪽의 산 능선을 따라 쌓은 남북 1,000m, 동서 500m, 둘레 3,500m의 장타원형으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은 바깥면만 돌로 쌓고, 그 안은 돌과 흙을 섞어 채웠다. 건물지와 동문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官(관)·城(성)·國城(국성)’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편과 서조문(瑞鳥文)·귀면문(鬼面文)·일휘문(日暉文)이 돋을새김된 막새기와,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의 자기류 등이다.

이 유물들로 보아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가 9세기 중반에 폐성이 되었고, 다시 9세기 후반경에 수축되어 고려 초(12세기)까지 사용된 성지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무진도독 때의 고성이 현(縣) 북5리에 2,560보 또는 32,448척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성이 무진도독고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이 성의 성격을 밝히기 위하여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발굴조사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 무진도독성지라는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이와 관련된 유사시에 대비한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잣고개는 빛고을 산들길과 무등산옛길이 교차하는 곳이다.

잣고개에서 무진고성으로 올라 능선을 넘어선다..

능선을 넘어서면 도로 옆으로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소금장수묘를 지난다. 

도로를 건너면 무진고성 동문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잠시 이어진다..

연인의 길, 약속의 다리라는 청암교에 이른다.

제4수원지를 지나는 청암교는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현대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가 되었다.

제4수원지는 1967년 완공되었으며 '석곡'수원지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계획되었으나 해방이후 기술자가 없어서 당시 광주시청 수도계장이던 일본인의 귀국을 만류해 기초설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무등산 원효계곡과 화암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등촌마을과 신촌마을의 양쪽 산허리를 이어 둑을 쌓아 만든 것으로 저수량만도 180여만 톤이다.

석곡동에 위치하여 '석곡수원지'인 제4수원지는 광주에서 네번째로 조성된 수원지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대, 광주는 갑작스런 인구증가로 생활용수가 부족했다. 이에 따라 1920년, 증심사 입구에 조성된 제1수원지를 시작으로 동구 용연계곡에 제2수원지가 개발됐다. 제3수원지는 1955년 광주 북구 산동교 아래 극락강변에 조성됐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1947년 개발 착수에 들어간 것이 제4수원지는 1967년 완공되어 제5수원지인 화순 동복수원지와 함께 광주의 대표적인 식수원이 되었다.

청암교를 지나면 바로 앞에 바람도 쉬어간다는 청풍쉼터가 있다. 잘 손질된 잔디밭이 펼쳐져 가족단위의 소풍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김삿갓 동산..

방랑시인 김삿갓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간으로 김삿갓 동산 표시석과 김삿갓이 지은 '금강산' 시비가 있다.

청풍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등산사랑 광주사랑 나라사랑 표지석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충장사와 원효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옛길 1구간..

잠시 후 옛길 3구간과 합류하는 지점..

좌측으로 덕봉으로 오르는 3구간을 가로질러 원효사로 향한다..

서어나무 연리지를 지난다..

옛길 1구간 4km 지점에는 십리 표지석이 있다..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고..

이어 소나무 숲길..

부드러운 길은 계속 이어지고..

한참을 오르면 충장사가 있는 도로를 건넌다..

숲길로 들어서면 원효봉 갈림길..

하얗게 쌓인 눈길을 따라가면..

너덜지대를 지나고..

쉼터를 지나 이어진다..

22번 표지목이 있는 원효봉너덜에 이른다..

원효봉너덜, 원효봉에서 흘러내린 돌무지이다..

너덜을 지나 관음암에 이른다..

관음암에서 10m가량을 가면 원효사로 오르는 도로와 만나 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친일반민족행위자 송화식 표지판이 있다.

송화식(宋和植, 일본명 大原和植)은 목포 출신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서기 겸 통역생으로 일했다. 이후 조선총독부 판사로 임용되어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판사로 재직했다. 부산지법 통영지청 판사이던 1926년을 기준으로 정7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판사로는 약 3년만 근무하고 1920년대 후반부터 광주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1929년에 발생한 광주학생운동과 후속 사건인 전남노동협의회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변호인을 맡는 등 변호사로 일하면서 광주지역 유지로도 활동하였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과 국민동원총진회의 이사를 지냈고, 조선인전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사상범 감시를 위해 설치된 광주보호관찰소의 촉탁보호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다시 판사로 등용되었다. 1948년 12월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겸 광주소년심리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50년 4월부터 1951년 10월까지 서울고등법원장 제1부장판사를 역임했다.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할 때는 제주4.3사건 공판을 맡기도 했다. 퇴직 이후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1954년 4월~1956년 4월), 전남대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1년 광주고등검찰청 제3대 검사장을 역임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무등산옛길 제1구간이 끝나는 원효사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원효사로 오른다.

원효사 일주문을 지나고..

원효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원효사 경내에 들어선다..

원효사는 송광사 말사로 신라 지증왕이나 법흥왕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때 원효대사가 산의 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지냈다하여 원효암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으로 불에 탄 후 1980년에 중창하였다. 1980년 5월 대웅전 신축 작업 중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팀에 의해 발굴된 청동, 청동불 입상, 동경(구리거울),각종 소조불 등 백여 점의 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것들로서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원효사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웅장한 산세 속에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을 가지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원효사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오른다..

늦재삼거리는 눈으로 덮혀있다..

늦재삼거리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늦재로 향한다..

늦재로 가는 길은 아직도 눈으로 가득하다..

도로를 따라 바람재에 이른다..

바람재에서 덕산골로 내려서면 증심교에 이른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무등산노무현길 표지석..

무등산국립공원 표지를 지나 증심사시설지구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3시가 넘은 시간, 상가지대 안의 맛집 ‘전원일기’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보쌈정식(1인 9,000원)에 막걸리 한잔, 이렇게 무등산에서의 하루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