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기행] 논산 1경 반야산 관촉사(灌燭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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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기행] 논산 1경 반야산 관촉사(灌燭寺)

by 정산 돌구름 2020. 12. 28.

[논산기행] 논산 1경 반야산 관촉사(灌燭寺)


2020년 12월 25일, 논산 여행길에 찾은 논산 제1경 관촉사..

관촉사(灌燭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혜명(慧明)이 불사를 짓기 시작하여 1006년에 완공하였다.

창건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에 의하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고 한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년)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미간의 옥호에서 발생한 빛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하면서 예배하였다. 이런 연유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반 이상이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년(우왕 12년)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 14년)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년) 지능(智能)이, 1735년(영조 11년)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국보 제323호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비롯하여 보물 제232호 석등(石燈), 사리탑(舍利塔), 충남유형문화재 제53호 연화배례석(蓮花拜禮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石門), 오층석탑, 사적비(事蹟碑), 관음전(觀音殿), 삼성각(三聖閣), 사명각(四溟閣), 해탈문(解脫門), 현충각(顯忠閣), 기미독립운동기념비 등이 있다. 절 입구에는 1914년에 만든 반야교(般若橋)라는 현대식 구름다리도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년(연산군 5년)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몽산법어(蒙山法語)』, 『심우십도(尋牛十圖)』 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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